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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倭鏡과 그 유통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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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5077284

      • 저자
      • 발행사항

        부산 : 동아대학교 대학원, 2018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2018.12

      • 발행연도

        2018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911.059 판사항(5)

      • 발행국(도시)

        부산

      • 형태사항

        xvi, 199장 : 삽화, 도표 ; 27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정은우
        부록: 通信使謄錄에 보이는 국내유입 倭物 기록 p. 183-199
        참고문헌: p. 172-182

      • UCI식별코드

        I804:21008-200000173940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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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왜경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유형과 특징 그리고 유입과 수용 문제를 다룬 논문이다. 특히 각 문헌에 등장하는 왜경에 대한 기록을 종합...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왜경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유형과 특징 그리고 유입과 수용 문제를 다룬 논문이다. 특히 각 문헌에 등장하는 왜경에 대한 기록을 종합하고 실제 유물인 조선시대 분묘 출토 및 사찰 등에 남아 있는 왜경의 현황을 파악하여 조선시대 거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倭鏡은 일본의 거울을 뜻하는 조선시대 용어이다. 국내의 문헌기록에는 일본을 칭하는 용어로 ‘倭’와 ‘日本’이라는 명칭이 모두 확인되지만, 공예품을 지칭할 때는 모두 倭物로 표기하며, 실제 문헌에서도 일본의 거울을 倭鏡이라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 제작된 거울은 일반적으로 和鏡이라 명칭하고 있는데 이는 和樣으로 장식한 거울이라는 뜻으로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92~1333)에 완성된 일본식 거울을 말한다.
      현재까지 조사된 국내의 왜경은 총 92점으로 현존하는 왜경 중 소재지가 분명한 유물은 발굴조사 출토품과 사찰 소장품이다. 이 거울들은 형태과 문양, 명문 등에 따라 제작시기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며, 특히 분묘출토 왜경의 경우 공반유물이 함께 출토된 사례가 있어 거울의 사용시기에 대한 유추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왜경은 일본에 현존하는 紀年銘鏡과 연구자료가 풍부하여 편년의 근거자료로 삼을 수 있는데, 상호 형태와 문양의 비교를 통해 국내 소재 왜경의 편년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왜경의 유입이 시작되는 시기는 菊花雙雀流水文鏡과 花鳥文鏡의 사례를 통해 12세기 중엽부터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발굴조사 출토품의 공반유물을 살펴보면 주로 조선시대에 복제 및 방제되어 사용되었고 특히 17세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복제나 방제가 아닌 原鏡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왕실의 능묘나 불상의 복장, 민간의 생활용품으로 사용되는 등 다양한 소비가 이루어져 사회 전반에 걸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세기에는 전체적으로 수량이 급감하고 대형의 蓬萊文柄鏡과 大文字文柄鏡이 일부 전해지며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에 국내 소재 왜경은 유입되는 종류와 수량의 차이로 인해 크게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원경과 방경이 중심이며 장식적인 문양을 가진 귀족적 취향의 거울이 중심으로 시기는 16세기 이전까지이다. 2기는 병경이 중심이며 길상적이고 상업적인 문양을 가진 서민적 취향의 거울이며, 시기는 17세기에서 18세기이다. 마지막 3기는 병경에 새로운 형태가 접목되고 새로운 문양의 창출이나 변화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대형화됨으로써 의례화가 되어가는 단계로 19세기에 해당한다. 이는 곧 1ㆍ2ㆍ3기로 구분되어 시기구분할 수 있으며 세련되고 귀족적인 1기에서 길상적이고 상업적인 2ㆍ3기로 변천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1기의 왜경은 상호교린의 상징으로 답례적 성격이 강하였다. 그러나 2기에 들어서면서 차왜를 중심으로 유입되는 왜경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조공품으로 인지하였지만 대마도의 입장에서는 진상과 회례의 절차를 통해 이득을 추구하는 수출품이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18세기 후반에까지 이어지고 이후 3기에 들어서면 조선과 일본은 이미 상품유통체제의 변화가 이루지는 근대적 의미의 시장이 형성된다. 이러한 가운데 왜경은 근대 유리거울의 등장과 함께 실생활에서 급격히 쇠퇴하고 다만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불교의례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의식용구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각 시기별 왜경이 유입되는 과정은 조선시대에 대일외교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는데 주로 사신을 통한 공무역 및 조공무역의 형태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임진왜란 이전의 나말선초에는 국왕사와 향화수직왜인이 삼포를 통해 한성에 직접 방문하여 예단을 주고 받았다. 이후 임진왜란 이후에는 부산 왜관만을 개항하고 차왜와 조선통신사라는 제한적인 창구를 운영하였고 모든 무역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즉 차왜와 조선통신사는 당시 두 국가를 잇는 주요 사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811년 신미통신사를 마지막으로 조공무역 형태의 교역은 사라지게 되며, 이후 메이지유신과 개항이라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 왜경은 점차 유리거울의 유행과 함께 소멸한다.
      한편 이러한 왜경을 외형에 따라 원경, 병경, 방경으로 구분하여 규격과 형태를 데이터화하여 살펴보았다. 이에 국내 소재 왜경 중 圓鏡은 복제와 방제를 통해 소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柄鏡의 경우 손잡이를 절삭하여 원형으로 제작하거나 경면이나 손잡이에 구멍을 뚫는 등 변형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소형경과 원형경의 사례는 발굴조사 출토품에서 많이 관찰되고, 변형하여 사용하는 사례는 사찰 소장품에서 주로 확인된다. 즉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소지하기 좋은 소형의 거울, 그리고 원형의 거울을 선호하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당시 휴대용 거울의 유행과 좌식문화와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형경의 사용은 사찰 소장품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이 중에는 불상과 불화의 복장에 사용된 사례가 상당수 있어 왜경이 복장 의례와 관련있음을 시사한다. 복장 납입 의례는 고려시대부터 이루어졌지만 임진왜란 이후 불상과 불화가 집중되어 조성되었는데, 당시 『조상경』이 편찬되어 의례가 정례화되고, 마침 그 시기에 일본의 차왜를 통해 국내로 많은 수량의 왜경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이들 왜경이 사찰로 유통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왜경을 소재하고 있는 사찰은 조선통신사의 이동 경로상에 위치하고 조선통신사의 방문기록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왜경이 직접적으로 유입된 장소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왜경은 유입되고 유통되면서 실제 사용된다. 왜경의 분포양상은 유입 및 유통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이러한 소비 양상을 발굴 출토품과 사찰 소장품, 그리고 문헌기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조선시대 실생활에 수용되는 단면을 살펴보았다. 왜경의 사용정황은 왕실과 민간, 그리고 사찰에서 확인되는데 이렇게 왜경을 실제 사용하였던 점은 왜경 이외에 왜물도 전반적으로 소비했음을 짐작케한다. 이는 단순한 기물의 수용이라는 측면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소중화주의가 팽배했던 조선이 대일관계의 변화에 따라 일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함께 수용되는 사례이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던 시기에도 차왜를 통해 유입되어 예조로 전달된 왜물을 왕실에서 직접 사용한 사례는 당시 왕실문화의 탄력적 수용태도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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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
      • Ⅱ. 倭鏡의 정의와 명칭 6
      • 1. 倭鏡의 정의 6
      • 2. 형태와 각부명칭 14
      • Ⅰ. 머리말 1
      • Ⅱ. 倭鏡의 정의와 명칭 6
      • 1. 倭鏡의 정의 6
      • 2. 형태와 각부명칭 14
      • Ⅲ. 현황과 사례 20
      • 1. 발굴조사 출토품 20
      • 2. 사찰 소장품 58
      • 3. 전세품 76
      • Ⅳ. 왜경의 편년과 특징 95
      • 1. 왜경의 편년 95
      • 1) 1기 : 16세기 이전 103
      • 2) 2기 : 17~18세기 110
      • 3) 3기 : 19세기 이후 121
      • 2. 왜경의 유형과 특징 125
      • 1) 圓鏡 125
      • 2) 柄鏡 130
      • 3) 方鏡 137
      • Ⅴ. 수용과 소비 139
      • 1. 왜물에 대한 인식변화와 수용 139
      • 2. 왕실과 왜경 146
      • 3. 민간과 왜경 155
      • 4. 사찰과 왜경 160
      • Ⅵ. 맺음말 169
      • 참고문헌 172
      • 부록 183
      • Abstract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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