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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준 ․ 평만경이 예조에 대장석전의 하사에 감사하는 서신과 예물을 보내다.
원의준․평만경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의를 바치었다. 원의준이 예조에 서신을 보냈는데, 그 서신에,
“우리 국왕이 청구한 대장석전(大藏釋典)을 보내 주심을 보니 은혜롭습니다. 〈대장석전〉을 실은 배가 대마도에서 바로 장문주(長門州)의 적간관(赤間關)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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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 총관 원도진이 대장경 청구하는 글을 예조에 올리다.
일본 구주전총관(九州前摠管) 원도진(源道鎭)과 축주부석성관사(筑州府石城管事) 평만경(平滿景)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의를 바치고, 원도진이 예조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우리 전하께서 전년에 대장경을 구하니, 귀국에서 즉시 보내주신 은혜를 베푸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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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원도진이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의 원도진(源道鎭)이 사람을 보내어 토물인 유황 5,000근, 동 100근, 소목 300근, 마황 10 근, 천궁 5 근, 황금(黃芩) 5 근, 나한석 10 근, 육종용(肉從容) 1 근, 양강 10 근, 서각 3 본, 상아 1 본을 바쳤으므로, 정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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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풍주태수가 예조에서 서신을 보내오고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풍주태수(豊州太守) 원지직(源持直)이 예조에 서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예라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의 표현이며, 의라는 것은 믿음의 징증인 것입니다. 우리는 귀국 조정에 대하여 비록 경과 신은 있으나 예의는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석성(石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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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서도 축주부 종금이 숙배를 드리고 토물을 바치다.
세자가 계조당(繼照堂)에서 조참(朝參)을 받았는데, 왕후 상사가 있은 지 3년 이내이므로 고취악(鼓吹樂)을 진열하기만 하고 연주하지 않았다. 일본 관서도(關西道) 축주부(筑州府) 냉천진(冷泉津)의 종금(宗金) 등 50인이 먼저 근정전(勤政殿) 서편 뜰에 나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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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전주의 등원정청과 비전주의 원고가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축전주(筑前州) 냉천진(冷泉津) 등원정청(藤源定淸)·비전주(肥前州) 상송포(上松浦) 호자(呼子) 일기수(一岐守) 원고(源高)가 각각 사인을 보내 와서 토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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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종가무 등이 와서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관서로(關西路) 축전주(筑前州) 냉천진(冷泉津) 종금독(宗金督)의 아들 종가무(宗家茂) 등 5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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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의 사자 패가도 등이 대마도에 이르러 약탈당하다.
유구국의 사자 패가도(覇家島)와 냉천진(冷泉津)의 평씨(平氏)와 호군 도안(道安)이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면포(綿布)·주포(紬布)와 서계(書契)를 받아서 돌아가다가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러 그 섬에서 약탈당하였었다. 오로지 남은 서계는 그 아들에게 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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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일본 사신 뇌영의 서계를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뇌영(賴永)의 서계에 이르기를, ‘나구야진(那久野津)은 바로 본도의 요진입니다. 무릇 명(明)나라와 조선이 본국에 보내는 것은 냉천진(冷泉津)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이 진(津)에 닿아서 험한 풍파를 피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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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서해로 축전주 냉천진등씨 등이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서해로(西海路) 축전주(筑前州) 박다성(博多城)의 냉천진(冷川津) 등씨(藤氏)의 어미가 무촌(茂村) 등 2인을 보내어 와서 토물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