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에게 1960~1970년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와 ‘조선문학의 회’의 활동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70년에 결성한 ‘조선문학의 회...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7808920
장문석 (서울대학교)
2016
-
‘조선문학의 회’ ; 朝鮮文學の會 ; 오무라 마스오 ; 大村益夫 ; 가지이 노보루 ; 梶井陟 ; 다나카 아키라 ; 田中明 ; 오구라 히사시 ; 小倉尙 ; 조 쇼키치 ; 長璋吉 ; 이시카와 세쓰코 ; 石川節子 ; 마키세 아키코 ; 牧瀬暁子 ; 가지무라 마스미 ; 梶村真澄 ; 『조선문학-소개와 연구』 ; 『朝鮮文學-紹介と硏究』 ; 『현대조선문학선』 ; 『現代朝鮮文學選』 ; 와세다대학 ; 早稻田大學 ; 일본조선연구소 ; 日本朝鮮研究所 ; 간노 ; 히로비 ; 菅野裕尾 ; 와타나베 마나부 ; 渡部學 ; 가지무라 히데키 ; 梶村秀樹 ; 다케우치 요시미 ; 竹內好 ; 북망사 ; 北望社 ; 하타다 다카시 ; 旗田巍 ; 사에구사 도시카쓰 ; 三枝壽勝 ; 김달수 ; 金達壽 ; 윤학준 ; 尹學準 ; 임종국 ; 林鍾國 ; 『친일문학론』 ; 『親日文學論』 ; 김윤식 ; 金允植 ; 『상흔과 극복』 ; 『傷痕と克服』 ; 김우종 ; 金宇鍾 ; 고려서림 ; 高麗書林 ; 박광수 ; 朴光洙 ; 자이니치 ; 번역 ; 한국근대문학 아카데미즘 ; ‘백두산에서 현해탄까지’ ; ‘38선이 없는 마음’ ; 「朝鮮文学の会」 ; 『朝鮮文学-紹介と研究』 ; 『現代朝鮮文学選』 ; 早稲田大学 ; 渡部学 ; 三枝寿勝 ; 金達寿 ; 尹学準 ; 『親日文学論』 ; 在日 ; 翻訳 ; 韓国近代文学アカデミズム ; 「白頭山から玄界灘まで」 ; 「38線のない心」
KCI등재
학술저널
171-217(47쪽)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이 인터뷰는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에게 1960~1970년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와 ‘조선문학의 회’의 활동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70년에 결성한 ‘조선문학의 회...
이 인터뷰는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에게 1960~1970년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와 ‘조선문학의 회’의 활동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70년에 결성한 ‘조선문학의 회’는 일본인의 모임이자, 정치와 거리를 둔 학술 모임을 지향하였으며, 주요 동인은 오무라 마스오, 가지이 노보루, 다나카 아키라, 오구라 히사시, 조 쇼키치, 이시카와 세쓰코 등이었다. 이들은 동인지 『조선문학-소개와 연구(朝鮮文學-紹介と硏究)』(1970~1974)를 간행하고, 한국문학을 번역하였다. ‘조선문학의 회’는 한일협정 이후 현해탄을 건너 온 김윤식 등 한국의 연구자와 공명하며, 일본에서 한국근대문학 아카데미즘을 형성하였다. 1970년대 중반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임종국과 김윤식의 연구서를 번역한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였다. 그는 1960년대의 와세다대학 조선어 강좌, 일본조선연구소, 다케우치 요시미, 자이니치 문학자, 그리고 1970년대의 고려서림, 임종국, 김윤식 등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문학 연구와 번역을 실천하였다. 오무라 마스오 교수는 해방 전과 해방 후 그리고 백두산에서 현해탄까지를 포괄하는 폭넓은 시각과 ‘38선 없는 마음’이라는 균형 있는 시각에서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このインタビューは、大村益夫(早稲田大学名誉教授)に1960~1970年代日本の韓国文学研究と 「朝鮮文学の会」の活動について質問した内容をまとめたものである。1970年に結成された 「朝鮮...
このインタビューは、大村益夫(早稲田大学名誉教授)に1960~1970年代日本の韓国文学研究と 「朝鮮文学の会」の活動について質問した内容をまとめたものである。1970年に結成された 「朝鮮文学の会」は、日本人の集まりで、政治とは距離を置いた学術会を指向しており、主要な同人は大村益夫、梶井陟、田中明、小倉尙、長璋吉、石川節子などであった。かれらは同人誌 「朝鮮文学-紹介と研究」(1970~1974)を出版し、韓国文学を翻訳した。「朝鮮文学の会」は、日韓協定以降、玄界灘を渡ってきた金允植などの韓国の研究者と共鳴しあいながら、日本で韓国近代文学アカデミズムを形成した。1970年代中盤、大村益夫教授は林鍾國と金允植の研究書を翻訳した。彼は1960年代の早稲田大学朝鮮語講座、日本朝鮮研究所、竹内好、在日の文学者、そして1970年代の高麗書林、林鍾國と金允植等との関係の中で、韓国文学の研究と翻訳を実践した。大村益夫教授は解放の前と後、そして白頭山から玄界灘までを含める広い視野をもって 「38線のない心」というバランスの取れた視点から韓国近代文学を研究しようとした。
아시아재단의 한국에서의 문화사업-1954년~1959년 예산서류를 중심으로-
아시아재단의 “Korean Research Center(KRC)” 지원 연구-사회과학연구도서관(1956)/한국연구도서관(1958)/한국연구원(1964)으로의 전개를 중심으로-
1950년대 한국 펜클럽과 아시아재단의 문화원조-세계작가회의 참관기를 중심으로-
아시아재단 지원을 통한 김용환의 미국 기행과 기행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