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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과 포로를 잡은 김영렬에게 내구마를 내리다.
우도 수군 첨절제사 김영렬(金英烈)이 왜선 1척을 나포하여 21인이나 생금하여 바치니, 임금이 가상하게 여기어 대장군 고봉지(高鳳智)를 보내어 구마(廏馬) 1필과 비단과 궁온(宮醞)을 하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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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이 잡은 왜구를 성동에서 참형하다.
김영렬(金英烈)이 잡은 왜구를 성동(城東)에서 참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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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과 김승주에게 왜구를 공격할 계책을 논의케 하다.
도평의사사에 명하여 수군 절제사 김영렬(金英烈)과 형조전서 김승주(金承霔)를 불러서 왜구를 공격할 계책을 논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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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절제사 김영렬이 왜선 2척을 잡고 3명을 생포하다.
우도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 김영렬(金英烈)이 왜선 2척을 추자도(楸子島)에서 잡고 3명을 생금(生擒)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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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절제사들이 울주지사를 납치해 간 일로 처벌받다.
도당(都堂)을 중심으로 각사(各司)와 기로(耆老)에게 명하여 최운해(崔雲海)·이귀철(李龜鐵)·김빈길(金贇吉)·김영렬(金英烈) 등의 죄를 의논하게 하였다. 당초에 항복을 청해 온 왜적이 경상도 울주포(蔚州浦)에 와서, 왜적의 괴수인 나가온(羅可溫)이 그의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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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해 ․ 이귀철 등을 항왜가 도망간 일로 국문하다.
최운해(崔雲海)·이귀철(李龜鐵)·김빈길(金贇吉)·김영렬(金英烈) 등을 잡아와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대간(臺諫)과 형조로 하여금 이를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옥사(獄事)가 이루어지니,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그 죄를 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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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가 도망한 일로 최운해 등을 유배보내어 수군에 편입시키다.
임금이 명하여 최운해(崔雲海)를 안변(安邊) 진명포(鎭溟浦)에, 김영렬(金英烈)을 옹진(瓮津)에, 김빈길(金贇吉)을 청해(靑海)에, 이귀철(李龜鐵)을 평양(平壤)에 유배하고, 모두 수군에 충원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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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군관을 보내어 최운해 등을 수군 등에 편입시키다.
순군관(巡軍官)을 보내어 최운해(崔雲海)에게 장(杖) 100에 청해도 수군(靑海道水軍)으로 옮겨 편입하고, 김빈길(金贇吉)은 90대에 흑림수군(黑林水軍)으로 옮겨 편입하고, 이귀철(李龜鐵)은 90대에 안주수군(安州水軍)으로 옮겨 보충하고, 김영렬(金英烈)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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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을 서북면에 보내 왜를 방비하게 하다.
좌우도(左右道) 수군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 김영렬(金英烈)을 풍해도(豊海道) 서북면(西北面)에 보내어 왜적을 방비하게 하였으니, 전라도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가 왜선 9척이 서북면으로 향하였다고 보고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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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 강화의 수군을 조사해서 구역을 환정하다.
의정부에 명하여 교동(喬桐)·강화(江華)의 수군으로 여러 고을에 흩어져 있는 자를 죄다 조사해서 모아들여 구역(舊役)을 환정(還定)하게 하였다. 경기 좌우도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 김영렬(金英烈)이 아뢰었다.
“지난 경신년에 전라도의 수군으로 정예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