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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고례古禮와 국제國制의 교차 — 국휼國恤 중 사상私喪 논의를 중심으로 = The Acrossing of Ancient Rites and National Institutions in the late Chosun Dynasty — Focused on The Discussion about Family Funeral during the National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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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family funeral during the national funeral was a complicated and difficult problem. It was discussed mainly with ancient rites and national institutions. Yeonje and sangje during the national funeral were a conflict between ancient rites and natio...

      The family funeral during the national funeral was a complicated and difficult problem. It was discussed mainly with ancient rites and national institutions. Yeonje and sangje during the national funeral were a conflict between ancient rites and national institutions. Song Si-Yeol insisted that yeonje and sangje were not allowed before jolgok of the national funeral according to national institutions. But Park Se-Chae insisted that yeonje and sangje were allowed for non official, according to ancient rites, Yoon Jeung, Park Se-Chae and Choi Seok-Jeong in Soron School discussed about ancient rites in earnest, but did not get the consensus.
      In the 18th century, Choi Seok-Jeong suggested a simple way of yeonje and sangje during the national funeral officially, but conflicted with Lee bong-jing. In the end, Song Si-Yeol’s theory was adopted to new national institutions.
      Hong Kye-hee in noron School insisted that Song Si-Yeol’s theory was based on ancient rites. Song Si-Yeol’s theory was legalized in Gukjo-Sangryebopyeon, and regarded as ancient rites and national instit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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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국휼 중 사가의 상례는 병유상竝有喪으로 인식되면서, 무거운 군상君喪과가벼운 친상親喪에 차등을 부여하여 명분에 맞는 의례를 실천하는데 주목하였다. 국휼 중 사상私喪의 연제練祭·상...

      국휼 중 사가의 상례는 병유상竝有喪으로 인식되면서, 무거운 군상君喪과가벼운 친상親喪에 차등을 부여하여 명분에 맞는 의례를 실천하는데 주목하였다. 국휼 중 사상私喪의 연제練祭·상제祥祭 시행은 국제와 고례가 충돌하는 사안이었고, 송시열과 박세채의 논쟁으로 부각되었다. 송시열은 국제를 따르는김장생의 예설을 계승하여 국휼의 졸곡 후로 연·상제를 미루어 행해야한다고주장했다. 반면 박세채는 고례인 예기 증자문 에 따라 관직의 유무를 구분하여, 유관자는 연·상제를 국휼의 졸곡 뒤로 미루어 지내지만 무관자는국휼에 상관없이 그대로 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 소론학자인 박세채·윤증·최석정을 중심으로 고례인 증자문 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고례를 근거로 했지만, 관직의 유무, 제사와 변제變除의 구분, 간략설행 여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었다.
      18세기 인현왕후 국휼을 계기로 사상의 연·상제 문제가 국가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최석정은 고례와 박세채의 예설을 근거로 국휼의 졸곡과 상관없이간략하게 연·상제를 지내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증자문 의 ‘과시부제過時不除’ 해석을 놓고 이봉징과 갈등하였다. 권상하의 주장에 따라 송시열의 ‘졸곡후 연·상제’가 채택되면서, 국제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후 영조대정성왕후의 국휼에서 영조는 ‘공제 후 연·상제’를 새로운 국제로, 홍계희는‘졸곡 후 연·상제’를 고례로 주장하면서 논쟁하였다. 홍계희의 주장이 국조상례보편에 수록되면서 ‘졸곡 후 연·상제’는 고례이자 국제로 인정되었다.
      김장생의 ‘졸곡 후 연·상제’는 국제를 중심으로 했지만, 이후 고례를 근거로하는 비판에 대응하면서 고례와의 친연성이 강조되었다. 송시열은 절충적인시각을 보였고 이후 홍계희에 이르면 ‘졸곡 후 연·상제’는 고례로 간주되었다.
      처음부터 고례를 중시했던 박세채 등의 주장 역시 하나로 귀결되지 못했다.
      특히 최석정은 증자문 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박세채의 예설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례’나 ‘국제’라는 개념은 매우다의적·중층적으로 사용되면서, 정당성과 상징성을 위해 소비되는 경향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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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禮記集說"

      2 "練藜室記述"

      3 김윤정, "조선후기 王朝禮와 私家禮의 변주 ―國恤 중 사가례 논의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원 (79) : 165-194, 2018

      4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5 고영진, "윤증과 박세채의 학문적 교유" 호남사학회 (31) : 1-30, 2007

      6 이남옥, "남계 박세채의 예론과 고금절충론적 특징" 동양고전학회 (68) : 209-235, 2017

      7 김문준, "기호예학의 특성과 방향" 동양철학연구회 39 : 55-76, 2004

      8 남재주, "退溪의 절충적 論禮 관점" 동양한문학회 33 (33): 5-30, 2011

      9 "記言"

      10 "芝村集"

      1 "禮記集說"

      2 "練藜室記述"

      3 김윤정, "조선후기 王朝禮와 私家禮의 변주 ―國恤 중 사가례 논의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원 (79) : 165-194, 2018

      4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5 고영진, "윤증과 박세채의 학문적 교유" 호남사학회 (31) : 1-30, 2007

      6 이남옥, "남계 박세채의 예론과 고금절충론적 특징" 동양고전학회 (68) : 209-235, 2017

      7 김문준, "기호예학의 특성과 방향" 동양철학연구회 39 : 55-76, 2004

      8 남재주, "退溪의 절충적 論禮 관점" 동양한문학회 33 (33): 5-30, 2011

      9 "記言"

      10 "芝村集"

      11 "肅宗實錄"

      12 "沙溪全書"

      13 장동우, "朝鮮時代 『家禮』 硏究의 進展" 태동고전연구소 31 : 209-225, 2013

      14 池斗煥, "朝鮮後期 禮訟 硏究" 효원사학회 11 : 1989

      15 "星湖全集"

      16 "明齋遺稿"

      17 "明谷集"

      18 "承政院日記"

      19 "愼獨齋全書"

      20 "宋子大全"

      21 "國朝五禮儀"

      22 "厚齋集"

      23 "南溪集"

      24 鄭玉子, "17세기 思想界의 再編과 禮論"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0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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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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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65 0.65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62 1.324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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