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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선위사 강맹경에게 내린 사목의 내용.
일본국 사신(使臣) 선위사(宣慰使)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강맹경(姜孟卿)이 경상도로 떠날 때에 예조에서 위에 아뢰어 사목(事目)을 주었는데, 그에 이르기를,
“사신을 따라 서울에 들어올 사람은 20인에 넘지 말게 하고, 만일 굳이 청하거든 계해년 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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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사가 휘덕전에 진향과 장경을 청하다.
선위사(宣慰使) 강맹경(姜孟卿)이 보고하기를,
“일본국 사신이 이미 내이포(乃而浦)에 이르렀는데, 휘덕전(輝德殿)에 진향(進香)하는 것과 장경(藏經)을 청하는 것으로 왔습니다.”
하였다. 그 일본국사의 글에 이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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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정사 정우가 복종을 많이 데리고 서울로 수운하는 것을 말리도록 하다.
선위사(宣慰使) 강맹경(姜孟卿)이 치계하기를,
“일본국 정사(正使) 정우(正祐) 등이 복종(僕從)을 많이 거느리고 서울에 가려하고, 장삿배에 실은 물건도 모두 서울로 수운하고자 하므로, 신이 반복하여 타이르기를, ‘20인으로 정하고 단목(丹木)·동(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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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사 중 서울로 올라오는 인수를 정하고 물건을 수송하게 하다.
선위사(宣慰使) 강맹경(姜孟卿)에게 유시하기를,
“일본국사(日本國使)는 다른 도왜(島倭)와 비할 수 없으니, 서울에 올라오는 인수를 그 청에 따라 60인으로 정하고, 또 동·납·단목(丹木) 등물도 아울러 서울로 수송하게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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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정우 등이 오다.
일본국 사신 중 정우(正祐) 등이 왔음을 선위사 강맹경(姜孟卿)이 복명(復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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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호관과 일본국 사신 정우의 사사로운 행동을 논책하다.
향통사(鄕通事) 김귀선(金貴善)이 일본국 사신 정우(正祐)를 따라와서 왜인과 서로 친압하였는데, 감호관(監護官) 원상부(元尙孚)․이계수(李桂遂) 등이 그 죄를 다스리고자 하여 결박하여 뜰 가운데로 끌고 왔으므로, 정우 등이 분이 나서 먼저 종자로 하여금 감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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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정우의 진향을 받을 것인가 여부를 논란하다.
세자가 계조당에서 조참을 받으니, 일본국 사신 중 정우 등이 반열에 따랐다. 당 안에서 인견하고 임금의 뜻을 선유하여 위로하고, 조계청(朝啓廳)에 사연(賜宴)하였다. 이날 이른 아침에 정우(正祐) 등이 먼저 근정전 뜰에 나아가 국서(國書)를 드리고, 예를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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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으로 하여금 일본 사신 정우에게 국가의 뜻을 전하게 하다.
의정부와 예조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피상의(皮尙宜)가 말하기를, ‘종정성(宗貞盛)이 보여 준 일본국왕의 교서 가운데에는 사신의 배가 한 척이라.’ 하는데, 이번에 온 배는 세 척이니, 그 두 척은 일본에서 보낸 것이 아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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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의 감사로 하여금 봉화 ․ 설치대를 점검하도록 하다.
임금이 김종서(金宗瑞)·정분(鄭苯)·허후(許詡)와 강맹경(姜孟卿) 등을 인견하고 의논하기를, …… 임금이 또 말하기를,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봉화의 설치는 변방의 경보를 보고하는 것이므로 높은 산에 많이 있게 되는데, 대저 산이 높으면 아침저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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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참찬 허후가 채붕을 잡고 잡희를 연주하는 폐단을 아뢰다.
처음에 우참찬 허후(許詡)가 아뢰기를,
“부묘(祔廟)하고 환궁하실 때에 채붕(彩棚)을 맺고 잡희(雜戱)를 연주한 것은 고려말기의 폐법(弊法)을 그대로 시행하여 고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폐법이라 하지만 사실은 임금에게 속해 있으므로 신자가 혁파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