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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조선·대만의 고등교육기관 문예활동 비교연구 : 학내 잡지 및 일본어 문예물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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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本論文は、植民地期における朝鮮と台湾において、帝国日本により設立された官立高等教育機関出身の植民者や被植民者が展開した日本語文芸活動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特に帝...

      本論文は、植民地期における朝鮮と台湾において、帝国日本により設立された官立高等教育機関出身の植民者や被植民者が展開した日本語文芸活動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特に帝国の<内地>の周辺部である植民地もしくは<外地>という特殊な場所に存在した帝国大学及び予科、高等学校において、植民者である在朝日本人や在台日本人、被植民者である朝鮮人や台湾人が、文芸活動の中でそれぞれどのように植民地を認識していたのかに注目して議論を展開した。
      帝国日本は植民地に対する支配を正当化する為、近代的な概念である文明と野蛮の言説を用いて朝鮮と台湾の前近代的表象を強化し、1920年前後には、より円滑な統治を行う為に共通法を制定し、これら植民地を<内地>の延長線上に位置する<外地>として扱い、同化政策を断行した。これは朝鮮と台湾を植民地としてではなく、帝国の一地方として編入し、最終的には被植民者の抵抗の種を消えそうとしたわけで、その政策の一つがまさに帝国が主導する植民地の高等教育政策であった。帝国日本は新しく制定された第二次朝鮮・台湾教育令や帝国大学令に基づき、朝鮮には京城帝国大学とその予科、台湾には台北帝国大学と台北高等学校をそれぞれ設立するに至った。このような文化統治政策の根底には、日本が朝鮮や台湾を単なる植民地としてではなく、帝国の一部分である<外地>として見なし、体制協力的な植民地知識人を養成したうえで、彼らに被植民者の同化を牽引させたいという思惑が作用していた。西洋帝国主義の帝国―植民地の間における宗主―従属構造から進んで、<内地>-<外地>の間における中心―周辺、及び中央―地方という構造を造り上げ、植民地の文化や思想まで同化させようとした帝国日本の統治方式は、西洋列強と植民地の関係とは違い、地政学的にとても近く、人種的にも似ており、さらに漢字文化圏という共通の文化的背景を持っている東アジアにのみ見いだされる<植民地的特殊性>が存在していたからこそできることであった。
      こうした中で植民地に設立された高等教育機関は一見、朝鮮人と在朝日本人、台湾人と在台日本人が同等な立場で学問ができる共通の空間として見えるが、その実体はそうではなかった。一先ず生徒の構成率をみても被植民者のほうより植民者のほうが絶対的多数を占めており、 教員は二十年の間、朝鮮人と台湾人合わせて十人を超えなかった。それのみならず、これらの校内文芸雑誌である京城帝大予科の『清涼』と台北高校の『翔風』をみても、雑誌構成の主導権は何時も植民者側が握っていた。このような傾向は一時的ではなく、1940年代に至るまで、これら雑誌の流れを貫通している。
      当初、1920年代初期の『清涼』や『翔風』においては、 植民者と被植民者の間の植民地認識が大きく異なっていた。『清涼』では俞鎭午が、『翔風』では黃得時がそれぞれ朝鮮の古典文学を和訳して紹介したり、植民地下に置かれた台湾に対する哀傷を中文詩で表現したりするという形で朝鮮や台湾を文学的素材としていたが、日本人学生が書いた文章においては、植民地に関する文脈に関しては、文化的に豊かではない前近代的朝鮮像や台湾像が読み取れる。
      これが1930年代に入ると、経済の沈滞と共に、社会主義言説が植民地内で受容されるようになり、こういった思想から影響を受けた日本人学生は、抽象的でなく直接見て感じた朝鮮と台湾のものをできるだけ事実に即して描く小説などを書くことが出来た。朝鮮人や台湾人もまた、この時期には積極的に植民地の現実を反映した散文を掲載し続け、両者の間では活発でより豊かな文芸活動が行われていたのだった。
      しかし1937年、日中戦争が勃発し、思想統制が厳重になると、朝鮮人は<朝鮮>を素材とした創作活動を諦め、台湾人は大陸との文化的緊密性を拒むことにより、台湾独自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創る一方法として自ら<皇民化>する道を選ぶ。1935年以降に発刊された京城帝大の雑誌『城大文學』、『城大文化』や、台北帝大の『臺大文學』の中でも同じく、極一部を除いて、すべて日本人の主導の下で植民地の<外地>化を進展するような言説が提示され、時局的に帝国が与えた<外地>の使命感が満ちた文で溢れている。
      このように少数の朝鮮人や台湾人は、文芸活動の中で、自ら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探り、固有の<朝鮮的なもの>や<台湾的なもの>を発見することもあったが、多数の被植民者側の生徒は、植民者の言説に振り回されたり、もしくは日本語雑誌の文芸活動に加担しなくなったりしてきた。またこれらの文芸活動は、<内地>の文芸思潮の流れに一歩遅く反応しており、在朝日本人や在台日本人の立場から彼らの生活的基盤である<朝鮮>と<台湾>を文化的素材として活用していたが、その<外地>に住んでいる大多数の朝鮮人や台湾人には目を向けようとはしなかった。
      こういった中で太平洋戦争に至るのであり、この時期に<外地>高等教育機関の出身でありながら、積極的に日本語文芸活動を行っていた植民地知識人として俞鎭午と黃得時が挙げられる。彼らは、植民地期の末期に帝国の全体主義理論が溢れる中、独自の傾向を持つ文学領域を構築し、自らの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守ろうとした。俞鎭午はたとえ<国民文学>の枠の中で日本語文学を創作していたとしても、単純に大東亜共栄圏の論理の側に身を投じたのではなく、<朝鮮的なもの>を精神的な領域にまで引き上げ、過去と現在を貫通する朝鮮人像を作品の中で創り上げた。黃得時もまた、島田謹二のような著名な知識人と交流しつつも、<内地>中心の<外地>文学観を批判し、解放以降に台湾人中心の<台湾>文学観を形成することに関して、早くも重要な理論的手がかりを提示した。
      以上のように、本論文の研究対象である校内雑誌や日本語文芸作品のテキスト分析を通して、植民地期朝鮮及び台湾の高等教育機関出身者達の文芸活動を比較、考察してみた結果、帝国日本の植民地もしくは<外地>に対する三つの民族のそれぞれ異なる認識を確認することが出来た。日本人学生は共通して<朝鮮>や<台湾>に関して、初期には文化を盛り立てるべき新天地と捉えていたが、中期には植民地人と共存すべき<外地>として、そして最後には植民地人から目をそらし、朝鮮・台湾を日本人二世のための物理的基盤として見なしてきた。しかし朝鮮人学生は、<外地>としての<朝鮮>は、あくまでも啓発また継承すべき独自の民族文化を持つ、帝国の特別な一地方として把握していた。その反面、台湾人学生にとって<外地>としての<台湾>とは、中国大陸の文化的影響から離脱し、重層的な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発見できる固有の空間でありながら、帝国の一地方に止まらず、皇国の一部にならざるを得ない宿命の前で苦悩する彼らの拠り所な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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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식민지기에 조선과 대만에서 제국 일본에 의해 세워진 관립(官立) 고등교육기관 출신의 식민자(植民者)와 피식민자(被植民者)가 전개한 일본어 문예활동에 대하여 고찰한 글이다....

      본 논문은 식민지기에 조선과 대만에서 제국 일본에 의해 세워진 관립(官立) 고등교육기관 출신의 식민자(植民者)와 피식민자(被植民者)가 전개한 일본어 문예활동에 대하여 고찰한 글이다. 특히 제국의 ‘내지’ 바깥에 존재한 식민지 혹은 ‘외지’ 고등교육기관이라는 특수한 학문의 장(場)에서, 식민자인 재조일본인과 재대일본인, 피식민자인 조선인과 대만인이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식민지를 표상하였는지를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제국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근대적 개념인 문명과 야만의 담론을 통해 조선과 대만의 전근대적 표상을 강화하였고, 1920년대에 들어서는 보다 원활한 통치를 위해 공통법을 제정하여, 이들 식민지를 내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외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동화정책을 단행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가 아닌 제국의 지방으로 편입하여 저항의 불씨를 없애려고 했던 것이며, 그 중심에 놓인 것 중 하나가 제국이 주도하는 식민지의 고등교육정책이었다. 제국 일본은 새로 제정된 제2차 조선․대만교육령과 제국대학령을 토대로 조선에는 경성제국대학과 그 예과, 대만에는 대북제국대학과 대북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하였다. 이러한 문화통치정책의 기저에는, 일본이 조선과 대만을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닌 제국의 일부분인 ‘외지’로 간주하고, 체제 협력적인 식민지 지식인을 양성하여 식민지인의 동화를 추동하려는 사고가 깔려 있었다. 서양 제국주의의 제국-식민지 간 종주-종속 구조에서 나아가, ‘내지’-‘외지’ 간 중심-주변 내지는 중앙-지방의 구조를 통해 식민지의 문화와 사상까지 동화시키려 했던 제국 일본의 식민지 통치 방식은, 서구 열강과 식민지와의 관계와 달리, 지정학적으로 매우 가깝고 인종적으로 매우 비슷하며, 더불어 한자문화권이라는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동아시아만의 ‘식민지적 특수성’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설립된 ‘외지’ 고등교육기관은, 얼핏 보면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대만인과 재대일본인이 같은 공간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학문을 하는 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학생의 민족 구성비에서 피식민자가 식민자에 비해 매우 열세였고, 교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십여 년 간 조선인과 대만인 교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동으로 펴낸 학우회 문예잡지 󰡔청량(淸凉)󰡕과 󰡔상풍(翔風)󰡕을 살펴보면, 잡지 구성의 주도권은 항상 식민자 측에 있었다. 이러한 기류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전기 고등교육기관 잡지 󰡔청량󰡕과 󰡔상풍󰡕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다.
      먼저 1920년대의 초기 󰡔청량󰡕과 󰡔상풍󰡕에서는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에 통일된 식민지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청량󰡕에서는 유진오(俞鎭午)가, 󰡔상풍󰡕에서는 황더시(黃得時)가 각각 조선의 고전문학을 소개하거나 식민지하에 놓인 대만에 대한 애상을 피로하는 방식으로 ‘조선’이나 ‘대만’을 그렸다면, 일본인 학생이 쓴 글에서 식민지에 관한 문맥은 전근대적 조선상이나 대만상이 묻어나는 글이 중심이 되었다.
      이것이 1930년대에 들어와 경기의 침체와 더불어 사회주의 담론이 식민지에 파고들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일본인 학생들은 추상적이 아닌 직접 보고 느낀 당대와 조선과 대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인과 대만인 또한 이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식민지의 현실을 반영한 산문을 게재하면서, 양자 간 활발하고 풍부한 문예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사상의 통제가 심해지면서, 조선인은 ‘조선’을 소재로 한 창작 활동을 포기한 듯 보였고, 대만인은 대륙과의 문화적 연결을 부정하고 독자적 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스스로 ‘황민화’하는 길을 택한다. 1935년 이후 발간된 제국대학 잡지인 경성제대의 󰡔성대문학(城大文學)󰡕·󰡔성대문학(城大文化)󰡕이나 대북제대의 󰡔대대문학(臺大文學)󰡕 역시, 한두 명을 빼고는 모두 일본인의 주도하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식민지 문화의 ‘외지’화를 추동하며, 시국에 따라 제국이 부여한 ‘외지’의 사명에 충실한 글로 가득 차게 된다.
      이와 같이 소수의 조선인과 대만인은 문예활동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고유한 ‘조선적인 것’이나 ‘대만적인 것’을 발견해내기도 하지만, 다수의 피식민자 학생은 식민자의 담론에 휘둘리거나, 혹은 잡지에 참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이들 ‘외지’ 고등교육기관의 문예활동은 ‘내지’ 문예사조의 흐름에 조금 늦게 반응하면서 재조일본인 혹은 재대일본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터전인 ‘조선’과 ‘대만’을 문학적으로 활용하기만 할 뿐, 그 ‘외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조선인과 대만인에게는 시선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940년대의 전쟁 시국 하에서 ‘외지’ 고등교육기관 출신으로 적극적으로 일본어 문예활동을 했던 식민지 지식인으로 유진오와 황더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식민지 말기의 제국의 폭압적 전체주의 이론 속에서, 독자적인 경향을 띤 문학 영역을 구축하여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내려 했다. 유진오는 비록 ‘국민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일본어문학을 창작하였지만, 단순히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영합하여 그들의 주장을 대변하기보다 ‘조선적인 것’을 담보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조선인상을 작품 안에서 관철시켰다. 또한 황더시는 시마다 긴지와 같은 제대일본인 지식인과 교류하면서도 ‘내지’ 중심의 ‘외지’문학관을 비판하며, 해방 이후 대만인 중심의 ‘대만’문학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다.
      종합하자면 본 논문에서 다룬 학내 잡지와 일본어 문예물의 텍스트 분석을 통하여 식민지기 조선․대만의 고등교육기관 출신자들의 문예활동을 비교, 고찰해본 결과, 제국 일본의 식민지 혹은 ‘외지’에 대한 세 민족의 서로 다른 인식을 확인하였다. 일본인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조선’과 ‘대만’을 두고 초기에는 문화를 부흥시켜야 할 신천지로 인식하다가, 중기에는 식민지인과 공존하는 ‘외지’로, 그리고 말기에는 식민지인이 부재한 일본인 2세의 터전으로 상상하였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은 ‘외지’로서의 조선을 어디까지나 계발, 계승되어야 할 독자의 민족 문화를 가진, 제국의 특별한 지방으로서 파악하였다. 반면 대만인 학생에게 ‘외지’로서의 대만이란, 중국 대륙의 문화적 영향에서 벗어나 중층적인 정체성을 발견하는 고유의 공간이면서도, 제국 일본의 지방에 그치지 않고 황국(皇國)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숙명 앞에서 고민해야 하는 그들의 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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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I. 서론 1
      •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1
      • 2. 선행연구 검토와 문제설정 9
      • 3. 연구방법 및 논문의 구성 15
      • Ⅱ. 본론 20
      • I. 서론 1
      •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1
      • 2. 선행연구 검토와 문제설정 9
      • 3. 연구방법 및 논문의 구성 15
      • Ⅱ. 본론 20
      • 제1장 식민지 인식의 전환과 고등교육기관의 문예지 20
      • 제1절 ‘외지(外地)’ 개념과 내선(內鮮)·일대(日臺)공학의 태동 20
      • 1. 식민지에서 ‘외지’로 : 식민지 인식에 대한 저항과 전환점 20
      • 2. 내・외지의 병존하는 고등교육기관 설립의 움직임 31
      • 3. 조선과 대만의 고등교육기관 설립 노정과 ‘내지’와의 차이성 37
      • 제2절 ‘외지’ 고등교육기관의 일본어문학과 문예지 구성 방식 44
      • 1. ‘내선·일대공학’의 일본어 잡지 구성과 문예물의 성격 44
      • 2. 『청량(淸凉)』의 발간과 ‘내선(內鮮)’ 편집자의 서로 다른 사명 54
      • 3. 미사와 다다스(三沢糾)의 『상풍(翔風)』 구상과 ‘자유’ 정신 64
      • 제2장 식민지 표상을 둘러싼 전유의 전쟁 75
      • 제1절 『청량』의 초기 작품 연구 75
      • 1. 재조일본인의 ‘조선’상과 그 문학적 투영 방식 75
      • 2. 조선인의 ‘조선’상과 ‘조선적인 것’의 표출 방식 82
      • 제2절 『상풍』의 초기 작품 연구 86
      • 1. 재대일본인 전유물로서의 <상풍>과 대만 원주민 표상 86
      • 2. 대만인 학생의 ‘대만’ 표상 자리매김하기 90
      • 제3장 식민지 담론의 변모와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 97
      • 제1절 『청량』의 중기 작품 연구 97
      • 1. ‘내지’로부터의 탈피 : 재조일본인 학생의 시선 97
      • 2. ‘조선’ 표상과 조선인 학생의 자각 108
      • 3.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호응 112
      • 제2절 『상풍』의 중기 작품 연구 118
      • 1. 대만의 정주자들 : 재대일본인들의 군상 118
      • 2. ‘내지’화와 언어적 단절 : 대만인들의 이중언어 양태 125
      • 3. 불경기와 정체성의 자각 130
      • 제4장 전시(戰時)하 ‘외지’ 학생들의 정서적 간극 137
      • 제1절 『청량』의 후기 작품 연구 137
      • 1. 2세대 재조일본인상의 발견 137
      • 2. 『청량』의 이른 종간(終刊)과 예과 학생의 시국적 운명 146
      • 제2절 『상풍』의 후기 작품 연구 151
      • 1. ‘황민화’라는 이름의 계몽과 ‘지나(支那)’로부터의 탈피 151
      • 2. 종전까지 이어진 『상풍』과 ‘일본국민’ 속에 감춰진 정체성 157
      • 제3절 1930년대 후반의 본과 문예지 발간과 그 성격 164
      • 1. 『성대문학(城大文學)』·『성대문화(城大文化)』와 ‘조선’의 부재 164
      • 2. 『대대문학(臺大文學)』에 나타난 문학에의 갈증과 괴리 170
      • 제5장 ‘외지’ 고등교육기관 출신자들의 문예활동 181
      • 제1절 유진오의 일본어 문헌과 조선 표상 181
      • 1. 유진오의 개작 번역 소설에 나타난 ‘조선’ 옹호 181
      • 2. 지방문학으로서 시정(市井)편력하는 일본어 소설 194
      • 3. 표면적인 ‘조선’에서 심층적인 ‘조선’의 가치 모색 215
      • 제2절 황더시의 일본어 문헌과 대만 인식의 재구성 229
      • 1. 대만문학의 주도권 다툼과 ‘내지’인의 ‘외지’ 인식 229
      • 2. 황더시에 의해 재구축된 혼종의 대만 인식 237
      • Ⅲ. 결론 252
      • <참고문헌(參考文獻)> 263
      • <부록(附錄)> 269
      • 1. 경성제국대학 예과 일본어잡지 『청량』 현존본 목차 269
      • 2. 대북고등학교 일본어 잡지 『상풍』 현존본 목차 285
      • <초출일람(抄出一覽)> 303
      • <국문초록(國文抄錄)> 304
      • <일문초록(日文抄錄)>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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