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2005, when the ‘Korea-Japan Friendship Year’ was celebrated. Nevertheless Shimane Prefecture established and promulgated ‘Takeshima Day’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Simane Prefecture Notice No.40’ promulgated in 1905. This issue playe...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2005, when the ‘Korea-Japan Friendship Year’ was celebrated. Nevertheless Shimane Prefecture established and promulgated ‘Takeshima Day’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Simane Prefecture Notice No.40’ promulgated in 1905. This issue playe...
In 2005, when the ‘Korea-Japan Friendship Year’ was celebrated. Nevertheless Shimane Prefecture established and promulgated ‘Takeshima Day’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Simane Prefecture Notice No.40’ promulgated in 1905. This issue played a major role in Shimane Prefecture's attentio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as rapidly cooled. The Japanese parliament has asked the government for solutions in this regard, and proposed various measures along with measures. It also played a role in raising the interest of Japanese people in Dokdo.
Analyzing the content of the 『Japanese Parliamentary papers』, consider the Japanese political system’s process of establishing Takeshima Day and tried to reveal various contradictions.
Shimane prefecture has established and promulgated ‘Takeshima Day’ in order to draw atten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not political action toward Korea. Shimane prefecture was trying to reveal their identity by exploiting Korea-Japan problems related to Dokdo. The Japanese government was embarrassed about the issue made by Shimane Prefecture. Then about establishment of ‘Takeshima Day’ in Shimane Prefecturehas been criticized only by the actions of local governments and has drawn a line from the standpoint of the government. However, the improvement in relations with Korea has disappeared, and the Japanese government 's attitude toward Dokdo has been aggressively changed as Japan' s entry into the permanent seat became unclear. Rather, the Japanese government used the opportunity to open a new phase of the ‘Dokdo territorial issue’.
Through the contents of the 『Japanese Parliamentary papers』, I can confirm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s response to Dokdo has changed in the course of the chang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including international relations.
국문 초록 (Abstract)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한 2005년,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100주년을 빌미로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 이슈는 시마네현이 주목 받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한 2005년,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100주년을 빌미로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 이슈는 시마네현이 주목 받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일본 의회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정부의 해결 방안을 따져 물었고, 대책과 함께 여러 방안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이후 일본 국민들의 독도에 관심을 고조시키는데도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회 의사록』의 내용 분석을 통하여 일본 정치계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려는 목적과 과정을 살피고 그에 대한 여러 모순점들을 밝히고자 하였다.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공포한 것은 한국을 향한 정치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일본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사건이다. 시마네현은 독도와 관련한 한일 간의 문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시마네현이 만든 이슈에 대해 일본 정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행위로만 치부하고 정부의 입장과는 별개의 문제로 선을 그어나갔다. 그렇지만, 일본의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요원했으며,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마저 불확실해지자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태도를 공세적으로 바꾸었다. 오히려 일본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여는 계기로 활용하였다. 『일본의회 의사록』의 내용을 통하여 국제관계를 위시한 한일관계의 변화 속에서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대응 방식이 변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1 현혜경, "해양도서영유권 분쟁에 대한 일본의 기념의례 연구: ‘다케시마의 날’을 중심으로" 5.18연구소 13 (13): 395-440, 2013
2 배진수, "한일 간 독도 이슈의 추이와 일본의 도발 패턴 - 시기별·이슈별 국제정치적 변수를 중심으로 -" 독도연구소 (21) : 309-349, 2016
3 "주한 일본대사 망언"
4 "정부, “日 다케시마의 날 철폐 엄중히 촉구한다”"
5 "정부 ‘독도망언’ 日공사 불러 항의"
6 "일본의회 의사록(1987년 8월 19일~2007년 10월 30일)"
7 박병섭, "일본의 새 논조와 시마네현 어민의 독도어업" 9 : 2010
8 도시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일제식민지책임의 국제법적 검토" 독도연구소 (23) : 59-97, 2017
9 최장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논리" 국제학연구소 12 (12): 99-111, 2003
10 "일·소 영토 문제 재연"
1 현혜경, "해양도서영유권 분쟁에 대한 일본의 기념의례 연구: ‘다케시마의 날’을 중심으로" 5.18연구소 13 (13): 395-440, 2013
2 배진수, "한일 간 독도 이슈의 추이와 일본의 도발 패턴 - 시기별·이슈별 국제정치적 변수를 중심으로 -" 독도연구소 (21) : 309-349, 2016
3 "주한 일본대사 망언"
4 "정부, “日 다케시마의 날 철폐 엄중히 촉구한다”"
5 "정부 ‘독도망언’ 日공사 불러 항의"
6 "일본의회 의사록(1987년 8월 19일~2007년 10월 30일)"
7 박병섭, "일본의 새 논조와 시마네현 어민의 독도어업" 9 : 2010
8 도시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일제식민지책임의 국제법적 검토" 독도연구소 (23) : 59-97, 2017
9 최장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논리" 국제학연구소 12 (12): 99-111, 2003
10 "일·소 영토 문제 재연"
11 "일 문부상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는 일본 땅’ 명기해야"
12 박창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갈등의 규범 확산: ‘다케시마(竹島)의 날’과‘대마도(對馬島)의 날’조례 제정을 중심으로" 한국국제정치학회 48 (48): 357-380, 2008
13 "북방영토 반환 캠페인"
14 이창위, "북방4도 영유권에 대한 러일양국의 분쟁" 대한국제법학회 46 (46): 167-185, 2001
15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제출"
16 "꼬여만가는 한일관계-우리정부 카드는"
17 "교과서 왜곡 파문"
18 "日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가결(3보)"
19 "日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가결(2보)"
20 "日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추진"
21 김수희, "‘죽도의 날’제정 이후 일본의 독도 연구 동향 - 이케우치 사토시의 ‘석도’논의를 중심으로" 10 : 2011
22 "‘다케시마의 날’ 조례 全文"
23 "4도서 반환운동, 소련 일대사 불러 경고"
24 전진호, "21세기 한일관계의 현안과 전망" 한일군사문화학회 3 : 97-125, 2005
25 허영란, "1905년 ‘각의결정문’ 및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와 독도 편입" 독도연구소 (17) : 109-134, 2014
26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27 박창건, "'다케시마(竹島)의 날' 조례 제정에 대한 한국의 반응: 상응적 대응의 유효성과 딜레마" 극동문제연구소 25 (25): 99-129, 2009
28 알렉산더 북, ""죽도의 날"에의 길: 시마네 현과 도쿄와의 관계라고 하는 관점으로부터의 분석" 독도연구소 (17) : 309-339, 2014
정조의 후궁 元嬪洪氏의 생애와 상장례 -『淑昌宮喪草日記』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 士類의 불교적 이해 -신라의 사례와 양상을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