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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회례사 박안신과 이예를 내전에 불러 접견하다.
일본국 회례사 상호군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였는데, 임금이 내전에 불러 들여 접견하였다. 안신이 계하기를,
“신 등이 처음에 적간관(赤間關)에 이르자 규주(圭籌)가 국서를 등사하여 급히 어소(御所)에 보고하였는데, 55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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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 다녀온 석견주의 사물 관압사 대호군 이예가 복명하다.
석견주(石見州)의 사물관압사인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여 계하기를,
“종정성(宗貞盛)은 예를 갖추어 명령을 맞았으며, 내리신 부물을 받고는 신 등을 대접함에 심히 후하여 45리나 되는 훈라관(訓羅串)까지 나와 전송하면서, 신에게 이르기를, ‘신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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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으로 하여금 일본 사신 정우에게 국가의 뜻을 전하게 하다.
의정부와 예조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피상의(皮尙宜)가 말하기를, ‘종정성(宗貞盛)이 보여 준 일본국왕의 교서 가운데에는 사신의 배가 한 척이라.’ 하는데, 이번에 온 배는 세 척이니, 그 두 척은 일본에서 보낸 것이 아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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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해 소나무에 관한 감독 관리에 대해 상신하다.
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하여 상신하기를,
“병선(兵船)은 국가의 도둑을 막는 기구이므로 배를 짓는 소나무를 사사로 베지 못하도록 이미 일찍이 입법을 하였는데, 무식한 무리들이 가만히 서로 작벌하여 혹은 사사 배를 짓고,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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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 등이 선위의 뜻을 거두기를 청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우찬성 최황(崔滉), 상산군 박충간(朴忠侃),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아천군 이증(李增),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행호조참판 윤우신(尹又新),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행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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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사 김천일이 도성공격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치계 하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이 치계하였다.
“경도(京都)의 백성들이 이미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다투어 내응하기를 바라는데, 그 수효가 수천 명에 이를 것입니다. 비록 적이 진치고 있는 데 대응하여 대략 부오(部伍)를 나누고 각기 그 장수를 정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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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경성의 포위 상황을 아뢰며 왜적이 합세하기 전에 토벌하자고 청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 하였다.
“경성에 있는 적의 무리가 12일의 행주 전투로 인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도망해 돌아온 사람들의 말이 모두 같습니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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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 최천건, 서장관 경섬 등이 배사하니 양호를 신변하는 주본을 올리다.
진주사 최천건(崔天健), 서장관 경섬(慶暹)이 배사하였다. 주본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 삼가 대군이 이미 모였는데 무신이 탄핵을 입어 사람들이 모두 의혹스럽게 여기고 있어 사기가 그르쳐지게 되었으므로 성명께서 실상을 통찰하고 속히 결단을 내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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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급사에게 군사 ․ 병마 ․ 군량 ․ 성곽 수선 등에 대해 회자하다.
서급사(徐給事)에게 회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돌이켜보건대 본직은 재주가 용렬하고 형세 또한 어려워서 난리를 당한 지 7년이 되도록 스스로 떨쳐 일어서지 못하고 번거롭게 군사의 도움을 요청하여 두 차례 성대한 군사를 일으키게 하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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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돈녕 이산해 등이 광해군에 관하여 군문과 경리에게 정문을 보내다.
영돈녕 이산해(李山海) 등이 군문·경리에게 정문하였다.
“과군이 불행하게도 적자를 두지 못하고 빈궁 김씨(金氏)에게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는 임해(臨海)이고 차자는 광해(光海)라고 합니다. 임해는 타고난 자질이 범상한 데 비하여 광해는 총명하고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