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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通典』 「邊防門」 東夷目의 구성과 한국고대사 인식 硏究 = Study on Chapter of Dong-yi of the Frontier Defense Section, Tongdian focused on its Structure and Chinese Perception of Ancient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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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通典』은 唐의 재상을 역임하였던 杜佑가 저술한 政書로, 歷代의 典章制度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다. 『通典』은 총 9門으로 구성되었으며, 中國 正史의 志 체계에 바탕을 두어 작성...

      『通典』은 唐의 재상을 역임하였던 杜佑가 저술한 政書로, 歷代의 典章制度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다. 『通典』은 총 9門으로 구성되었으며, 中國 正史의 志 체계에 바탕을 두어 작성되었다. 「邊防門」 앞의 門에는 주로 당의 內治와 관련된 내용들로 작성된 반면, 「邊防門」은 外治와 관련하여 서술되었다. 「邊防門」은 邊境 防禦의 뜻을 지니며, 이는 두우가 중국 주변의 四夷를 敵이자 경계 대상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邊防門」의 구성을 살펴보면 가장 앞부분에 東夷目이 배치되었다. 동이목에는 한국 고대 국가를 비롯한 중국 동쪽에 있었던 여러 세력들의 내용이 수록되었다. 「邊防門」 序에 따르면 두우는 중국은 聖人의 敎化가 이루어졌음에 반해, 사이는 중국의 옛 모습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다. 두우는 외부 세력을 먼저 교화로 다스려야 하며, 통하지 않을 경우 방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邊防門」을 작성하였다.

      동이목 序略은 『後漢書』 「東夷列傳」의 序에 기반을 두어 작성되었다. 『後漢書』에서는 先秦時代의 東夷를 중점으로 서술하였는데, 두우는 여기에 朝鮮의 존재를 부각하였다. 이는 중국인 箕子가 朝鮮에 책봉된 일을 계기로 동이에 중국의 교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漢代 이후는 한국 고대의 주요 국가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두우와 당의 한국고대사 인식을 고찰하기 위하여, 먼저 동이목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동이목에서 한국 고대의 주요 국가로 朝鮮·三韓·百濟·新羅·夫餘·高句麗를 선정하였으며, 해당 節의 내용을 中國 正史 및 여러 史書와 비교·대조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록 유사도 분석 방법’을 통해 각 사료들을 분석하였다. 당대까지 편찬된 中國 史書의 기록을 『通典』의 기록과 직접 대조하여, 어느 사서를 주로 참고하였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아울러 각 사서의 유사도를 구분하고, 유사도가 부족한 경우 두우가 기존 사서 기록을 조합·수정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우는 『通典』을 작성하면서 하나의 주요 사서만을 보고 참고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사료를 취합하고 분석하면서 서술하였다. 朝鮮節의 경우 『史記』를 주로 참고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後漢書』를 참고하였다. ‘箕子朝鮮 → 衛滿朝鮮 → 漢四郡’으로의 계승 관계가 명확하게 설정되었으며, 차후 여러 역사서의 조선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馬韓節·辰韓節·弁辰節은 삼한이라는 큰 틀 속에서 유기적인 연관관계가 확인된다. 『後漢書』를 크게 참고하였으며, 『三國志』도 반영하며 내용을 보완하였다.

      百濟節은 다양한 사료를 섭렵하여 작성되었다. 『周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백제의 풍습 관련 기록에서 공통점이 주로 확인된다. 『隋書』 또한 백제절 전반에 걸쳐 참고 되었다. 백제절에서는 기존 사서에서 확인되지 않는 기록들이 확인되는데, 이는 현전하지 않는 사서를 참고하거나 두우의 歷史地理學的 지식이 반영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新羅節은 『隋書』와 『梁書』의 기록을 주로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당대의 신라 관련 기록은 거의 없으며 新羅王 金春秋가 來朝하였다는 기록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의 입장에서 신라와의 관계는 羅唐戰爭과 같은 불편한 사건이 있으므로, 그에 대한 서술을 회피하려는 정치적인 입장이 반영된 결과물로 해석된다.

      夫餘節은 『三國志』를 크게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며, 시대 변화에 따라 『後漢書』와 『晋書』도 참고되었다. 부여절의 마지막은 중국의 도움으로 부여가 회복되었다고 하여, 中華의 은혜로 나라를 회복하였다는 인식을 반영하였다. 高句麗節은 동이목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두우는 수많은 사서를 참조하여 고구려절을 서술하였는데, 『後漢書』를 비롯하여 『三國志』·『高麗記』·『北史』를 크게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고구려절의 절반은 기존 사서를 참고한 것이며, 다른 절반은 당대의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 전쟁과 관련된 내용은 후대의 자료와 비교하여 소략한 편이다. 말미에 있는 狄仁傑의 上疏文은 두우의 의도와 부합되기 때문에 인용되었다.

      『通典』에서는 遼東과 한반도 일대를 樂浪과 연계시키는 경향이 확인된다. 중국에서는 한대 이래로 낙랑과 玄菟를 중국의 영토로 인식하였다. 「州郡門」과 「邊防門」에서는 낙랑을 앞세워 중국과 한국 고대 국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사례들이 자주 확인된다. 이는 낙랑을 통해 동이를 이해하려는 경향과 중국의 낙랑 지역의 연고권 주장과도 연관된다.

      당 조정의 입장에서 낙랑 지역은 未收復地에 해당하나, 두우는 전쟁 보다는 현상 유지의 평화를 원하였다. 두우는 더 이상 당이 과거의 覇道政治를 펼칠 수 없기 때문에, 교화를 통해 주변 세력을 다스리는 王道政治를 추구하였다. 『通典』에서의 한국고대사 서술은 후대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두우는 기자조선을 정점으로 한 ‘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 → 고구려 → 안동도호부’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通典』의 인식을 바탕으로 高麗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생각하여, 다시 ‘고구려 → 고려 → 조선’으로 계승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通典』은 당대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通典』 이전 즉 隋·唐代 이전에 중국에서는 箕子朝鮮을 통해 한국고대사를 인식하였다. 『尙書大傳』의 箕子東來說 기록 이후 중국에서는 기자조선에 대한 관념이 형성되었다. 漢代에는 조선을 위만조선으로 인식하였음에 비해, 『三國志』 단계에서는 한반도 북부는 물론 남부까지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수·당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隋代의 裴矩는 고구려 정벌의 명분으로 郡縣回復論을 제기하였다. 고구려의 땅이 본래 중국의 郡縣에 해당하였다는 주장이며, 唐代에서도 溫彥博과 唐 太宗이 배구와 유사한 인식을 보였다. 중국에서는 고구려와 고조선을 연계시켜 인식하였고, 그 결과물로 寶藏王을 朝鮮王으로 책봉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通典』을 통해 체계화되었다. 정작 고구려에서는 조선을 계승하였다는 인식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고구려의 신앙 체계의 일부에서 箕子神의 존재가 확인되는 정도였다. 고구려 유민 중에서 朝鮮人을 자처하는 사례들도 확인되는데, 고구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및 기자신의 존재와 보장왕의 조선왕 책봉 등으로 인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通典』 「邊防門」을 살펴보면 ‘東夷之地’와 같은 표현이 확인된다. ‘今’字를 써서 시점이 두우 當代임을 표시하였다. 이는 단순히 동이의 주민이 살고 있던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모종의 목적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이지지’ 기록과 관련하여 『舊唐書』의 天寶年間 영토 기록이 주목된다. 『通典』에서 ‘동이지지’로 표기된 기록이 『舊唐書』에서는 ‘高麗·渤海之地’로 기록되었다. 즉 ‘동이지지’라는 기술은 당이 의도적으로 고구려 국호를 회피하거나 渤海의 존재를 외면하기 위해서로 해석할 수 있다.

      ‘동이지지’에 해당하는 지역은 주로 요동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 해당하는데, 이곳은 한사군과 연관되며 안동도호부의 관할 지역이었다. 발해의 요동지역 진출과 관련하여, 문헌사료와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요동의 일부를 차지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즉 ‘동이지지’에서 ‘동이’가 ‘발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게 된다. 『舊唐書』와 『新唐書』에서는 발해를 동이가 아닌 北狄으로 표기하였다. 사서 편찬 당시 발해는 契丹에 의해 멸망되었으므로, 중국에서는 거란 영토를 기준으로 발해를 북적으로 분류하였다. 『通典』의 체례를 따른 『文獻通考』 등의 정서에서는 발해를 동이로 구분하였다. 이는 ‘동이지지’가 ‘고려·발해’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과 相通하는 인식이다.

      『通典』은 국내의 사서 즉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도 여러 영향을 미쳤다. 『三國史記』에서는 『通典』의 기록이 직접 인용과 간접 인용의 사례로 확인된다. 직접 인용의 경우 6건의 사례가 확인되며, 「雜志」에서 각 사서의 기록들과 함께 인용되었다. 간접 인용의 경우 4건의 사례가 확인되는데, 주로 「本紀」에서 활용 사례가 확인된다. 직접 인용의 경우 『通典』 본래의 문구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간접 인용도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三國遺事』에서는 『通典』의 인용 사례가 4건이 확인된다. 다만 내용을 살펴보면 『通典』이 그대로 적시되지 않고, 약간의 수정을 거치거나 전혀 다른 내용이 기재되어 기술되었다. 이는 『三國遺事』의 사료 활용 방법과 연관되어 해석할 수 있으며, 『通典』의 권위를 인지하여 일연이 관련 기록들을 서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通典』은 지식인들과 관료들이 크게 참고하는 책이었다. 『三國史記』를 통해 적어도 고려 중기부터 『通典』이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고려 成宗代부터 『通典』이 활용되고 정책에 참고 되었을 것으로도 추측된다. 『通典』은 역대 왕조의 전장제도를 정리하였기 때문에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의 撰者 또한 『通典』의 가치와 권위를 인지하였기에 인용을 하게 되었다.

      두우의 『通典』은 당대에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사료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사료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通典』은 당의 한국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그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후대의 관료들에게 애용되었으며, 그 결과 후대 중국인들의 한국고대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대의 입장에서 한국고대사를 바라보면, 역으로 당시의 정황과 중국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중국의 東北工程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당대에 정립된 한국고대사 인식이 바탕이 되었으며, 그 중심에 『通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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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1
      • 1. 연구 배경 3
      • 2. 연구 방법 17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1
      • 1. 연구 배경 3
      • 2. 연구 방법 17
      • Ⅱ. 『通典』 「邊防門」 東夷目의 구성과 서문 분석 20
      • 1. 杜佑의 생애와 『通典』 저술 배경 20
      • 2. 『通典』의 서술 체계와 「邊防門」의 구성 32
      • 3. 「邊防門」 序 분석 40
      • 4. 東夷目 序略 분석 51
      • Ⅲ. 東夷目 각국 기사의 전거 자료와 내용 분석 60
      • 1. 朝鮮節 61
      • 2. 馬韓·辰韓·弁辰節 72
      • 3. 百濟節 89
      • 4. 新羅節 106
      • 5. 夫餘節 117
      • 6. 高句麗節 131
      • Ⅳ. 東夷目의 한국고대사 인식과 東夷之地의 의미 182
      • 1. 중국의 한국고대사 인식과 『通典』 183
      • 1) 『通典』에서 확인되는 한국 고대 국가 인식 186
      • 2) 杜佑의 사상과 對外觀에의 반영 196
      • 3) 『通典』 이후 한국고대사 인식 205
      • 2. 『通典』 이전의 箕子朝鮮과 高句麗 認識 214
      • 1) 隋·唐 이전 중국의 朝鮮 인식 215
      • 2) 隋·唐의 箕子朝鮮 관념과 高句麗에의 투영 220
      • 3) 高句麗의 朝鮮과 箕子에 대한 인식 230
      • 3. 『通典』에 기재된 ‘東夷之地’ 의미 분석 239
      • 1) 『通典』의 ‘東夷之地’ 관련 기록 분석 240
      • 2) 東夷之地와 渤海의 연관성 검토 247
      • 3) 渤海의 東夷·北狄 구분 문제 253
      • Ⅴ. 『通典』이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미친 영향 260
      • 1. 『三國史記』에 인용된 『通典』 기록 분석 262
      • 1) 직접 인용 사례 262
      • 2) 간접 인용 사례 267
      • 2. 『三國遺事』에 인용된 『通典』 기록 분석 273
      • 3. 고려시대의 『通典』 인식과 활용 280
      • Ⅵ. 맺음말 285
      • 참고문헌 291
      • Abstract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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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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