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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조선에서의 벚꽃의 문화접변 = 우이동의 벚꽃구경에서 창경원의 벚꽃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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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81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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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일본제국주의 지배 하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벚꽃의 문화접변을 분석했다. 벚꽃의 문화접변은 1910년을 전후해서 우이동을 중심으로 정착한 벚꽃구경이 1924년 이후 창경원의 벚꽃...

      본고는 일본제국주의 지배 하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벚꽃의 문화접변을 분석했다. 벚꽃의 문화접변은 1910년을 전후해서 우이동을 중심으로 정착한 벚꽃구경이 1924년 이후 창경원의 벚꽃놀이로 변화해갔는데 구체적인 접변과정은 아래와 같다.
      구평형은 1910년대 우이동의 벚꽃구경으로, 도심에서 떨어진 벚꽃 밀집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낮에 모여 자연경관의 벚꽃을 즐기는 상춘활동이다. 부분적인 해체는 조선에 이주한 일본인의 벚꽃 명소의 필요성, 일제의 관제문화 정책과 주민의 반응, 교통 불편과 비용에 대한 불만, 도시민의 일상 탈출 욕구, 밤벚꽃놀이 요구 등이다.
      부분적인 해체를 멈추기 위해 외래문화요소로서 일본 우에노공원의 벚꽃놀이가 전파되어 창경원에 제시되어 1918년경부터 벚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이에 벚꽃을 일본의 상징으로 인식한 조선인과 벚꽃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반발했으나 1924년 밤벚꽃놀이가 열리면서 벚꽃놀이는 일단 수용되었다. 창경원의 벚꽃놀이는 우이동의 벚꽃구경과는 달리 접근성이 뛰어난 도심의 전통적인 장소에 근대적인 박물관 · 동물원 · 식물원 등과 인공 설비를 갖춘 복합공간에서 펼쳐졌다.
      문화적 저항으로는 일본의 상징인 벚꽃에 대한 조선인들의 강한 거부감과 생활고로 인한 비용 부담, 지나친 향락에 대한 반발, 무질서와 탈선에 대한 거센 비판 등을 들 수 있다.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근대적인 기술의 전기 조명 장치를 확충하고 여흥을 위한 연예장을 설치했으며 영화를 상영하고 관광 연계 상품을 개발하는 등 재래의 문화요소도 변하면서 문화요소의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활기찬 벚꽃문화로 재구성되었다. 그 결과 창경원의 벚꽃놀이는 매년 봄이 되면 성황을 이루며 식민지 조선에서 상춘문화로 자리 잡아 신평형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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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acculturation of cherry blossom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The acculturation of cherry blossoms changed from cherry blossom viewing which settled in Ui-dong around1910 to the cherry blossom festival in Changgyeongwon from 1...

      This paper analyzes the acculturation of cherry blossom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The acculturation of cherry blossoms changed from cherry blossom viewing which settled in Ui-dong around1910 to the cherry blossom festival in Changgyeongwon from 1924. The specific process was as follows.
      The old equilibrium was the cherry blossom viewing around Ui-dong in the 1910s. It was a spring activity in which many people gathered in the daytime using various means of transportation to reach the cherry blossom area, which was located away from the inner city so to enjoy the natural scenery of the cherry blossoms. Partial decline began with the need for a cherry blossom viewing place for Japanese who had moved to Korea, the cultural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response of residents, dissatisfaction with traffic inconveniences and the cost, the desire to escape from city life, the demand on night viewing for cherry blossoms, and other factors.
      In order to stop the partial decline, the cherry blossom festival at Ueno Park in Japan was spread as an element of foreign culture, and the cherry blossom festival began in Changgyeongwon from around 1918. Therefore, Koreans who recognized the cherry blossom as a symbol of Japan and those who could not afford to enjoy cherry blossoms were opposed. But when the cherry blossom festival was held at night in 1924, it was accepted. Unlike cherry blossom viewing in Ui-dong, the cherry blossom festival in Changgyeongwon was held in a complex space with modern spaces such as a museum, a zoo, a botanical garden, and artificial facilities in a traditional place of the city with excellent accessibility.
      There was cultural resistance, including strong opposition to Japanese cherry blossoms, cost burdens due to the high cost of living, opposition to excessive pleasure, and fierce criticism of disorder and derailment. In order to overcome the resistance, they expanded the modern technology electrical lighting system, set up entertainment venues, screened movies, and developed tourism-related products. As the traditional cultural elements changed, a reinterpretation of the cultural elements took place and was reconstructed into a vibrant cherry blossom culture. As a result, the cherry blossom festival in Changgyeongwon became prosperous every spring and became the new equilibrium as a new culture of spring activity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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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구평형과 부분적인 해체의 개시
      • 3. 외래문화요소의 전파 · 제시와 선택 · 수용
      • 4. 문화적 저항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구평형과 부분적인 해체의 개시
      • 3. 외래문화요소의 전파 · 제시와 선택 · 수용
      • 4. 문화적 저항
      • 5. 문화요소의 재해석, 문화의 재구성과 신평형
      • 6.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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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휴지통"

      2 김정은, "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 글로벌일본연구원 (22) : 77-110, 2014

      3 오창영, "한국동물원 80년사(창경원편)" 1993

      4 김현숙, "창경원 밤 벚꽃놀이와 夜櫻"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19) : 139-162, 2008

      5 "조선일보"

      6 청오, "조선 각지 꽃 품평회: 요새에 피는 팔도의 꽂 이야기" (20) : 1929

      7 박소현, "제국의 취미-이왕가박물관과 일본의 박물관 정책에 대해" 한국미술연구소 18 : 2004

      8 최길성, "일제시대 한 어촌의 문화변용, 상" 아세아문화사 1992

      9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 43 (43): 1-15, 2015

      10 청오, "우이동의 앵화 앵화의 한 아버지는 조선"

      1 "휴지통"

      2 김정은, "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 글로벌일본연구원 (22) : 77-110, 2014

      3 오창영, "한국동물원 80년사(창경원편)" 1993

      4 김현숙, "창경원 밤 벚꽃놀이와 夜櫻"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19) : 139-162, 2008

      5 "조선일보"

      6 청오, "조선 각지 꽃 품평회: 요새에 피는 팔도의 꽂 이야기" (20) : 1929

      7 박소현, "제국의 취미-이왕가박물관과 일본의 박물관 정책에 대해" 한국미술연구소 18 : 2004

      8 최길성, "일제시대 한 어촌의 문화변용, 상" 아세아문화사 1992

      9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 43 (43): 1-15, 2015

      10 청오, "우이동의 앵화 앵화의 한 아버지는 조선"

      11 박성호, "예나 지금이나" 그린비 2016

      12 김영미, "식민지기 ‘오락 不在’ 담론의 양상" 한국사회사학회 (112) : 241-277, 2016

      13 高崎宗治,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군인에서 상인, 그리고 게이샤까지" 역사비평사 2006

      14 김동명, "식민지 시기 차(茶)의 문화접변" 한일관계사학회 (31) : 133-167, 2008

      15 류순열, "벚꽃의 비밀" ESSAY 2012

      16 김해경, "벚꽃을 통해 본 근대 행락문화의 해석" 한국전통조경학회 29 (29): 124-136, 2011

      17 "매일신보"

      18 "동아일보"

      19 강영조, "근대 부산에서 벚꽃 명소의 입지적 특성과 성립 시기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 44 (44): 47-58, 2016

      20 平野健一郎, "국제문화론" 풀빛 2004

      21 "花見の季節"

      22 豊田鉄騎, "星霧十五年" 帝國地方行政學會 1926

      23 亀岡栄吉, "四季の朝鮮" 朝鮮拓殖資料調査会 1926

      24 上田常一, "京城の桜の来歴(上)"

      25 이규수, "‘재조일본인’ 연구와 ‘식민지수탈론’" 일본사학회 (33) : 143-171, 2011

      26 Byong-Won Lee, "Musical Acculturati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 A Global Perspective and Critical Assessment" 동양음악연구소 27 : 1-22, 2005

      27 "Memorandum for the Study of Acculturation" 38 : 149-152, 1936

      28 권보드래, "1910년대의 새로운 주체와 문화-『매일신보』가 만든, 『매일신보』에 나타난 대중" 민족문학사학회 (36) : 147-16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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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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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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