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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여말선초 효행 기록의 변화 = Changes in records of filial piety in the 14th and 15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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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78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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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onsidering filial piety as important, Joseon sought to establish a society in which filial piety could be practiced in various ways from the beginning of its foundation. However, Confucian filial piety could not have been fully established overnight ...

      Considering filial piety as important, Joseon sought to establish a society in which filial piety could be practiced in various ways from the beginning of its foundation. However, Confucian filial piety could not have been fully established overnight as the nation wished. In response, Joseon attempted to spread filial piety through various policies, including publishing ethics books such as Samgang Haengshildo and awarding prizes to filial piety. However, the reformation in the pre-modern era had to take a very long time. Confucian filial piety took place slowly over a long period of time, and the records of filial piety well shows this process. Records of filial piety began to appear in earnest when books on filial piety were published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These records suggested the practice of filial piety by describing various cases of filial piety. However, even if all of them dealt with filial piety, there was a difference in the perception of filial piety and the cases of filial piety that each record focused on. To sum this up, it is as follows. The HyoHaengrok (효행록) deals only with the Chinese case, but the Samganghaengsildo (삼강행실도) mainly deals with the Chinese case, adding that it is an example of the filial behavior of the Korean treditional countries. The Goryeo History (고려사) mainly deals with records of filial piety of Goryeo. Among them, Chinese cases were the most frequent cases of good for parents in their daily lives. In contrast, the cases of Korean traditional countries accounted for the largest portion of the cases of damage one’s own body issued in unusual situations. However, gradually, the good for parents of Koreans began to appear in the records of filial piety, and the funeral and memorial for parents began to emphasize the practice of Confucianism. This feature is especially evident when the same case is published in various records, such as Chaesun(채순) and Wicho(위초). Even if the main event has not changed, new content is added. This is a good example of how actions that were not previously recognized as filial piety have been recognized as filial piety or their importance has changed. It also shows that there is a change in perception of filial piety, with the most notable feature being the diversification of the method of filial piety. It began to recognize that acts in everyday life, not those that took risks for their parents who were in danger due to hunger, infectious diseases, war, and disease, were also considered filial piety. This lowered the standard for filial piety, Second, the period of filial piety was extended. Filial filial behavior continued not only to the parents while their parents were alive, but also to the funeral and parental commemoration process after the parents died. Through this, filial piety did not end with the death of the parents, but became an act that the son and daughter should do throughout their life. In the process, the subject of filial piety expanded not only to living parents but also to dead parents. Finally, the ceremony for dead parents is changing into a Confucian-style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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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孝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효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국가의 바람대로 하루아침에 유교식 효행이 완전히 정착될 수는 없었다....

      孝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효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국가의 바람대로 하루아침에 유교식 효행이 완전히 정착될 수는 없었다. 이에 조선은 『三綱行實圖』 등의 윤리서를 발간하고, 효자에게는 포상을 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효행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전근대시대의 교화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유 교식 효행도 오랜 시간 단계를 밟아가며 천천히 이루어졌고, 이 과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효행 기록이다. 효행 기록은 고려 말 조선 초 효행 실천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효행 서적이 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기록들은 다양한 효행 사례를 서술함으로써 효행의 실천 방식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모두 효행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각 기록들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효행 사례 및 효행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효행록』은 중국 사례만을 다루고 있으나, 『삼 강행실도』는 중국의 사례를 주로 다루되 한반도 국가들의 효행 사례로 덧붙이 고 있다. 『고려사』에서는 고려의 효행 기록만을 주로 다룬다. 이러한 가운데 중 국의 사례들은 일상 생활 속 지속적이며 정성을 다하는 ‘부모 공양’ 사례가 가장 빈번하였다. 이에 비하여 한반도 국가들의 사례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발행하 는 ‘신체 훼손’의 사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렇지만 점차적으로 조선인의 ‘부모 공양’이 효행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적으로 유교식 상 장례 실천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蔡順과 尉貂처럼 동일 한 사례가 다양한 기록에 실릴 때 잘 드러난다. 주요 사건은 변하지 않았다고 하 더라도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는 효행으로 인식하지 않 던 행위들이 효행으로 인식되거나, 그 행위에 대한 중요성이 달라졌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또한 효행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김을 알 수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특 징은 효행의 방법이 다양화된다는 것이다. 굶주림이나 전염병, 전쟁, 와병 등으 로 위기에 처한 부모를 위하여 위험을 무릅쓴 행위가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의 행위도 효행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효행의 기준을 낮춤으로써 효행 이 특수한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로 는 효행의 기간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부모에게만 하는 행위가 아닌 부모가 죽은 후 장례 및 부모 기념 과정을 통해서도 효행이 이어지 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효행은 부모가 죽으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식이 평생 에 걸쳐 행해야 하는 행위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효행의 대상자가 살아있는 부 모뿐만 아니라 죽은 부모까지로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죽은 부모를 위한 추숭 행위가 유교식 행위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의 묘소를 조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점차적으로 3년상 여묘살이 등을 거행하였다는 기록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고려사』 「효우」에서는 유교식 상장례를 거행하지 않는 것 을 비판하며 『주자가례』를 준수하는 사례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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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Ⅱ. 고려의 효행 기록 Ⅲ. 조선 초기 효행 서술 Ⅳ. 맺음말
      • Ⅰ. 머리말 Ⅱ. 고려의 효행 기록 Ⅲ. 조선 초기 효행 서술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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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강성숙, "효행 설화 연구 -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효행 양상을 중심으로 -" 동양고전학회 (48) : 7-39, 2012

      2 신창문, "한국의 유교 상장례 전래와 정착에 관한 연구: 『주자가례』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16

      3 김시덕, "한국 유교식 상례의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7

      4 김시덕, "한국 유교식 상례의 문화적 전통화 과정: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장례문화학회 4 (4): 2007

      5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2003

      6 계승범, "중종의 시대" 역사비평사 2014

      7 김훈식, "조선초기 『삼강행실도』 보급의 대상" 인제대학교 12 : 1996

      8 박주, "조선시대의 정표정책" 일조각 1990

      9 박주, "조선시대 효자에 대한 정표정책" 한국사상사학회 10 : 1998

      10 박주, "조선시대 여성과 유교문화 - 조선시대의 여성과 유교문화" 국학자료원 2008

      1 강성숙, "효행 설화 연구 -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효행 양상을 중심으로 -" 동양고전학회 (48) : 7-3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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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강제훈, "조선 초기 俗祭 祭祀床의 구성과 그 특징" 고려사학회 (60) : 209-241, 2015

      12 이상민, "조선 초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의 수용과 『삼강행실도』 편찬" 한국사상사학회 (56) : 27-65, 2017

      13 김미영, "유교이념의 구현장소로서 사당祠堂" 퇴계연구소 (56) : 127-154, 2015

      14 김원룡, "삼강행실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

      15 김원룡, "삼감행실도 간행고"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4 : 1965

      16 김훈식, "고려후기 『효행록』 보급" 한국사연구회 7 : 1991

      17 문호선, "고려 『효행록』과 세종조 『삼강행실효자도』 비교 연구" 한국사상문화학회 (98) : 33-65, 2019

      18 김문경, "高麗本 『孝行錄』과 中國의 「二十四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5) : 3-14, 2009

      19 "高麗史"

      20 강문식, "權近 ??孝行錄?? 註解의 경세론적 의미" 한국사상사학회 (28) : 251-291, 2007

      21 "孝行錄"

      22 "三綱行實圖"

      23 "三國遺事"

      24 "三國史記"

      25 윤호진, "『효행록』 소재 이제현 찬 연구"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10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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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이문주, "『주자가례』의 조선 시행과정과 가례주석서에 대한 연구" 유교문화연구소 1 (1): 37-62, 2010

      28 윤미옥, "『삼강행실도』에 대한 비판적 입장 고찰" 새한철학회 82 (82): 349-373, 2015

      29 윤호진, "<孝行錄>과 孝行說話" 우리한문학회 7 (7): 37-67, 2002

      30 김훈식, "16세기 『이륜행실도』 보급의 사회사적 고찰" 역사학회 107 :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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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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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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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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