弼雲稿 List
弼雲稿
필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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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令行
김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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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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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ographical notes and introductory
조선 시대 필운옹(弼雲翁) 김영행(金令行, 1673~1745)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이건(履健)이 1747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정사본(淨寫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정행(正行)의 《송창유고(松牕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시고(詩稿) 4책, 문고(詩稿) 5책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책1~4는 시고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달려 있다. 수록된 시를 보면 실제로 1691년부터 1729년 지평 현감(砥平縣監)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유람시, 계부 시보(時保)의 시에 차운한 것들이 매우 많다. 만년에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들이 많다. 책5~9는 문고이다. 책8~9는 잡저로 정장(呈狀), 서(書)가 포함되어 있다. 〈서도봉원벽(書道峯院壁)〉은 1697년에 지은 것으로 조광조(趙光祖)와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한 도봉서원의 폐단과 그 개혁 방안을 논한 글이고, 〈정병조장(呈兵曹狀)〉은 1717년 서연에서 익위사의 폐단에 대해 진달하였다가 익위사가 대간의 탄핵을 받게 되자 처결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말에 장남 이건이 1747년에 지은 발이 있다.
View Biblographical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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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弼雲 金令行(1673:顯宗14 ~ 1745:英祖21)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長男 履健이 1747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한 淨寫本으로서 著者의 弟 正行의 松牕遺稿가 附集되어 있다.
○ 分量은 詩稿 4册, 文稿 5册 合 9册으로 總 412板이다.
○ 이 중 附集인 松牕遺稿(11板)은 本 叢刊의 編輯方針에 따라 收錄對象에서 除外하였다. 따라서 收錄分은 總 401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奎4401)으로서 半葉은 9行 21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2.2×14.7(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首에 있는 跋은 一般 文集의 編輯體制에 따라 文集의 末尾로 옮겼으며, 一部 頭註의 內容은 匡郭 左右에 移置하고 原位置에 「*」로 標示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李承昌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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