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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천민의 수학 사례 연구 = 朝鮮時代 賤民의 修學 事例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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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3414717

      • 저자
      • 발행사항

        청원군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4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교육학과교육철학및교육사전공 2014. 2

      • 발행연도

        2014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DDC

        370.9515 판사항(22)

      • 발행국(도시)

        충청북도

      • 형태사항

        ⅴ, 103 p. ; 26 cm

      • 일반주기명

        한국교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 김경용
        참고문헌 : pp.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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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시대 천민의 수학 사례를 검토하여 조선시대 노비들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해 주었던 당시의 풍토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 천민의 수학 사례를 등과한 흔구...

      본 연구는 조선시대 천민의 수학 사례를 검토하여 조선시대 노비들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해 주었던 당시의 풍토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 천민의 수학 사례를 등과한 흔구해제(면천종량)자, 노비 학자, 노비 시인으로 구분한 후, 수학 가능 계층, 과거 응시자 및 합격자의 범위, 노비들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양반들의 태도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는 노비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과거에 급제하거나 학자 및 시인으로 명성을 떨칠 정도의 학문적 성취를 도모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였다.
      반석평, 양극선, 정번, 유극량은 노비였을 때부터 이미 과거에 합격할 정도의 높은 학문적 능력을 갖추었고 흔구가 해제된 후 과거에 급제한 것으로 판단된다. 서기는 후학의 양성에 힘써 湖中지역의 학문을 성대히 하는 데 일조하였고, 송익필은 이이·성혼과 같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성리학적 문제에 대하여 논쟁을 벌일 정도로 뛰어난 학식을 갖추었다. 또한 유희경은 사대부의 상례나 국상에까지 불려 갈 만큼 예학으로 이름을 떨쳤고 唐詩에도 능통하였으며, 홍세태는 양반뿐만 아니라 영조조차도 그의 시를 구해서 볼 정도로 시문으로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조선조 사회에서 학문의 연마는 양반층에 국한되지 않았고, 처지와 상관없이 학문을 연마하고자 하면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조선조 사회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던 계층이 넓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조선조 사회에서 과거 응시와 합격의 부류는 양반층에 의해 독점되었다는 종래의 통설보다 넓었다.
      조선조 사회에서 노비는 높은 학문적 능력을 갖추기도 하였고 흔구를 해제한 후 과거에 급제하여 사회적 본이 되기도 하였다. 반석평, 양극선, 정번, 유극량은 노비였지만 이를 벗고 과거에 급제하여 현달한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응시·급제자의 부류가 양반과 같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조선조 사회에서 과거 응시에 제한을 받지 않는 계층은 과거를 통해 학문적 능력을 검증받으면 누구라도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셋째, 조선조 사회에서 학문적 능력은 처우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시대는 노비라 할지라도 흔구를 해제한 후 과거에 합격하면 양반이 될 수 있었던 사회였다. 반석평, 양극선, 정번, 유극량은 노비였으나 이를 벗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서 책무를 수행하였고 그에 따른 관직을 제수 받았다. 특히 반석평과 유극량은 현달한 관리로 여러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과거의 처지와 상관없이 관리로 현달하여 사회적 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학문적 능력이 처우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조선조 사회에서 양반들은 노비라 할지라도 학문적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를 인정해 주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처지와 상관없이 뛰어난 학식을 갖춘 인물을 스승으로 섬기기도 하였고, 작품성이 뛰어난 시문을 선별하여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였다. 당대 많은 사람들이 서기와 송익필의 뛰어난 학식을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수학하여 학문적 발전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어무적의 시는 『東文選』에 실렸고, 정초부의 시는 여러 양반들의 문집에 필사되어 전해졌다. 이는 양반들이 어무적과 정초부의 처지와 상관없이 이들이 지은 시문의 작품성을 인정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양반들이 노비들의 학문적 능력을 인정하였던 내용은 노비학자 및 노비시인의 수학 사례와 관련하여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비평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다섯째, 조선조 사회에서 양반들은 높은 학문적 능력을 갖춘 노비와 교류하기도 하였다.
      노비학자 및 노비시인의 수학 사례에서는 대부분 양천 간 학문적 교류를 하였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이이·성혼과 송익필의 교류와 여춘영과 정초부의 교류는 주목할 만하다. 이이는 과장에서 천도책을 묻는 많은 사람들에게 송익필을 추천할 정도로 그의 학문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송익필이 중년에 환천되었지만 송익필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하였던 이이와 성혼은 죽을 때까지 그와 학문적 교류를 유지하였다. 또한 여춘영은 정초부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는 스승으로, 성장해서는 친구로 대우해 주었다.
      여섯째, 조선조 사회에서 양반들은 노비들이 학업을 연마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였다.
      조선조 사회에서 양반들은 노비들이 학문을 연마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거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정초부의 주인은 정초부가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수학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이단전의 주인은 이단전이 학문 연마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에게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았다. 이와 같은 양반들의 배려를 통해 정초부와 이단전은 학업에 전념하여 시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는 처지와 상관없이 학업에 대한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학문을 연마할 수 있는 분위기의 사회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시대 노비들은 학문을 연마하여 면천 후 과거에 급제하기도 하였고, 학자나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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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1
      • 2. 연구 문제 5
      • 3. 선행연구 검토 6
      • Ⅰ. 서론 1
      •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1
      • 2. 연구 문제 5
      • 3. 선행연구 검토 6
      • 4. 연구 방법 8
      • Ⅱ. 朝鮮時代 賤民의 修學 事例 9
      • 1. 登科한 痕咎解除(免賤從良)者 9
      • 1) 潘碩枰 11
      • 2) 梁克選 17
      • 3) 鄭蕃 20
      • 4) 劉克良 23
      • 2. 奴婢 學者 26
      • 1) 徐起 26
      • 2) 宋翼弼 32
      • 3. 奴婢 詩人 48
      • 1) 魚無跡 48
      • 2) 白大鵬 56
      • 3) 劉希慶 59
      • 4) 洪世泰 67
      • 5) 鄭樵夫 75
      • 6) 李亶佃 80
      • Ⅲ. 朝鮮時代 賤民의 修學 事例가 주는 시사점 86
      • 1. 登科한 痕咎解除(免賤從良)者의 修學 事例가 주는 시사점 86
      • 2. 奴婢 學者 및 奴婢 詩人의 修學 事例가 주는 시사점 87
      • Ⅳ. 요약 및 결론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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