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13세기 중엽 鄭晏의 활동과 현실인식 = A Study on an Activity & Real Recognition of Jeong-An(鄭晏) who Acted about the mid-13th Century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attempt to new analyze into an activity space & activity domain & human network & personal propensity & real recognition of Jeong-An who acted a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about the mid-13th century. in the process, the e...

      This paper attempt to new analyze into an activity space & activity domain & human network & personal propensity & real recognition of Jeong-An who acted a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about the mid-13th century. in the process, the existed studies have been critically reviewed, and the original information has been newly organized.
      Except for the 10 years when he was worked in the Jinyang(晋陽) & Ganghwa-Capital(江華京) as a government official, he is a representative character who has lived in the Hadong(河東) area for 20 to 30 years. he i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that has acted in the Hadong area about the mid-13th century. he i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that has been well versed in the Confucianism & Buddhism & Ying-Yang(陰陽) & arithmetic(算術) & Korean-medicine(韓醫藥) & temperament(音律).
      He has conducted various activities. he has nurtured young literary intellectuals who had the Confucianism knowledge, and has also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medicine. he lived a Buddhist life in Hadong region, and conducted a variety of Buddhist activities. he also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the Haein-Temple(海印寺)’s Buddhism-Sutra-woodblock that was pushed as a national project about the mid-13th century.
      He has formed a human network with various individuals who has acted as a literary intellectuals &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Buddhist intellectual about the mid-13th century. his personal propensity can be defined a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his real recognition was also accorded with the prayers of those days Goryeo(高麗)-people that had wished the stability of the royal family and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에서는 13세기 중엽 융합지식인으로 활동한 鄭晏의 활동공간․영역과 인적 연계망 및 성향․현실인식을 새롭게 검토하였다. 정안은 관료로 활동하면서 晋陽․江華京에서 생활한 10년 ...

      이 글에서는 13세기 중엽 융합지식인으로 활동한 鄭晏의 활동공간․영역과 인적 연계망 및 성향․현실인식을 새롭게 검토하였다.
      정안은 관료로 활동하면서 晋陽․江華京에서 생활한 10년 정도를 제외하면, 최소 20~30년 동안 河東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하며 활동한 하동지역사회의 대표적인 융합지식인으로, 유․불교 소양과 함께 陰陽․算術․醫藥․音律까지 두루 정통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이후 國子祭酒와 동지공거를 지내면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 문인지식인들을 발굴․육성하였으며, 한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지역민 대상의 의료활동도 전개하였다. 특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불교적인 일상생활을 실천하면서 사원을 창건․운영하는 등 다양한 불교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3세기 중엽 국가사업으로 추진된 해인사대장경판의 조성 佛事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였다.
      정안은 다양한 주체들과 인적 연계망을 구축하였다. 관료로 생활하던 때에는 신진 문인지식인과 무인집권자 및 관료지식인 등과 인적 연계망을 구축하였다. 특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할 때에는 당대 불교계를 주도하던 수선사계열 및 가지산문을 비롯하여 대덕고승․승려지식인 등과 연계망을 긴밀하게 맺었다.
      정안의 성향은 다양한 학문영역의 지식소양을 두루 갖춘 은둔적 융합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정안은 20~30년 동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하여 생활하면서도 그의 재능은 국왕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는 기존의 연구처럼 최씨무인정권과 밀착된 관계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와 견제관계를 유지하였다. 그의 현실인식도 崔怡의 안녕보다 국왕․왕실 및 조정과 같은 국가의 안정, 몽고 침략군의 격퇴, 민족적 안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佛法의 보급, 가족․친족 및 중생의 극락왕생, 질병의 치료 등 당대 고려 사람들이 기원하던 염원도 반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안은 국가․왕실․조정 및 일반 백성을 포함하는 당대 고려 사람들의 염원을 기원하고 실천한 은둔적 융합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영호, "해인사에 소장된 鄭晏 조성경판의 역사․문화적 성격" 석당학술원 (65) : 69-107, 2016

      2 "태종실록"

      3 "태조실록"

      4 김용선, "이규보 연보" 일조각 2013

      5 李泰鎭,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조선 유교국가의 경제발전모델—" 태학사 2002

      6 김호, "의사학자 삼목영의 생애와 조선의학사급질병사" 대한의사학회 14 (14): 101-122, 2005

      7 "세종실록"

      8 "삼국사기"

      9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銀甁銘文瓦)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중부고고학회 13 (13): 5-33, 2014

      10 이경록, "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발전" 혜안 2010

      1 최영호, "해인사에 소장된 鄭晏 조성경판의 역사․문화적 성격" 석당학술원 (65) : 69-107, 2016

      2 "태종실록"

      3 "태조실록"

      4 김용선, "이규보 연보" 일조각 2013

      5 李泰鎭,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조선 유교국가의 경제발전모델—" 태학사 2002

      6 김호, "의사학자 삼목영의 생애와 조선의학사급질병사" 대한의사학회 14 (14): 101-122, 2005

      7 "세종실록"

      8 "삼국사기"

      9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銀甁銘文瓦)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중부고고학회 13 (13): 5-33, 2014

      10 이경록, "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발전" 혜안 2010

      11 이경록, "고려시대 의료사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9

      12 배상현, "고려시기 晉州牧 지역의 寺院과 佛典의 조성 -分司 南海大臟都람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대구사학회 72 : 1-39, 2003

      13 "고려사절요"

      14 "고려사"

      15 정병삼, "고려 후기 鄭晏의 불서 간행과 불교신앙" 불교학연구회 24 : 403-436, 2009

      16 김광철, "고려 무인집권기 鄭晏의 정치 활동과 불교" 석당학술원 (65) : 33-67, 2016

      17 金光植, "高麗武人政權과 佛敎界" 민족사 1995

      18 池內宏, "高麗朝の大藏經」に關する 一二の補正" 14 (14): 1937

      19 朴龍雲, "高麗時代 蔭敍制와 科擧制 硏究" 일지사 1990

      20 李泰鎭, "高麗後期의 인구증가 要因 生成과 鄕藥醫術 發達" 서울대 국사학과 19 : 1988

      21 蔡尙植, "高麗後期佛敎史硏究" 일조각 1991

      22 洪榮義, "高麗後期 大藏都監 刊 「鄕藥救急方」의 刊行經緯와 資料性格" 나남출판사 1997

      23 "高麗國華山曺溪宗麟角寺迦智山下普覺國尊碑銘幷序"

      24 "高麗國義興華山曹溪宗麟角寺迦智山下普覺國尊碑銘幷序"

      25 "韓國佛敎全書" 동국대 출판부 1994

      26 崔永好, "韓國中世社會의 諸問題" 金潤坤敎授停年紀念, 韓國中世史學會 2001

      27 "金剛般若波羅蜜經"

      28 "金剛三昧經論"

      29 金光植, "鄭晏의 定林社 創建과 南海分司都監" 건국대사학회 8 : 1993

      30 주영민, "鄭晏家의 남해 불사 경영" 한국대학박물관협회 (85) : 71-99, 2015

      31 "鄕藥救急方"

      32 "軍威麟角寺普覺國尊靜照塔碑"

      33 "禪門拈頌集"

      34 "無衣子詩集"

      35 藤田亮策, "海印寺雜板攷" 138 : 1991

      36 崔凡述, "海印寺寺刊鏤板目錄" 연세대 국학연구원 11 : 1970

      37 최영호, "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조성사업에 대한 근대 100년의 연구사 쟁점" 석당학술원 (44) : 135-165, 2009

      38 崔永好, "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판각사업 연구" 경인문화사 2008

      39 최영호, "江華京板 「高麗大藏經」 조성사업의 담당기구와 판각공간" 세종출판사 2009

      40 "東文選"

      41 "東國李相國集"

      42 "東國通鑑"

      43 "東史綱目"

      44 三木榮, "朝鮮醫學史及疾病史" 大阪 學術圖書刊行會 1955

      45 大屋德城, "朝鮮海印寺經板攷—特に大藏經補板並に藏外雜板の佛敎文獻學的硏究—" 15 (15): 1926

      46 閔賢九, "月南寺址 眞覺國師碑의 陰記에 대한 一考察" 진단학회 36 : 1973

      47 "曹溪眞覺國師語錄"

      48 "新增東國輿地勝覽"

      49 "慶尙道地理志"

      50 "妙法蓮華經"

      51 "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52 崔永好, "南海地域의 江華京板 「高麗大藏經」 각성사업 참여" 동아대 석당전통문화연구원(석당학술원) 25 : 1997

      53 金相永, "南海分司都監 關聯 基礎調査報告書" 1994

      54 "南明泉和尙頌證道歌事實"

      55 "佛說預修十王生七經"

      56 和山博重, "伽倻山海印寺經板について(上․下)" 朝鮮總督府圖書館 10 (10): 1944

      57 김두진, "一然의 生涯와 저술" 호남사학회 19 : 173-198, 2002

      58 김상영, "一然과 再雕大藏經 補版" 2 : 1993

      59 閔泳珪, "一然重編 曺洞五位 重印序" 연세대 사학연구회 6 : 1984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5-0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Journal of Seokdang Academy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3-25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rnal of Seokdang Academy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2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 석당학술원
      영문명 : Se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 Seokdang Academy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2 0.62 0.5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1 0.46 1.395 0.19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