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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時代 胎室에 관한 考古學的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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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3854600

      • 저자
      • 발행사항

        춘천 : 강원대학교, 2015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강원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 2015. 8

      • 발행연도

        2015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태실태봉장태가봉조선왕실풍수태함아기비중앙태석태호태지석

      • KDC

        911.05 판사항(6)

      • 발행국(도시)

        강원특별자치도

      • 기타서명

        An Archaeological Study on Taesil in the Joseon Dynasty

      • 형태사항

        v, 391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강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 유재춘
        참고문헌 : p.373-387

      • 소장기관
        • 강원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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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한국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는 향후 태주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태를 귀중하게 여겨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처리하는 장태문화가 있었다. 이러한 장태문화는 세계적...

      한국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는 향후 태주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태를 귀중하게 여겨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처리하는 장태문화가 있었다. 이러한 장태문화는 세계적인 보편적 문화인데, 그 중 한국에서만 행해진 독특한 장태법인 태실풍속이 있다. 이는 민간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왕실에서만 이루어진 장태방법이다. 이 태실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부르는 길지를 선택하여 그곳에 태를 묻고 보호하는 시설을 하고 비를 세워 태실임을 표시하였다. 이 태실이 조성된 산을 태봉(산)이라 부른다. 이렇게 태실을 조성하는 것은 태를 잘 보호함으로 인해 태주의 무병장수는 물론이고 향후 왕실의 자손 번창과 국가의 안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 때문으로, 특히 왕실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더욱 강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태실은 구조와 성격에 의해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로 구분된다. 아기태실은 임금의 자녀나 왕손인 아기가 태어났을 때 길지를 택정하여 태를 땅에 묻고 조성한 시설이며, 가봉태실은 임금으로 즉위하면 아기태실에 화려한 석물을 장식하여 가봉한 것을 말한다.
      이 논문은 태실의 기원과 성립, 그리고 확립과 전개에 대한 문헌사적 검토를 실시하고 풍수사상에 입각해 선정된 태실의 입지에 대해 풍수지리적 검토를 하였으며, 또한 전국에 산재한 태실을 조사하여 시기를 파악하는데 가장 유익한 아기비와 태함 및 중앙태석의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 양식과 편년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몇몇 태실의 조성시기와 태실의 구조 등을 분석하고 왕실의 가계도 일부 복원해 보았다.
      태실의 기원은 신라시대 김유신 태실에서 그 근거를 찾았는데, 595년 이전으로 보았다. 그리고 장태풍속은 세계 보편적 문화이나, 태실조성은 한국 왕실에서 발전시킨 독창적 문화로 보았다. 이러한 태실문화는 고려시대에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성립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왕과 세자에 한해서만 태실을 조성하였다.
      고려 왕실의 태실 제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완전히 확립되어 정착한다. 세종은 왕과 세자만 조성하던 태실을 모든 아들까지 확대하고 관련 절차나 의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시킨다. 성종은 태실조성의 범위를 모든 딸에게 까지 허용하는데, 태실 제도는 이렇게 세종과 성종에 의해 확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실조성의 폐단이 발생하자 이를 줄이기 위해 개선책이 제시되는데, 그중 가장 획기적인 것이 한 산등성이에 여러 태실을 같이 조성하는 동태동강론이다. 이는 1493년 성종에 의해 처음 제시되고 1645년 인조와 1678년 숙종에서 재등장하고, 1758년 영조의 태봉윤음이 반포됨으로써 동태동강론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또 영조는 1765년 궁궐 어원에 장태하라는 파격적인 수교를 내리기도 하였다. 정조도 영조의 1765년 을유년 수교를 따르고자 노력하였으나, 1783년 왕위계승자인 원자는 1등에 해당되어 길지를 찾아 태실을 조성해야 하고 그 이하 대상자는 궁궐 어원에 장태해도 된다는 신하들과의 결론에 의해 영조의 개선책을 따르지 못했다.
      그리고 태실은 풍수지리적 영향에 의해 그 입지가 선정된다. 문헌사료에서는 내맥이 연결되지 않은 들판 가운데에 홀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 정상에 태실을 조성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맥이 연결된 돌혈에 조성됨을 밝혔다. 그리고 이렇게 돌혈에 조성되는 시기는 통일신라 말 9세기 도선이 풍수설을 확립하는 때로 추정하였다. 또 태실은 조선 초에는 하삼도에 집중되어 조성되었으나, 세조에 의해 1458년부터 경기도에도 조성되기 시작하며, 그 분포는 충청도?전라도?경상도?경기도?강원도?황해도에서만 확인된다.
      그리고 태실 구조의 기원과 유물의 상징성도 살펴보았다. 아기태실은 원형의 봉토를 하고 그 앞에 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신라 김유신 태실에서 기원되어 고려 인종 태실을 거쳐 지속된 것으로 보았다. 가봉태실은 팔각난간석과 중앙태석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중앙태석은 팔각원당형 부도에서 그 기원을 찾았으며, 팔각난간석은 고려 왕릉의 12각 난간석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12각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팔각형으로 축소하였는데, 그 이유는 밀교의 태장계 중대팔엽원의 이론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또 출토유물에서도 태호에 동전?은판?금판 등을 부장하는 것은 태주에게 재물 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태호나 아기비?중앙태석?주석?동자주에 연잎 문양이 장식되는 것은 연꽃에 내포된 탄생과 영원한 생명, 풍요, 다산과 자손번창 등의 의미를 기원하기 위해 장식한 것으로 보았다.
      또 태실의 유물 중 시기를 파악하는데 가장 민감한 아기비?태함?중앙태석의 양식과 편년을 설정해 보았다. 이는 태실유적에 가장 많이 잔존하여 있는 유물로 이러한 유물만을 갖고도 그 조성시기를 파악하는데 큰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아기비는 그 명문구성에 의해 5단계로 나누었으며, 양식도 5단계로 나눌 수 있었다. 태함은 4단계로, 중앙태석도 4단계로 편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물의 고고학적 편년설정을 바탕으로 몇몇 태실의 구조나 왕실 가계를 복원해 보았다. 먼저 영주 소헌왕후 태실의 조성과정과 구조를 복원해 보았는데, 소헌왕후의 태는 민간풍습에 따라 경기도 양주에 매태되었는데, 왕비가 되자 왕실의 태실 제도에 따라 길지를 찾아 가봉태실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잔존 석물로 태실의 구조도 복원해 보았는데, 지하에는 방형의 태함을 안치하고 지상에는 팔각난간대를 구성한 것으로 보았다.
      또 성주 선석산 태실에 조성된 19기의 태실을 분석해 보았다. 이 태실의 지하구조는 방형의 태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태함 안에 태호와 태지석을 봉안하였음을 밝혔다. 또 태함 내에 안치되는 태호는 일반적으로 작은 내호와 큰 외호로 구성되는 이중 태호가 아니라 맨 밑에 대접을 바치고 그 위에 작은 호를 올린 후 다시 그 위에 큰 대접을 엎어 전체를 덮은 형태의 특이한 구성을 하였음을 밝혔다. 또 왕자 당 태실과 왕자 장 태실의 두 개 태실은 동일 인물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왕자의 태실임도 밝혀내어 왕실 족보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울진 견석왕자 태실의 태호와 태지석을 찾아내어 그 태주와 장태시기 및 성종의 가계를 복원해 보았다. 즉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태지석과 태호가 울진 삼달리 신래태실에서 출토된 것임을 밝혔다. 태주는 1486년 태어나 1487년 장태된 견석왕자로 성종과 숙용 권씨의 소생임을 추정하였으며, 어떠한 사유로 왕실 족보에 삭제되거나 누락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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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orea had the culture of burying the placenta in various ways when a baby was born as it was believed that the placenta has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life of its owner and should be handled with care. This culture is globally universal, but Kore...

      Korea had the culture of burying the placenta in various ways when a baby was born as it was believed that the placenta has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life of its owner and should be handled with care. This culture is globally universal, but Korea has the unique way of burying the placenta in Taesil (placenta chamber). This custom was not performed by the commoners, but only by the royal family.
      A propitious site was selected based on the laws of Fengsui to bury the placenta and build a protective facility and a monument to mark that it was Taesil. A mountain where Taesil was built was called Taebong(san). Taesil was built to take a good care of the placenta because of the belief that it affects not only the health and longevity of the owner, but also the fertility of the royal family and the strength of the kingdom. The royal family seems to have had a stronger belief of this.
      Also, Taesil is classified into Agitaesil and Gabongtaesil by structure and nature. Agitaesil was built to bury the placenta and create a mound with a monument when a queen gave birth to a baby. It is identical to a tomb in structure. Gabongtaesil refers to the beautiful stone ornaments composed of Palgaknanganseok (octagonal rail stones) that were built to replace the on-ground structure of Agitaesil when an owner of Agitaesil was enthroned.
      This study reviewed the literature on the origin, formation,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Taesil, discussed the location of Taesil based on the principles of Fengsui, surveyed Taesil across Korea to organize the archaeological styles and chronology of Agibi (monument), Taeham (placenta stone box), and Jungangtaeseok (central stonework), which are most useful for identifying the time of construction, and analyzed each Taesil’s time of formation and structure. It also used the identified owners of Taesil to compare to the genealogy of Joseon Dynasty to partially restore the family tree of the royal family.
      The origin of Taesil was found in the Placenta Chamber of Kim Yu-sin, which was built before 595. and the formation of Taesil was a unique culture developed by the royal family of Korea. It seems that the culture of Taesil became a national system in the Goryeo Dynasty. However, It was not popularized, but Taesil was only built for the kings and the crown princes. The Taesil system was fully established and settled in the Joseon Dynasty. King Sejong expanded Taesil to all sons and established the related procedures or rituals. King Seongjong even allowed building Taesil for all daughters. The Taesil system was established by King Sejong and King Seongjong.
      As Taesil became popular, however, it has negative effects. The kings suggested various measures to resolve the problems, and the most innovative one was Dongtaedonggang where several Taesil was built along the ridge of a mountain at the same location. This was first suggested by King Seongjong in 1493, re-adopted by King Injo in 1645 and King Sukjong in 1678, and reached its height with Taebongyuneum by King Youngjo in 1758. Also, King Youngjo made a radical order to bury the placenta in the courtyard of the palace in 1765. King Jungjo also tried to follow this order of King Youngjo from 1765, but he could not follow Youngjo’s order because he concluded with the servants in 1783 that Taesil for the crown prince should be built at a propitious site and Taesil for all other royal babies can be buried in the courtyard in the palace.
      Also, the location of Taesil was selected by the influence of Fengsui. Historical records state that Taesil was built on the peak of a hill that stands all by itself in the middle of a field with no veins connected, but it was actually built on rocky hills were veins were connected. Taesil was mostly built in the three southernmost provinces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it was also built in Gyeonggi Province from 1458 by King Sejo. It is currently found in Chungcheong Province, Jeolla Province, Gyeongsang Province, Gyeonggi Province, Gangwon Province, and Hwanghae Province. This study also discussed the origin of structure of Taesil and the symbolism of its relics. Agitaesil had a round mound with a monument in front of it. This originated from the Placenta Chamber of Kim Yu-sin and was succeeded through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of Goryeo.
      Gabongtaesil was examined with emphasis on Palgaknanganseok and Jungangtaeseok. The origin of Jungangtaeseok was found in the octagonal Buddha, which is thought to be an imitation of the 12-angle rail stone from the royal tombs of Goryeo. However, the 12 angles were reduced to 8 angles to follow the theory of Jungdaeparyeopwon of Esoteric Buddhism’s Garbhadhatu Mandala.
      In terms of the relics excavated, coins, silver and gold plates were buried in Taeho (placenta jars) to pray for the owner’s wealth and Taeho or Agibi, Jungangtaeseok, Juseok (post), and Dongjaju (queen post) were ornamented with lotus patterns to pray for birth, eternal life, abundance, fertility, and prosperity.
      This study also analyzed the styles and chronology of Agibi, Taeham, and Jungangtaeseok, which are most sensitive for identifying the age of Taesil’s relics. These are the relics most frequently found in Taesil, and they alone can give critical clues for identifying the time of construction.
      Agibi was classified into five steps based on the system of composition and the style was also classified into five steps. The chronology of Taeham was divided into four steps and that of Jungangtaeseok was also divided into four steps.
      The structure of Taesil and the genealogy of the royal family were examined based on the archaeological chronology.
      First, the construction and structure of Taesil for Queen Soheon in Yeongju were reenacted. Queen Soheon’s placenta was buried in Yangju, Gyeonggi Province according to the civil customs and when she became the queen, a propitious site was found to build Gabongtaesil according to the Taesil system of the royal family. The structure of Taesil was also restored using the remaining stonework. The rectangular Taeham was laid underground and the octagonal rails were built on the ground.
      This study also analyzed 19 sites of Taesil found on Mt. Seonseok in Seongju. The underground structure of Taesil consisted of a rectangular Taeham with Taeho and Taejiseok sealed inside. Taeho contained inside Taeham was generally a unique type with a vessel on the bottom, a small jar on top and another large vessel on top, rather than the double-structured Taeho with smaller Naeho (inner jar) and larger Oiho (outer jar). Also, Dang Taesil and Jang Taesil of princes were thought to have been built for the same person, but it has been found that they were for two different princes.
      Also, Taeho and Taejiseok of Prince Gyeonseok’s Taesil was found in Uljin to identify the owner, time of burial, and genealogy of King Seongjong. It was clasified that Taejiseok (epitaph stone) and Taeho in the museum of Yeungnam University had been excavated in Taesil in Samdal-ri, Uljin. The owner is Prince Gyeonseok who was born in 1486 to King Seongjong and Sugyong Kwon, and his placenta was buried in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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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目 次
      • 제1장. 緖論 1
      • Ⅰ. 硏究史 檢討 1
      • Ⅱ. 硏究 目的 및 方法 22
      • 제2장. 胎室의 起源과 制度 27
      • 目 次
      • 제1장. 緖論 1
      • Ⅰ. 硏究史 檢討 1
      • Ⅱ. 硏究 目的 및 方法 22
      • 제2장. 胎室의 起源과 制度 27
      • Ⅰ. 胎室의 起源과 成立 27
      • Ⅱ. 胎室 制度의 確立과 變化 48
      • 제3장. 胎室의 立地와 一般構造 73
      • Ⅰ. 胎室의 立地와 分布 73
      • Ⅱ. 胎室의 一般構造와 遺物 101
      • 제4장. 胎室 遺物의 考古學的 檢討 136
      • Ⅰ. 阿只胎室碑의 樣式과 編年 136
      • Ⅱ. 胎室石函의 樣式과 編年 182
      • Ⅲ. 中央胎石의 樣式과 編年 225
      • 제5장. 考古資料로 본 胎室의 造成과 構造 260
      • Ⅰ. 昭憲王后 胎室의 造成과 胎室構造 260
      • Ⅱ. 禪石山 胎室의 造成과 胎室構造 283
      • Ⅲ. 堅石王子 胎室의 造成과 胎室構造 346
      • 제6장. 結論 366
      • 參考文獻 373
      • 英文抄錄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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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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