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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東諸國紀』의 倭人接待規定과 朝日關係 = 三浦에서의 접대규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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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6008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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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초기부터 다양한 왜구대책을 실시한 결과 태종 9년을 전후하여 왜구의 침입은 감소한 반면 통교왜인은 증가하였다. 조선에서는 통교자의 증가에 따른 치안?경제상의 부담과 왜구문제에...

      조선초기부터 다양한 왜구대책을 실시한 결과 태종 9년을 전후하여 왜구의 침입은 감소한 반면 통교왜인은 증가하였다. 조선에서는 통교자의 증가에 따른 치안?경제상의 부담과 왜구문제에 대한 자신감, 일본의 국내 정세에 대한 지식의 확대 등을 배경으로 조선에서는 서계?도서?문인 등의 왜인통제책을 실시하였다. 이와 더불어서 통교왜인이 포소에 도착한 이후부터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왜인접대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왜인접대규정은 세종 20년(1438)부터 세종 25년(1443)까지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정비되었다. 이 시기는 조선이 대마도와 문인제도, 계해약조를 정약한 시기이다. 특히 문인제도와 계해약조는 조선의 강력한 왜인통체책이 되었으며, 대마도를 조선의 외교질서 속에 편입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같이 왜인접대규정은 왜인통제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정비되었다.
      그 후 왜인접대규정은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나 미비점을 보완하여 성종초에 제도적으로 완비되었다. 그 결과 왜인접대규정은 『해동제국기』의 「조빙응접기」에 집대성되어 왜인접대 시에 典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왜인접대규정을 강력한 시행하여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는 조선정부의 의도와 조선으로부터 많은 미두를 지급받고,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왜인들의 의도가 부딪치면서 결국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그 후 양국관계는 단절과 회복이 반복되면서 점차 쇠퇴해갔다. 그러나 왜인 접대규정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었으며, 접대규정의 많은 항목은 조선후기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왜인접대규정은 왜인통제책과 더불어 양국의 외교관계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전기 한일관계사에서 가지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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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hoson government have carried out a variety of policies to check Japanese Pirates from the early period of National Foundation. As a result of that, Japanese traders increased greatly whereas the invasion of Japanese Pirates decreased around the 9th ...

      Choson government have carried out a variety of policies to check Japanese Pirates from the early period of National Foundation. As a result of that, Japanese traders increased greatly whereas the invasion of Japanese Pirates decreased around the 9th year of King Taejong" reign. But according to the increase of Japanese traders, the new problems such as the public security and the adverse current of trades occurred. So Chonson government began to revise the provisions related to the treatment for Japanese traders to solve these problems.
      The provisions were mainly revised from the 20th year of King Sejong" reign to the 25th year of the King. In the same period Choson also made Munin System and concluded Gyehae treaty with Japan. These two systems contributed to control Japanese thoroughly and to incorporate Tsushima into the foreign order of Choson. The provisions of treatment for Japanese were completed in the early period of King Seongjong by supplementing defects as they revealed some problems in the process of enforcement. Since then, the provisions were included in the Chobingeungjeopgi of Haedongjegukgi and became a typical model of the treatment of Japanese.
      Chonson government continued to try to economize expenditure carrying out the provisions of treatment to Japanese thoroughly whereas Japanese wanted to maximize profits in trades with Choson. Interests between two countries were at last clashed and Sampowaeran broke out as a result of that. After that, the relations of two were getting worse while repeating severance and recovery of diplomatic relations. In spite of that, two countries did not give up discussions about the provisions completely and so many articles of the provisions were maintained until the late Choson. In short, the significance of the provisions lies in that they have worked as a main factor to keep up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oson and Japanese in the first half period of Cho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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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왜인의 통제와 왜인접대규정의 성립배경
      • 3. 왜인접대규정의 내용
      • 4. 맺음말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왜인의 통제와 왜인접대규정의 성립배경
      • 3. 왜인접대규정의 내용
      • 4. 맺음말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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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38-, 2009

      2 "해동제국기"

      3 "중종실록"

      4 하우봉, "조선초기 대일사행원의 일본인식" 국사편찬위원회 14 : 96-97, 1990

      5 한문종, "조선전기 대일외교정책연구-대마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북대 1996

      6 이현종, "조선전기 대일교섭사연구" 한국연구원 1965

      7 "세종실록"

      8 "세조실록"

      9 "성종실록"

      10 "명종실록"

      1 38-, 2009

      2 "해동제국기"

      3 "중종실록"

      4 하우봉, "조선초기 대일사행원의 일본인식" 국사편찬위원회 14 : 96-97, 1990

      5 한문종, "조선전기 대일외교정책연구-대마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북대 1996

      6 이현종, "조선전기 대일교섭사연구" 한국연구원 1965

      7 "세종실록"

      8 "세조실록"

      9 "성종실록"

      10 "명종실록"

      11 河宇鳳, "申叔舟と『海東諸國紀』 -朝鮮王朝前期のある‘國際人’の營爲-, In 中世後期における東アジアの國際關係" 山川出版社 1997

      12 李燦, "海東諸國紀의 日本 및 琉球國地圖"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 4 : 1992

      13 朴慶嬉, "海東諸國紀에 나타난 申叔舟의 對日認識" 이화여대 1983

      14 엄찬호, "海東諸國紀'의 역사지리적 고찰" 한일관계사학회 (27) : 103-131, 2007

      15 "海東諸國紀 「朝聘應接記」 使船大小船夫定額"

      16 鄭杜熙, "朝鮮前期 支配層의 日本觀 -申叔舟의 『海東諸國紀』를 中心으로-" 전북대 인문과학연구소 9 : 1982

      17 中村榮孝, "倭人上京道路, In 日鮮關係史の硏究 上" 吉川弘文館 1965

      18 長正統, "中世日鮮關係における巨酋使の成立" 朝鮮學會 41 : 67-76, 1966

      19 신동규, "『海東諸國紀』로 본 中世日本의 國王觀과 日本國王使의 성격" 한일관계사학회 (27) : 133-171, 2007

      20 佐伯弘次, "『海東諸國紀』日本人通交者の個別的檢討, In 東アジアと日本" 2006

      21 Kenneth R. Robinson, "『海東諸國紀』寫本の一考察" 132 : 2002

      22 中村榮孝, "『海東諸國紀』の纂修と印刷, In 日鮮關係史の硏究 上" 吉川弘文館 1965

      23 佐伯弘次, "『海東諸國紀』の日本琉球圖と『琉球國圖』" 144 : 2006

      24 田中健夫, "『海東諸國紀』の日本琉球圖 -東アジア史的意義と南波本の紹介" 45 : 1988

      25 Kenneth. R. Robinson, "The Printed Haedong Chegukki and Korean-Japanese Relations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한국일본사상사학회 (9) : 89-122, 2005

      26 손승철, "'海東諸國紀'의 사료적 가치" 한일관계사학회 (27) : 3-37, 2007

      27 유재춘, "'海東諸國紀' 속의 三浦를 중심으로 한 군사방어에 대하여" 한일관계사학회 (27) : 39-8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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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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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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