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신도비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김제 방면으로 900m지점 우측 야산에 있다. 방형대석(方形臺石)에 비신은 백대리석이고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후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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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orean
911
학술저널
1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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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신도비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김제 방면으로 900m지점 우측 야산에 있다. 방형대석(方形臺石)에 비신은 백대리석이고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후손 ...
한산이씨 신도비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김제 방면으로 900m지점 우측 야산에 있다. 방형대석(方形臺石)에 비신은 백대리석이고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후손 이흥발이 짓고 송일중이 썼으며 1667년 4월에 건립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전면에 한산이씨 흥발이 자기 가문의 시조 찬성사 곡으로부터 목은 이색으로 이어지는 가승을 기록하였고, 본인과 동생 기발, 생발, 형제에 이르는 행적을 기록하였다. 특히 이들 3형제는 모두 대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 때에 활동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후면은 선산수묘비(先山守墓碑)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산이씨 묘정관리와 노비속량에 관한 내용을 문서형식을 취하여 비석에 새겨놓았다.
비문을 쓴 송재 송일중은 김제 백산에서 태어났다. 현종10년(1669)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동춘당 송준길의 천거로 선원능참봉을 거쳐 사옹원 봉사직을 끝으로 관직을 버리고 고항에 돌아와 학문과 글씨에 전념하였다. 마지막 관직인 봉사직을 칭하여 오늘까지 흔히 송봉사로 불려지고 있다 창강 조속의 문인으로 매천 황현의 기록에 호남서예3정(송일중, 이삼만, 조주승)이라 한 인물이다.
이 비는 전북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의 비다. 선산관리와 노비의 면천문제 등을 비에 기록했다는 점에서 다른 비와 구분되며, 이수의 조각기법과 호남 서예의 맥이 형성되기 시작한 서예사적 의의 등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