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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韓地域 出土 高句麗土器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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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88년 몽촌토성 발굴조사에서 고구려토기가 확인되면서 남한지역의 고구려 고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고구려토기에 대한 고고학적지식이 일천하였기에 고구려토기...

      1988년 몽촌토성 발굴조사에서 고구려토기가 확인되면서 남한지역의 고구려 고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고구려토기에 대한 고고학적지식이 일천하였기에 고구려토기가 왜 한강유역에 남아있으며, 어느 시기에 속하는 것인가를 해결하기 위하여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학계의 통설에 근거하여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한 시간적 범위를 475년~551년으로 간주하고, 이 연대를 고구려유적에 대입하여 안정적인 편년의 틀을 구축하였다. 이런 편년관은 지금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본고는 연천 호로고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고구려토기를 편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고구려토기 편년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례가 발생한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하였다. 기존 연구성과에 따르면 고구려가 나제연합군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을 상실한 551년을 기점으로, 아차산 보루군은 그 이전으로, 호로고루 성벽단계의 유구는 그 이후로 편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형식학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양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난맥상은 고구려토기에 대한 연구가 정치하지 못한 상황에서 유적의 연대관을 역사학적 견해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연구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호로고루 출토 고구려토기들을 고고학적 방법론에 근거하여 분석해 보았다. 먼저 호로고루 유구의 층서관계를 검토하여 시간적으로 선후관계가 있는 유구를 선별하고, 그 유구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검토해 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파악된 출토유물의 변화상, 제작기법상의 특징을 종합하여 호로고루 출토 고구려토기를 3개 시기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각 시기의 절대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종합하여 1기(5세기 중엽~5세기 후엽), 2기(6세기 전엽~6세기 중엽), 3기(6세기 후엽 이후)로 상정하였다.
      이후 호로고루 토기의 시기구분에 근거해서 남한지역 고구려유적의 토기들을 편년해 보았다. 이렇게 도출된 유적의 연대관을 바탕으로 동이, 시루, 뚜껑, 이부호, 구형호, 심발형토기를 유적별 선후관계에 따라 배열하여 고구려토기의 주요 기종별 변천상을 살펴보았다.
      한편 호로고루 토기 편년안을 토대로 남한지역의 고구려토기를 편년해보면, 기존의 남한지역 고구려토기 편년안과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은대리성, 몽촌토성, 마북동유적, 남성골산성, 한강 이남 고구려고분 출토품이 5세기 중엽~5세기 후엽으로, 구의동보루는 6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것은 기존의 편년안과 유사하지만,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기존 견해와는 달리 중심연대가 6세기 후엽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구체적으로 아차산보루군은 6세기 중엽에 축조되어 6세기 후엽까지 사용된 것으로, 용마산보루군, 시루봉보루는 6세기 후엽에 축조되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파악된 남한지역 고구려토기의 연대는 기존 연대관과 차이가 있으므로 기존 연대관이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역사학계의 통설을 살펴보고, 문헌자료에 대한 역사학계의 최근 연구경향을 반영하여 본고의 토기편년안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최근에 제시된 역사학계의 견해 중에는 본고의 토기편년안과 부합되는 견해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연대관의 차이는 결국 문헌자료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지, 본고의 편년안이 문헌자료와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계의 새로운 견해와 본고의 토기편년안을 결부시켜보면, 고구려는 475년~551년까지 지속적으로 한강유역을 영유한 것이 아니라, 475년~598년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3번 이상 남하와 철수를 반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특히 한강유역의 아차산, 용마산, 시루봉 일대의 전체 보루군이 완성되어 하나의 방어체계로 운영된 시기는 6세기 중엽이 아니라,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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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s discovered the Goguryeo pottery during the excavation of the Mongchontoseong in 1988, the archaeology of Goguryeo has initiated a new era. Since archaeologists had a little knowledge about the Goguryeo pottery at that time, historians ideas had to ...

      As discovered the Goguryeo pottery during the excavation of the Mongchontoseong in 1988, the archaeology of Goguryeo has initiated a new era. Since archaeologists had a little knowledge about the Goguryeo pottery at that time, historians ideas had to be adopted to find out why these pottery were found by the Han river and what period of time they were made. According to a conventional theory among historians, it was generally acknowledged that Goguryeo had occupied the Han river from A.D. 475 to 551. Thus, this chronology idea has widely accepted so far.
      As recognizing that the chronology of Goguryeo pottery from Horogoru cannot be properly studied by the current existing model, this study has focused on the Goguryeo pottery from Horogoru, Yeoncheon County.
      To solve this problem, the new chronology was conducted based on the archaeological phenomena of Horogoru (e.g. stratigraphic order, changes in physical attributes and manufacturing techniques). As a result, this study has classified the Goguryeo pottery from Horogoru into 3 different stages ; Stage Ⅰ (mid and late of 5th century), Stage Ⅱ (early and mid of 6th century), and Stage Ⅲ (after the late of the 6th century).
      The Eundaeri fortress, Mongchontoseong, Mabuckdong, Namseonggol Fortress, and Goguryeo tombs in the south of the Han river is chronicled in the middle/late of 5th century. The fortress of Kuidong was constructed in the middle of 6th century, and the fortresses of Mt. Acha were assumed to be built from the middle to late of 6th century. Finally, the study presumes that the fortresses of Mt. Yongma and Sirubong were constructed around the late 6th century.
      This article has found that the new chronology based on Horogoru Goguryeo pottery is remarkably different from the existing chronology.
      Since the new chronology of Goguryeo pottery is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ly accepted one. This study has attempted to connect with the new chronology based on Horogoru Goguryeo pottery as well as to examine those available historical literatures and the latest historians ideas. The results has suggested that Goguryeo had not continuously occupied the Han river from A.D. 475 to 551, but had repeatedly come and withdrawn at least three times from A.D. 475 to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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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i
      • Ⅰ. 머리말 1
      • 1. 연구목적 1
      • 2. 연구사 3
      • 3. 연구방법 8
      • 【국문초록】 i
      • Ⅰ. 머리말 1
      • 1. 연구목적 1
      • 2. 연구사 3
      • 3. 연구방법 8
      • Ⅱ. 호로고루 출토 고구려토기의 성격 10
      • 1. 층서관계 11
      • 2. 출토토기 20
      • 3. 토기의 변천상 36
      • 4. 절대연대 설정 46
      • Ⅲ. 남한지역 고구려토기 편년 51
      • 1. 고구려유적 출토 토기편년 51
      • 2. 주요기종별 변천양상 및 편년 75
      • 3. 문헌기록 검토 87
      • Ⅳ. 맺음말 99
      • 참고문헌 101
      • Abstract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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