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家康 국서문제의 僞造 및 改作과 동아시아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503086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임란 후, 조 · 일 양국은 전쟁을 종결하고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강화 및 국교재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그에 따른 외교적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조선�...

      임란 후, 조 · 일 양국은 전쟁을 종결하고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강화 및 국교재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그에 따른 외교적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조선은 일본정세를 탐색하고 피폐해진 국내사정을 고려하여 경제 · 군사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정책으로 1607년 제 1차 ‘回答兼刷還使’를 일본에 보냈다. 다만 사신파견의 전제조건으로 조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먼저 국서를 보내서 강화를 요청하라는 ‘先爲致書’를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1606년 11월 이에야스는 조선에 국서를 보내왔다. 지금까지 이 국서문제와 관련해서 기존 연구에서는 이에야스의 국내 정치 상황을 경시한 채 문서자체의 형식과 대마도의 관여 여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국서의 위조설, 개작설, 眞書설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전후처리를 조속히 해서 국가의 기강과 안전을 되찾으려는 조선, 더 이상 조선과 일본의 강화교섭에 관련하고 싶지 않은 명, 막부정권의 계승과 안정을 국내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었었던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이 처한 대내외적인 환경 속에서 이 국서문제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조선은 조건이 충족되었고, 여진족의 발흥과 민심 이반, 왕권의 불신감 등으로 국가재건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상황과 손문욱 등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이에야스의 국서를 인정하고 ‘回答兼刷還使’를 파견하였다.
      한편 명은 1604년 5월 이후부터 조 · 일 교섭에 간섭하지 않고 조선이 자주적 · 능동적으로 판단해서 처리하라 방침을 세웠다. 이것은 조선이 대일 강화에 의구심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조 · 일 국교재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이에야스는 조선침략에 의해 동아시아 사회에서 고립된 국제 관계를 회복하고, 조선과 명간의 국교 정상화를 꾀함으로써 국가 주권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국내적으로 1600년대 초기만 해도 이에야스는 히데요리(秀賴)의 가신에 지나지 않았으며, 영향력 또한 전국적인 범위가 아니고기나이(畿內)와 교토(京都) 근처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막부의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조선 통신사의 來日은 절실한 과제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先爲致書’요구는 결코 이에야스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1604~1607년 사이에 적극적으로 각국에 국서를 보내고 朱印船무역을 장려했다. 조선과 처음 국교회복을 앞두고 對馬島측근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면서 국서의 위작이나 개작이 이루어지도록 이에야스가 방관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조선과의 외교를 전담하였던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의 死와 손문욱-겐소(玄蘇)와의 친분관계로 대마도는 오히려 이에야스와 그의 측근들과 협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1606년 11월에 보낸 이에야스의 국서는 그의 동의 없이 위조 또는 개작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손문욱의 역할과 이에야스의 국서문제
      • 3. 이에야스의 국내외 정치적인 입장과 국서문제
      • 4. 맺음말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손문욱의 역할과 이에야스의 국서문제
      • 3. 이에야스의 국내외 정치적인 입장과 국서문제
      • 4.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훈, "한일수교50년,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재검토" 경인문화사 2017

      2 홍성덕, "조선후기 한일외교체제와 대마도의 역할" 동북아역사재단 (41) : 137-180, 2013

      3 민덕기, "조선시대의 일본의 대외교섭" 경인문화사 2010

      4 김문자, "전쟁의 파장, 정유재란과 동아시아-에도막부의 초기 대외정책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57) : 43-82, 2017

      5 김경태, "임진왜란 후 강화교섭기 국서문제의 재검토" 고려사학회 (36) : 43-86, 2009

      6 김영작, "임진왜란 전후의 한일교섭사를 통해서 본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 21 (21): 1999

      7 김문자, "임진왜란 이후의 朝․日국교재개와 德川家康" 중앙사학연구소 (44) : 151-186, 2016

      8 이훈, "임란 이후 ‘회답겸쇄환사’로 본 대일본외교 전략 - 선조대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49) : 267-309, 2014

      9 민덕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606년 조선에 보낸 ‘국서’에 대한 위조설 검토 - 요네타니說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52) : 91-128, 2015

      10 "鹿苑日記"

      1 이훈, "한일수교50년,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재검토" 경인문화사 2017

      2 홍성덕, "조선후기 한일외교체제와 대마도의 역할" 동북아역사재단 (41) : 137-180, 2013

      3 민덕기, "조선시대의 일본의 대외교섭" 경인문화사 2010

      4 김문자, "전쟁의 파장, 정유재란과 동아시아-에도막부의 초기 대외정책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57) : 43-82, 2017

      5 김경태, "임진왜란 후 강화교섭기 국서문제의 재검토" 고려사학회 (36) : 43-86, 2009

      6 김영작, "임진왜란 전후의 한일교섭사를 통해서 본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 21 (21): 1999

      7 김문자, "임진왜란 이후의 朝․日국교재개와 德川家康" 중앙사학연구소 (44) : 151-186, 2016

      8 이훈, "임란 이후 ‘회답겸쇄환사’로 본 대일본외교 전략 - 선조대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49) : 267-309, 2014

      9 민덕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606년 조선에 보낸 ‘국서’에 대한 위조설 검토 - 요네타니說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52) : 91-128, 2015

      10 "鹿苑日記"

      11 "通航一覽"

      12 米谷均, "近世初期日朝關係における外交文書の僞造と改竄" 41 : 1996

      13 池上裕子, "織豊政權と江戶幕府-日本の歷史" 講談社 2002

      14 "相國寺藏西笑和尙文集"

      15 "海槎錄"

      16 荒野泰典, "江戶幕府と東アジア" 吉川弘文館 14 : 2003

      17 貫井正之, "朝鮮通信使地域史硏究" 創刊號 2015

      18 仲尾宏, "朝鮮通信使と德川家康" 明石書店 1997

      19 仲尾宏, "朝鮮義僧將・松雲大師と德川家康" 明石書店 2002

      20 北島万次, "朝鮮日々記・高麗日記-秀吉の朝鮮侵略と歷史的告發" そしえて 1982

      21 田代和生, "書き替えられた國書" 中央公論社 1983

      22 田中健夫, "日本對外關係史" 東京大學出版會 1975

      23 米谷均, "文書樣式から見た一六世紀の日朝往復書契" 132 : 2002

      24 "攷事撮要"

      25 高橋公明, "慶長十二年の回答兼刷還使の來日についての一考察-近藤守重の再檢討" 31 : 1985

      26 鶴田啓, "對馬からみた日朝關係" 山川出版社 2006

      27 "宣祖實錄"

      28 田代和生, "宗家舊藏「圖書」と木印" 156 : 1995

      29 池內敏, "大君外交と「武威」; 近世日本の國際秩序と朝鮮觀" 名古屋大學出版會 2006

      30 홍성덕, "壬辰倭亂직후 日本의 對朝鮮講和交涉" 3 : 1995

      31 "史籍雜覽 2"

      32 민덕기, "前近代東アジアのなかの韓日關係" 早稻田大學出版會 2007

      33 유재춘, "任亂後 韓日國交 再改와 國書改作에 關한 硏究" 강원사학회 (2) : 153-202, 1986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