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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세기 초 몽골의 ‘位階’ 지배 시도와 麗蒙 관계의 시작 = Mongolia’s Attempt to Apply Hierarchy-based Governing Rule and the Beginning of Goryeo-Mongolia Relationship in Early 13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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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몽골의 金 정벌 이후 요동지역은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은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동지역에 자립했던 契丹遺種 · 浦鮮萬奴 · 몽골 등의 다양한 세력의 등장은 고려에 많은 혼�...

      몽골의 金 정벌 이후 요동지역은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은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동지역에 자립했던 契丹遺種 · 浦鮮萬奴 · 몽골 등의 다양한 세력의 등장은 고려에 많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나 금이 포선만노와 거란유종을 대적하기 위해 고려에 군사 연합을 제안하는 상황은 고려의 요동정세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다. 금 중심의 국제질서가 무너졌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몽골이 평정하기까지는 ‘절대 강자’가 존재하던 시기에서 서로 힘의 우열을 확인할 수 없는 비슷한 힘을 가진 세력끼리 서로 눈치를 보며 자존을 도모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1218년 강동성 전투 이후 고려와 대면한 몽골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지배질서인 ‘솔선귀부’에 의한 위차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다스리려는 위계지배질서를 고려와 동진에 적용하고자 했다. ‘몽골-동진-고려’ 순으로 위차를 정하고 고려에 복속을 강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의도는 동진이 이탈하면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몽골은 동진이 이탈한 1231년 이후에는 ‘몽골-고려-동진’ 순으로 위차를 재조정해 적용하려 하기도 했다. 1231년 이후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강동성 전투 이후의 관계와는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 동진이 몽골의 위계질서를 거부하면서 몽골이 고려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고려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했다. 표면적으로 복속국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국가의 존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몽골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고려가 몽골과의 관계의 안정을 통해서만 자존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금 또는 동진과의 연합을 통해 몽골을 견제하고자 했으며, 이들이 쇠퇴한 후에는 금의 후예인 女眞이나, 漢兒 또는 回回 등의 세력과도 연계하여 몽골을 견제할 세력을 구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몽골의 위계에 의한 지배 질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다. 고려는 합의에 의해 관계를 맺었던 거란이나 금과의 기존의 질서 체계로 몽골 관계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몽골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태도였다. 즉 초기 교섭에서 양국의 충돌은 몽골이 적용하고자 한 위계 지배질서를 고려가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형식적 복속만을 원하는 고려와의 입장 차이로 인해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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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he Mongolian expedition against Jin dynasty, a great chaos ensued in the Liaodong region. And the chaos affected Goryeo dynasty as well. The emergence of various independent forces in the Liaodong region including Khitan, Puxian Wannu, and Mong...

      After the Mongolian expedition against Jin dynasty, a great chaos ensued in the Liaodong region. And the chaos affected Goryeo dynasty as well. The emergence of various independent forces in the Liaodong region including Khitan, Puxian Wannu, and Mongolia brought much confusion to Goryeo. The situation changed from an existence of the ‘absolute strength’ to constant tension among groups with similar power, the order of which could not be confirmed, until Mongolia suppressed others in the region.
      After the Battle of Gangdongseong in 1218, Mongolia confronted Goryeo, and attempted to apply their traditional governing rule of voluntary submission (solseonguibu) to Goryeo and Dongjin(East Jurchen), to set ranks and hierarchy of the countries. Specifically, it ranked the countries in the order of ‘Mongolia-Dongjin-Goryeo’ and forced Goryeo’s submission. However, Mongolia’s attempt was short-lived as Dongjin left the order in 1231. Afterwards, Mongolia tried to change the order to ‘Mongolia-Goryeo-Dongjin’ and apply its hierarchy-based governing rule. Mongolia took a dual approach as it applied the hierarchy-based governing rule, and at the same time, directly involved in demanding tributes offering.
      After 1231,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eo and Mongolia evolved from the previous relationship that followed the Battle of Gangdongseong. As Dongjin refused to follow the hierarchical order set by Mongolia, Mongolia decided to directly control Goryeo. Accordingly, physical contact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creased, and Goryeo changed its strategy to minimize harm. On the surface, it began to emphasize that Goryeo was subordinated to Mongolia. This reflected a determination to minimize conflicts with Mongolia as the very existence of the country was uncertain.
      However, Goryeo did not seek security only through stabilizing the relationship with Mongolia. It tried to join forces with Jin dynasty or Dongjin to fend off Mongolia, and when these allies decayed, it joined forces with Jurchen-the descendent of Jin dynasty-as well as northern Chinese (hana) and Uighur in a bid to fend off Mongolia. This approach is largely due to the lack of understanding of Mongolia’s hierarchy-based governing rule. Goryeo approached a relationship with Mongolia in the old framework of agreement as it had done with Khitan or Jin dynasty, which was at odds with the intention of Mongolia. That is,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initial stage of negotiation was due to their different positions in that Mongolia attempted to apply the hierarchy-based governing rule, and Goryeo was willing to be submissive only as form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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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몽골의 興起와 金 중심 질서의 終焉
      • 3. 몽골의 위계질서 시도와 낯선 현실에 처한 고려
      • 4. 몽골의 위계 재조정과 고려의 이해 부족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몽골의 興起와 金 중심 질서의 終焉
      • 3. 몽골의 위계질서 시도와 낯선 현실에 처한 고려
      • 4. 몽골의 위계 재조정과 고려의 이해 부족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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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은숙, "麗蒙전쟁의 성격과 몽골의 태도 변화" 24 25 : 2011

      2 이개석, "麗蒙兄弟盟約과 初期麗蒙關係의 성격: 사료의 再檢討를 중심으로" 大邱史學 2010

      3 "金史"

      4 라시드 앗 딘, "칭기스칸기" 사계절 2003

      5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1998

      6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동북아역사재단 2009

      7 윤은숙, "옷치긴과 칭기스칸의 金國 정벌전" 중앙아시아학회 11 : 51-74, 2006

      8 이정란, "여・몽전쟁기 변경민의 몽골 ‘체험’과 고려 조정의 대응 - 1차 여몽전쟁을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61) : 243-272, 2015

      9 윤은숙, "여몽 관계의 성격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 중국 학계의 '책봉과 조공' 관계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35) : 119-162, 2012

      10 고명수, "몽골제국기 옷치긴 왕가의 세력기반과 그 변화" 58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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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정란, "여・몽전쟁기 변경민의 몽골 ‘체험’과 고려 조정의 대응 - 1차 여몽전쟁을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61) : 243-272, 2015

      9 윤은숙, "여몽 관계의 성격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 중국 학계의 '책봉과 조공' 관계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35) : 119-16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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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최윤정, "몽골의 요동·고려 경략 재검토(1211~1259)" 역사학회 (209) : 107-15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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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동북아역사재단 경북대 한중교류연구원, "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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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이미지, "13세기 고려 기록에 나타난 몽고와그에 투영된 고려인" 만주학회 (17) : 39-71, 2014

      46 이미지, "1231・1232년 對蒙 表文을 통해 본 고려의 몽고에 대한 외교적 대응" 고려사학회 (36) : 235-26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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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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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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