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5486810
서울 : 동국대학교, 2020
학위논문(박사)-- 동국대학교 : 국어국문학과 2020. 2
2020
한국어
810
서울
156p. ; 26 cm
지도교수: 김상일
I804:11020-000000080807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그 면모가 일정정도 밝혀졌지만 명·청 교체에 대한 일암의 사유(思惟)나 화이관(華夷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그의 시(詩)·화(畵) 지향(志向)에 대한 연구도 미진한 상태이며, 『일암연기』가 전대의 연행록을 참고한 양상이나 후대 연행록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질론과 무실론의 관점에서 일암의 문명론·과학기술론·예술론에 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암연기』의 연행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도 톺아보았다.
그 구체적인 논의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본고의 2장에서는 먼저 문질론과 무실 사상에 대해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일암이 ‘한인(漢人)’을 ‘문승(文勝)’, ‘만인(滿人)’을 ‘다질(多質)’의 속성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았다. 그리고 문승(文勝)의 가장 큰 폐단인 사치(奢侈)와 무력(武力)의 약화를 명망(明亡)의 원인으로 들어, 명·청 교체를 문승(文勝)과 다질(多質)의 교체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암은 조(朝)·청(淸) 간 국량(局量)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문화를 꼽았다. 이에 연행 노정 내내 효율성을 추구하는 청의 질적인 문화를 배우려는 학구열을 보여주었다. 일암은 문질론에 기반 하여 사유하였기에 명·청을 화(華)·이(夷)로 구분하지 않고, 문과 질의 측면에서 살펴 화이관이나 소중화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일암이 청(淸)과 서양의 신문물을 접하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청의 문물 중, 일암은 특히 방직기·농사 기술·수호통(水壺筒)·동유(桐油) 등에 집중하였고, 서양의 문물 중에서는 혼천의와 일영(日影), 포도주와 비연(鼻烟)에 집중하였는데 모두 실용(實用)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청과 서양의 문물에 대한 관심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문물의 형태와 원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적극적인 수입(輸入) 의지이다. 이는 모두 선진 문물을 조선에서 재현하여 후생(厚生)을 도모하고자 하는 일암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장에서는 일암이 시(詩)에 있어, 수식(修飾)보다는 작가의 진정(眞情)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가 시의 질적 가치를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 편, 일암의 연행시 중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연경잡시(燕京雜詩)> 10수나 <연행절구(燕行絶句)> 11수를 살펴보면 21수 모두에 자주(自註)가 달려 있다. 이 주석은 모두 시의 소재가 되는 중국의 유적이나 풍속에 관한 것으로, 시 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한 추가 설명의 성격을 띠고 있어 고거(考據)의 경향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고거 경향에는 독자에게 실제(實際)·사실(事實)를 보여주려는 일암의 무실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5장에서는 『일암연기』가 전대 연행록에게서 받은 영향과 후대 연행록에 끼친 영향을 살펴, 『일암연기』의 연행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고찰하였다. 일암은 노가재의 『연행일기』보다 나은 연행록을 작성하기 위해 『연행일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정·보충하여 연행 노정에 대한 기록이 보다 실제에 가깝게 기록하였다. 일암은 노가재 및 다른 연행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새로운 연행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남·동·북의 세 천주당을 모두 방문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산(盤山)과 사호석(射虎石), 심양의 북릉(北陵)과 북경의 마분사(馬糞寺) 등 다른 연행록에서는 찾기 보기 힘든 새로운 노정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노정을 실답(實踏)하여 문헌·전언(傳言) 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공간의 실제(實際)를 파악·기록하였다. 그리하여 우수한 원전성(原典性)을 지니게 된 『일암연기』는 담헌과 연암의 연행록에서 지도 혹은 자료로써 활용되었고, 19세기 연행록인 『계산기정』, 『심전고』, 『지정연기』, 『연원직지』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암의 ‘탐방(探訪)’은 항상 ‘탐색(探索)’으로 이어졌으며, 그러한 탐색 과정을 통해 공간 이면(裏面)에 놓여 있던 공간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힘을 쏟았다. 예를 들면, 마분사에서 ‘말똥’의 여러 활용 방안에 주목했던 것은, 간소함·효율성을 중시하는 청의 문화에 대한 주목과 일치한다. 그리고 똥에 대한 주목은 담헌과 연암 그리고 김경선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일암이 주류하(周流河)에서 목격하였던 ‘귀천(貴賤)’보다 ‘선후(先後)’를 중시하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청의 문화는 같은 공간, 같은 사건으로 담헌에게 목격되었다. 그리고 담헌은 일암과 동일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으며, 그러한 경향은 김경선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일암의 탐방과 탐색, 그리고 탐색을 통해 빛을 발한 공간 이면의 가치는 신임옥사와 함께 묻히지 않고, 후대 연행사와 연행록을 통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본다면 『일암연기』가 문질론적 사유와 무실 정신을 바탕으로, 노가재의 『연행일기』를 충실히 계승·발전 시켰으며, 담헌 『연기』, 『열하일기』, 『연원직지』 등의 후대 연행록에 실질적이며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일암연기』의 연행문학사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1 성백효, "『논어집주』", 전통문화연구회, 2011
2 홍만선, "『산림경제』", 단행본, null
3 송응성, "『천공개물』", 동서문화사, 2015
4 종사, "『시품(詩品)』", null
5 서유문, "『무오연행록』", null
6 이성무, "『조선왕조사』", 수막새, 2011
7 임기중, "『연행록 속집』", 尙書院, 2008
8 임기중, "『연행록 전집』", 동국대학교출판사, 2001
9 임기중, "『연행록 해제』", 한국문학연구소연행록해제팀, 2003
10 박성규, "「공자의 학문론」", 『태동고전연구』 21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5
1 성백효, "『논어집주』", 전통문화연구회, 2011
2 홍만선, "『산림경제』", 단행본, null
3 송응성, "『천공개물』", 동서문화사, 2015
4 종사, "『시품(詩品)』", null
5 서유문, "『무오연행록』", null
6 이성무, "『조선왕조사』", 수막새, 2011
7 임기중, "『연행록 속집』", 尙書院, 2008
8 임기중, "『연행록 전집』", 동국대학교출판사, 2001
9 임기중, "『연행록 해제』", 한국문학연구소연행록해제팀, 2003
10 박성규, "「공자의 학문론」", 『태동고전연구』 21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5
11 김정중, "『기유록(奇遊錄』", null
12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0
13 김창협, "『농암집(農巖集)』", null
14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null
15 양득중, "『덕촌집(德村集)』", null
16 이의봉, "『북원록(北轅錄)』", null
17 신흠, "『상촌집(象村稿)』", null
18 이이명, "『소재집(疎齋集)』", null
19 박사호, "『심전고(心田稿)』", null
20 박지원, "『연암집(燕巖集)』", null
21 이정귀, "『월사집(月沙集)』", null
22 이기지, "『일암집(一庵集)』", null
23 이수광, "『지봉집(芝峯集)』", null
24 이식, "『택당집(澤堂集)』", null
25 최채기, "『고전적정리입문』", 학민문화사, 2011
26 임기중, "『연행록연구층위』", 학고방, 2014
27 양녠췬, "『강남은 어디인가』", 글항아리, 2015
28 이성훈, 조규익, 전일우, 전영문, "『연행록 연구총서』", 학고방, 2006
29 부유섭, 조융희, 신익철, "『일암연기』 역주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6
30 이해응, "『계산기정(?山紀程)』", null
31 이영유, "『운소만고(雲巢?藁)』", null
32 박제가, "『정유각집(貞?閣集)』", null
33 풍우란, "『중국철학사』 상 하,", 까치글방, 1999
34 신대현, "「宋應星과 天工開物」", 『文化史學』, 한국문화사학회, 1994
35 유협, "『문심조룡(文心雕龍)』", null
36 김장생, "『사계전서(沙溪全書)』", null
37 신경준, "『여암유고(旅菴遺稿)』", null
38 김경선, "『연원직지(燕轅直指)』", null
39 이갑, "『연행기사(燕行記事)』", null
40 김창업, 조영복, "『연행일기(燕行日記)』", null
41 이기지, "『일암연기(一菴燕記)』", null
42 이기지, "『일암유고(一庵遺稿)』", null
43 원재명, "『지정연기(芝汀燕記)』", null
44 고미숙, 조현설, 정출헌, 김풍기,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한겨레출판, 2006
45 송준호, "「유득공의 시문학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3
46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稿)』", null
47 황의동, "「노서 윤선거의 무실 사상」", 『유학연구』 18호,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8
48 김동건, "「李器之의 『一庵燕記』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7
49 왕식, "『황극경세서해(皇極經世書解)』", null
50 정인보, "『담원정인보전집(?園鄭寅普全集)", null
51 이봉호, "「홍대용, 전통적 세계관을 쏘다」", 『인문과학연구』 16호,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52 정성희,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사우, 2018
53 박지영, "「孫過庭 『書譜』의 文質論 硏究」",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학위논 문, 2009
54 강희제, "『강희제어제문집(康熙帝御製文集)』", null
55 이규보,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null
56 신용하, "『조선후기 실학파의 사회사상연구』", 지식산업사, 1997
57 김현미, "「18세기 연행록의 전개와 특성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58 정연식, "「조선시대 觀天臺와 日影臺의 연혁」", 『한국문화』 51호, 서울대학교 규장 각 한국학연구원, 2010
59 신익철, "「18세기 연행사와 서양 선교사의 만남」", 『韓國漢文學硏究』 51호, 한국한 문학회, 2013
60 김동건, "「『一庵燕記』에 나타난 글쓰기 방식」", 『民族文化』 40호, 한국고전번역원, 2012
61 박명희, "「여암 신경준의 무실 정신과 시적 실천」", 『국어국문학』 162호, 국어국문 학회, 2012
62 김일환, "「燕行錄에 나타난 ‘嘔血臺'의 의미 연구」", 『한국문학연구』 43호, 동국대 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2
63 이승수, "「연행로 중 遼陽~瀋陽 구간의 노정과 풍물」", 『古典文學硏究』, 한국고전 문학회, 2016
64 송혁기, "「조선 후기 문학이론상의 문질(文質) 논의」",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학 술대회, 2010
65 장유승, "「조선후기 물명서의 편찬동기와 분류체계」", 『한국고전연구』 30호, 한국고 전연구학회, 2014
66 채송화, "『을병연행록』 연구- 여성 독자와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67 이택후, "(李澤厚) 저, 권호 역, 『화하미학(華夏美學)』", 東文選, 1990
68 김동건, "「〈의산문답(醫山問答)〉의 창작 배경 연구」", 『정신문화연구』, 36호, 한국학 중앙연구원, 2013
69 이선경, "「일수 이원구의 역학사상과 그 실학적 지향」", 『태동고전연구』 23호, 한림 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7
70 박성순, 정민, 박수밀, "『북경 유리창 : 18 19세기 동아시아 문화거점』", 민속 원, 2013
71 정인보, "『?園 정인보 전집』 2. 「조선고서해제·소재집」", 연세대 출판부, 1983
72 신익철, "「18~19세기 연행사절의 북경 천주당 방문 양상과 의미」", 『敎會史硏究』 44호,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73 신익철, "「연행록을 통해본 18세기 전반 한중 서적교류의 양상」", 『泰東古典硏究』 25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9
74 김동인, "「논어(論語)의 문질론(文質論)과 그 교육적 함의(含義)」", 『교육사학연구』 4호, 교육사학회, 1992
75 이민홍, "「동아시아 역대 왕조의 開國과 ‘質文 五行 三正’ 論」", 『民族文化』 40호, 한국고전번역원, 2012
76 임영길, "『19세기 前半 燕行錄의 특성과 朝 淸 文化 交流의 양상』",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77 백승호, 이시필, "?부유섭?장유승 역, 『소문사설-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휴머니스트, 2011
78 신익철, "「조선 후기 연행사의 盤山유람과 원굉도의 「遊盤山記」」", 『한문교육연구』 42호, 한국한문교육학회, 2014
79 조송식, "「동아시아 예술론에서 유가 문질론(文質論)의 수용과 변환」", 『美學』 82 호, 한국미학회, 2016
80 신익철, "「이기지(李器之)의 『일암연기(一菴燕記)』와 서학 접촉 양상」", 『東方漢文 學 』 29호, 동방한문학회, 2005
81 박성호, "「연행록의 전설(傳說)수용 양상과 『일암연기(一庵燕記)』의 글쓰기 방식」", 『溫知論叢』 49호, 온지학회, 2016
82 임영길, "「18~19세기 조선 문인들의 北京 인식과 기록 양상-탐방 공간의 확장과 관련하여-」", 『동양한문학연구』 54호, 동양한문학회, 2019
83 손환일, "「<요계관방지도(遼芥關防地圖)>의 서체 고찰 - 이이명(李이命)의 서체를 중심으로」", 『단군학연구』 24호, 단군학회, 2011
84 진재교, "「실학(實學)에서의 한시(漢詩), 한시(漢詩)에서의 실학(實學) -그 시각과 연구방법」", 『한국실학연구』 18호, 한국실학학회, 2009
85 정훈식, "「『을병연행록』에 나타난 ‘부끄러움’에 대하여 : 北學의 감정적 기원에 관 한 시론」", 『코기토』 72호, ,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2
86 김선희, "「격물궁리지학, 격치지학, 격치학 그리고 과학 -서양 과학에 대한 동아시 아의 지적 도전과 곤경-」", 『개념과 소통』 17호, 한림과학원, 2016
87 김형술, "「천기론(天機論)의 비평사적 의의와 한시 창작상의 공효(功效) -백악시단 의 시론과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한시연구』 22호, 한국한시학회, 2014
88 김인규, "「유수원(柳壽垣)의 직분주의(職分主義) 신분제 개혁론 -사민분업(四民分 業)과 사민일치(四民一致)를 중심으로-」", 『동방학』 16호, 한서대학교 동양고 전연구소, 2009
89 조규익, "「연행록(燕行錄)에 반영된 천산(千山) 의무려산(醫巫閭山) 수양산(首陽山) 의 내재적 의미-연행(燕行) 노정(路程) 연구의 일환으로-」", 『語文硏究』 32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04
90 임종태, "「“극동(極東)과 극서(極西)의 조우”: 이기지(李器之)의 『일암연기(一菴燕 記)』에 나타난 조선 연행사의 천주당 방문과 예수회사와의 만남」", 『한국과학사 학회지』 31호, 한국과학사학회, 2009
91 임종태, "「숙종대의 과학과 실학 ; “서양의 물질문화와 조선의 의관(衣冠)”: 이기지 (李器之)의 『일암연기(一菴燕記)』에 묘사된 서양 선교사와의 문화적 교류」", 『한 국실학연구』 24호, 한국실학학회, 2012
92 임준철, "「18세기 이후 연행록(燕行錄) 환술기록(幻術記錄)의 형성배경과 특성 -홍 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김경선(金景善)의 환술기록(幻術記錄) 을 중심으로 -」", 『韓國漢文學硏究』 47호, 한국한문학회, 2011
93 홍성화, "「명대(明代) 후기(後期) 상업서(商業書)를 통해서 본 객상(客商)의 윤리의 식(倫理意識) : 『토상류요(土商類要)』,『객상일람성미(客商一覽醒迷)』를 중심으 로」", 『중국사연구』 56호, 중국사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