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6~1567)이 33년 동안 쓴 『묵재일기(默齋日記)』를 통해 개인적 글쓰기의 특징 및 그 의의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각각 다양한 문화와 시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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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9
학위논문(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19. 2
2019
한국어
서울
A study on 『Mukjae's Diary』
iv, 166 p. : 삽화, 가계도 ; 26 cm
지도교수: 최귀묵
참고문헌: p. 151-162
I804:11009-00000008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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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6~1567)이 33년 동안 쓴 『묵재일기(默齋日記)』를 통해 개인적 글쓰기의 특징 및 그 의의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각각 다양한 문화와 시대 속...
본 논문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6~1567)이 33년 동안 쓴 『묵재일기(默齋日記)』를 통해 개인적 글쓰기의 특징 및 그 의의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각각 다양한 문화와 시대 속에서 자신의 삶을 글로 써 왔다. 그 삶의 다양성과 다층성을 이해하기 위해 조선 시대 쓴 수많은 일기류를 텍스트의 종류로 확장하여 글쓰기의 양상을 살피는 것은 유용하다. 이것은 문학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일기는 누구든지 쓸 수 있지만 모두가 쓰는 것은 아닌, 아주 특수한 개인적 글쓰기다. 현재까지 학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려 시대까지 개인적 글쓰기인 일기가 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적인 글쓰기로 개인의 일상을 기록한 개인적 글쓰기는 조선 시대에 비로소 등장했다. 특히 조선 중기에 개인적 글쓰기가 사대부의 일기류로 번성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본고는 16세기의 정치·사회·역사·문학사적 맥락을 통해 개인적 글쓰기의 출현 및 그 번성의 상관 관계성을 따져 보았다. 첫 번째, 정치상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조선 왕조 시대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훈구파에 대항하는 사림파가 등장했다. 사림파는 기득권(훈구파) 세력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유교적 이념에 대한 철저한 실천성을 강조했다. 가장 큰 변화는 언로(言路)를 열어 둠으로써 사대부의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강조했다. 언로의 개방은 사대부 개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사림파는 사상적 측면으로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소학』의 보급은 당시 사대부들에게 일상의 중요성을 주목하게 했다. 그들은 나날의 중요성을 인식한 자들이었고, 그들의 일기는 대체로 사실 기록에 치중했다. 그리고 사대부의 개인적 글쓰기는 수양(修養) 도구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조선 전기에 사회·문화적 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16세기에 쓴 사대부의 사적 일기에 정확한 날짜와 간지가 나타났다. 이것은 세종 대 과학 기술의 발달 및 역서의 보급과 밀접한 연관 관계에서 해명될 수 있다. 세종 대에 우리 고유의 달력 칠정산이 만들어졌다. 달력이 만들어진지 100여 년이 지난 후에 사대부의 일기 속에 정확한 달력 날짜가 나왔다. 개인적 글쓰기에 일기체가 완성된 것은 조선 전기 역서의 발달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묵재일기를 통해 파악한 이문건의 개인적 글쓰기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이문건은 기억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중심으로 사실을 기록했고, 후손이 반드시 그것을 기억해 주길 희망했다. 이문건의 『묵재일기』 는 후일을 위해 기억을 재소환 하기 위한 장치로써 글쓰기였다. 또, 『묵재일기』 는 주기적인 반복성을 띠었는데, 그것은 가족과의 갈등이 있을 때 나타났다. 그의 글쓰기는 가족 갈등의 서사였고, 글쓰기를 통한 자기 치유의 방편이었다. 끝으로 그의 문체는 압축되고 생략이 많다. 그의 글쓰기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징후적 독해법을 제안해 보았다.
16세기 개인적 글쓰기 출현의 한 가운데 『묵재일기』 가 위치해 있다. 『묵재일기』 에 나타난 이문건 글쓰기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문건은 공(公)과 사(私)의 양쪽에 위치하는 개인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적 일기와 사적 일기의 병행적 글쓰기가 가능했다. 둘째, 이문건의 23년간 유배 생활은 비문학적 글쓰기에서 문학적 글쓰기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묵재일기』 의 증답 기록은 자신의 과거 사회적 지위를 재확인하고 언젠가 해배(解配)될지도 모르는 희망을 가지고 쓴, 자기 정체성을 증명하는 글쓰기였다.
본 연구는 앞으로 산재해 있는 조선시대 일기류 연구에 관점의 다양화에 대한 하나의 시도로 제언을 하고자 한다.
목차 (Table of Contents)
1 성주이씨묵재공종회 소장, "묵재일기", 묵재일기 원본 1책~10책, null
2 이문건 지음, 이상주 역, "양아록", 태학사, 1997
3 설 흔, "책의 이면", 역사의 아침, 2012
4 이상현 옮김, 이곡 지음, "국역 가정집", 민족문화추진회, 2006
5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제사",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총서 37, 2003
6 대한감염학회, "한국전염병사", 군자출판사, 2009
7 이문건, "묵재일기상 하", 국사편찬위원회, 1998
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일기로 본 조선", 글항아리, 2013
9 김인규 옮김, 이문건 지음, "譯註 默齋日記 1~4", 민속원, 2018
10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조선시대 생활사 2", 역사비평사, 2000
1 성주이씨묵재공종회 소장, "묵재일기", 묵재일기 원본 1책~10책, null
2 이문건 지음, 이상주 역, "양아록", 태학사, 1997
3 설 흔, "책의 이면", 역사의 아침, 2012
4 이상현 옮김, 이곡 지음, "국역 가정집", 민족문화추진회, 2006
5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제사",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총서 37, 2003
6 대한감염학회, "한국전염병사", 군자출판사, 2009
7 이문건, "묵재일기상 하", 국사편찬위원회, 1998
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일기로 본 조선", 글항아리, 2013
9 김인규 옮김, 이문건 지음, "譯註 默齋日記 1~4", 민속원, 2018
10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조선시대 생활사 2", 역사비평사, 2000
11 이수건, "영남사림파의 형성", 영남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 1979
12 김 돈, "조선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13 이문건, "묵재집,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null
14 이문건, "양아록,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null
15 정하영, "「朝鮮朝 ‘日記’類 資料의 文學史的 意義」, 정신문화연구 19(4)", 한국학중 앙연구원, 1996
16 유성선, "「經筵日記의 板本 및 標題에 관한 書誌的 檢討」, 율고사상연구 18", 율 곡학회, 2009
17 유성선, "「石潭野史 日記에서 經筵日記까지 刊行過程의 思想的 推移 硏究], 한 문고전연구 22", 한문고전연구학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