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감리교의 초기 선교 당시 선교기지로서의 역할이 기대된 지역이었으며 감리교 수용 이후 지속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감리교의 전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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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7
학위논문 (석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 지리교육전공 2007. 2
2007
한국어
충청북도
viii, 114 p. : 삽도 ; 26 cm
지도교수 : 류제헌
참고문헌 : p.1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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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감리교의 초기 선교 당시 선교기지로서의 역할이 기대된 지역이었으며 감리교 수용 이후 지속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감리교의 전통과 ...
강화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감리교의 초기 선교 당시 선교기지로서의 역할이 기대된 지역이었으며 감리교 수용 이후 지속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감리교의 전통과 영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강화군 감리교의 공간적 확산과정과 확산에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연구는 강화군의 다양한 종교요소 가운데 지역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감리교를 대상으로 하여 공간적 확산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확산과정상에 있어 확산의 유무와 속도를 결정했던 강화군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강화군의 감리교는 1893년 미감리회 존스 선교사가 지역주민 이승환의 세례 요청에 의해 인천으로부터 들어오면서 시작되었으며 강화군 지역주민의 주체적인 수용과 적극적인 전도에 의하여 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강화군의 감리교 확산 과정을 1893년부터 2004년까지 3단계로 구분하여 시기별로 공간적 확산과정과 확산에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선교사가 강화군 양사면에 도착하여 최초로 교회가 설립된 1893년부터 강화군의 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강화읍에 선교기지를 구축하게 되는 1900년까지를 착근기(着根期)로, 지역별 거점교회가 계층적으로 완전하게 확보되고 거점교회에서 주변지역으로 교회의 전염확산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1950년까지의 시기를 확산기(擴散期)로,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이후 강화군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교회 개척이 활발히 진행되어 교회의 밀도가 높아진 2004년까지의 시기를 충전기(充塡期)로 구분하였다.
1893년 강화군 최초의 감리교회인 강화교산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00년까지 간척촌을 중심으로 1차 확산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1차 확산 중심지의 형성은 초기 교인들의 이주확산(移住擴散)으로 진행되었으며 계층적으로 주변 지역을 포섭하기에 유리한 지역에서 교회의 설립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지식인은 확산의 통로 역할을 하였는데, 타 지역에 비해 진취적이고 자주성을 지닌 강화군의 여성은 새로운 문화 요소의 유입에 적극적이었으며 세력 있는 양반층이 아니었던 강화군의 개방적인 지식인들은 감리교 확산의 기폭제(起爆劑) 역할을 하였다.
확산기에는 새로운 2차 확산 중심지가 형성됨과 동시에 1․2차 확산 중심지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지역으로의 전염확산(傳染擴散)이 이루어졌으며 이전 시기에 비해 근거리 확산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학자와 지식인, 학교는 확산의 사회․문화적 통로 역할을 하였는데 중앙정부의 권력투쟁에서 소외되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유학자와 지식인들, 또한 이들에 의해 설립된 감리교계 사립학교는 감리교가 빠르게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던 강화군의 감리교는 일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확산이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이는 강화군에서의 독립운동이 감리교인이 주축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일제의 감리교회 탄압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교회의 확산이 진행되기 보다는 기존 교회의 증축 및 개축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에 많은 헌금을 했던 강화군 주민의 주체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강화군의 감리교는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교회의 밀도가 급속도로 높아졌는데 주로 인구감소율이 낮은 지역으로의 확산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2004년 현재 강화군 법정리의 88%에 감리교회가 분포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총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리교회의 수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친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 구조는 감리교인 수의 지속적인 증가를 가져왔으며 강화군의 감리교 전통 신앙은 목회자들의 교회 개척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소규모의 마을로 교회가 확산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강화군 감리교의 확산과정은 1893년부터 현재까지 시기별로 강화군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확산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였으며 따라서 감리교라는 문화요소의 확산과정상에 나타나는 특징은 지역 사회의 배경과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본 연구는 강화군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특정 종교의 확산과정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있기에 연구에서 논의된 내용을 타 지역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며 따라서 특정 지역의 배경이 문화요소의 확산과정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사례연구로서 그 가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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