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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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orean
몽골 ; 변경민 ; 북계민(北界民) ; 여몽전쟁 ; 몽골체험 ; 전쟁의 일상화 ; 이중고 ; 무책임 정치 ; 압도적 물리력 ; 포선만노(蒲鮮萬奴) ; 동진국(東眞國) ; 우가하(亐哥下) ; 강화천도 ; Mongolia ; marginalized people[marginal man] ; the first Mongol invasion ; routine outbreak of war ; double hardship ; irresponsible politics ; overwhelming physical force
KCI등재
학술저널
243-27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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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
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국가의식보다는 생존을 더욱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도록 하였다. 본래 부터 고려인이자 경계인으로서 복합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변경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자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출시켰는데, 이러한 사태를 더욱 부추긴 것이 국가의 ‘배신’이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책임을 전가하였다. 고려조정의 이와 같은 태도로 인해 변경민들은 전쟁과 희생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고, 종국에 가서 나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附蒙 행위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즉, 국가의 지시를 거부했던 西京人이나 홍복원에게 동조한 자들의 행동 이면에는 국가의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려 조정의 이러한 무책임에도 사실 원인이 있었다. 몽골의 압도적 물리력과 과도한 요구가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 대적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의 지속이 순간순간의 어려움만을 모면하려는 무책임의 정치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여하튼 고려 정부의 이와 같은 무책임의 정치는 백성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고, 그것은 변경지대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을 약화시켜 강화도 천도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Mongol invasion, local conflicts became an everyday occurrence in the border area due to coexistence and competition among various political powers in Liaodong. The routine outbreaks of war made people in the border area p...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Mongol invasion, local conflicts became an everyday occurrence in the border area due to coexistence and competition among various political powers in Liaodong. The routine outbreaks of war made people in the border area put more value on survival than on national identity as people of Goryeo dynasty. People in the border area already had complex identity as both people of Goryeo and marginalized people before, and now, faced with a threat to life, their identity as marginalized people prevailed. This was further fueled by the ‘betrayal’ of the country.
Whenever the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the royal court avoided responsibilities. Due to this attitude, people in the border area suffered from double hardship of war and sacrifice, and later came to reject the royal court’s orders, and instead sought their own means of survival or even took pro-Mongolian actions. Behind the behaviors of people in Seokyeong that refused to follow the orders from the royal court, and behaviors of people who followed Hong Bokwon, were the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royal court.
In fact, there were reasons that caused such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Goryeo royal court. It resulted from overwhelming physical force of Mongolia and its excessive demands. The continuation of situations where the royal court had to face formidable enemies led to irresponsible politics of merely avoiding momentary difficulties. Such irresponsible attitude became a catalyst that accelerated people’s breakaway, which in turn, returned as a boomerang that further weakened Goryeo’s defense, and eventually, resulted in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Ganghwado Island.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윤정, "몽골의 요동·고려 경략 재검토(1211~1259)" 역사학회 (209) : 107-15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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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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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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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정란, "13세기 몽골제국의 高麗觀" 한국중세사학회 (27) : 95-1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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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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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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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8 | 1.28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89 | 2.254 | 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