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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租界’와 ‘居留地’ 사이 = 개항장 부산의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입장 차이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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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81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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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부산의 개항과 개항장에 설치될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먼저, 조선과 일본은 개항과 더불어 개항장에 설치된 외국인 거주지를 ‘조계’와 ‘거류...

      부산의 개항과 개항장에 설치될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먼저, 조선과 일본은 개항과 더불어 개항장에 설치된 외국인 거주지를 ‘조계’와 ‘거류지’로 대별하여 사용했다. 일본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류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과 달리 조선은 공식적인 명칭으로 줄곧 ‘조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조계’를 사용하지 않고 ‘거류지’를 사용한 원산과 마산의 경우, 모두 일본 측의 조약문을 그대로 한역한 것으로 이 또한 조선 측이 사용한 용어가 아니라 일본이 사용한 용어였다.
      둘째, ‘조계’와 ‘거류지’의 용어 사용은 단순한 번역의 차이가 아니라 성격의 차이를 내포한 것이었다. 조선이 concession 방식의 ‘조계’ 설정을 주장하고 관철시킨 것은 교섭국 일본의 강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settlement 방식의 ‘거류지’가 추구한 자유로운 거주와 통상을 반대하고 이를 제한하고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었다.
      셋째, 일본은 왜관과의 연속선상에서 ‘거류지’를 설정하고 이를 근대적인 자유로운 거주통상지로 확대하고자 했다. 반면 조선은 구래의 왜관이 지닌 거주와 통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이어받아 조계를 설정하고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조치로 활용했다.
      끝으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 ‘부산구조계’의 설치는 조선 측의 ‘定界의 防限’으로써 규정되었고 이후 ‘조계’라는 명칭의 고수와 일본인 거주지의 독점 및 확장에 대응하는 경찰소와 감리서 설치, 그리고 조계의 잡거지로의 전환을 통한 각국조계화 등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조계의 정리 및 조계 밖으로의 토지침탈과 법제화(조계 밖 10리의 토지영차), 러일전쟁과 이에 따른 조선의 半식민지화, 그리고 1906년 개항장의 행정 일원화에 의한 부산이사청을 설치함에 따라 막을 내렸다. 이때부터 조계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전관거류지’가 공식화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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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Joseon and Japan showed differences in their positions around the opening of Busan and the Japanese residence to be installed at the port. First, Joseon and Japan used foreign residents to be installed at the port of opening as ‘Concession’ and ...

      Joseon and Japan showed differences in their positions around the opening of Busan and the Japanese residence to be installed at the port. First, Joseon and Japan used foreign residents to be installed at the port of opening as ‘Concession’ and ‘Settlement’. In the official Joseon treaty, the name ‘Concession’ has been used consistently. The treaty of foreign residence in Wonsan and Masan, in which the term ‘Settlement’ was used without using the term ‘Concession’, was a Japanese term, not a term used in Joseon.
      Second, the use of the terms of ‘Concession’ and ‘Settlement’ was not a difference in simple translation, but a difference in personality. It was not by the compulsion of the negotiating country Japan that Joseon insisted and carried out the ‘Concession’ setting of the Concession method. It was a measure to oppose, limit and defend free residence and trade pursued by a Japanese ‘Settlement’ of the settlement method.
      Third, Japan established a ‘Settlement’ on a continuous line with the Waegwan (倭館) and tried to expand it to a modern, free residential commercial area. On the other hand, Joseon actively succeeded the Waegwan, which could limit residence and trade freedom, and set it as a "Concession". Joseon used the Waegwan as a measure against Japanese colonialism.
      Finally, the Joseon government established ‘the Busan Port Concession’ to set up and prevent boundaries, and then worked on establishing the Police Station and the Superintendent Office in response to the monopoly and expansion of the Japanese residence, and to be a concession of the nations. Nevertheless, Japan first organized the interior of the concession, and then it invaded the land from outside the concession and legislated it. Furthermore, the concession was closed due to the Russo-Japanese War, the colonialization of Joseon,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Busan Isacheong (釜山理事廳) in 1906.From this time on, the term ‘Concession’ has disappeared and the `all-round Settlement` was formu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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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입장 차이
      • 3. ‘부산구조계’의 설정과 ‘부산일본전관거류지’로의 전환
      • 4. 맺음말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입장 차이
      • 3. ‘부산구조계’의 설정과 ‘부산일본전관거류지’로의 전환
      • 4.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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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隣交謄錄, 고종실록"

      2 이현종, "한국개항장연구" 일조각 1975

      3 손정목,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 일지사 1982

      4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의 설치와 형성" 3 : 2010

      5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 연구 : 1876~1883"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7

      6 전성현, "부산항 감리서 방판 민건호와 그의 일기 해은일록" 부산근대역사관 2014

      7 최인택, "부산의 도시 형성과 일본인들" 선인 2008

      8 김의환, "개항후 부산일본전관거류지 설정에 관한 연구" 2 : 1973

      9 外務省, "馬山日本専管居留地取極書(B13091011900)"

      10 김용욱, "韓日文化" 1960

      1 "隣交謄錄, 고종실록"

      2 이현종, "한국개항장연구" 일조각 1975

      3 손정목,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 일지사 1982

      4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의 설치와 형성" 3 : 2010

      5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 연구 : 1876~1883"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7

      6 전성현, "부산항 감리서 방판 민건호와 그의 일기 해은일록" 부산근대역사관 2014

      7 최인택, "부산의 도시 형성과 일본인들" 선인 2008

      8 김의환, "개항후 부산일본전관거류지 설정에 관한 연구" 2 : 1973

      9 外務省, "馬山日本専管居留地取極書(B13091011900)"

      10 김용욱, "韓日文化" 1960

      11 "韓國近代史料集成11권 프랑스외무부문서 1 1854~1889"

      12 統監府, "韓國條約類纂"

      13 外務省, "韓国各港居留地関係雑件 第一巻(B12082515000)"

      14 外務省, "露国政府ニ於テ韓国馬山浦土地買収並経営ニ対シ帝国専管居留地設定一件(B12082567900)"

      15 김용욱, "釜山開港의 比較史的意義-主로 日本單獨租界를 中心으로 하여-" 5 : 1966

      16 "釜山港日本租界境界圖(奎26627)"

      17 釜山府, "釜山府史原稿 第6部第12卷居留地編(領事館時代) 前期"

      18 釜山府, "釜山府史原稿 第5部第10卷開港編(後期),"

      19 高秉雲, "近代朝鮮租界史の硏究" 雄山閣出版 1987

      20 장순순, "草梁倭館의 폐쇄와 일본 租界化과정" 7 : 2004

      21 國會圖書館立法調査局, "舊韓末條約彙纂 中・下" 1964

      22 "舊韓國外交文書 제1・3・5권(日案1・3・5)" 1965

      23 "浦山港見取島"

      24 外務省, "朝鮮釜山港ニ於ケル各国居留地関係雑纂(B12082514700)"

      25 藤村道生, "朝鮮における日本特別居留地の起源" 35 : 1964

      26 在釜山日本領事館, "明治十二年朝鮮事務始末撮要1 元山開港"

      27 外務省, "日鮮修好条規関係一件 제1권(B06150027100)"

      28 "日韓外交資料集成 第1卷" 巖南堂書店 1966

      29 "日本外交文書 9"

      30 外務省, "新約後管理官與東萊府使約條草"

      31 在釜山日本領事館, "慶尙道事情 2"

      32 釜山領事館, "在朝鮮國釜山領事館制定諸規則便覽"

      33 "同文彙考"

      34 朝鮮總督府, "各國居留地關係取極書"

      35 "公文別錄"

      36 "倭使日記"

      37 "倭使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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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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