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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를 인견하고 유성룡의 군량 조달, 평양 전투, 중국군의 실정 등을 묻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아가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를 인견하였다.【승지 신점(申點)】상이 이르기를,
“풍원(豊原)이 군량과 말먹이를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청병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신이 안주에서 유성룡을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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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징이 동총병을 만나 구원을 청한 일과 남병이 도착한 일을 보고하다.
사간 이유징(李幼澄)이 아뢰었다.
“소신이 어제 명을 받들고 강을 건너서 동총병(佟摠兵)에게 정문 하였습니다. 소신이 고하기를 ‘왜적이 전일 명군이 진격하여 토벌한 뒤부터 감히 멋대로 출입하지 못하다가, 이내 10일에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올라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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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곤수 등이 진주사로 북경으로 떠나다.
대사간 정곤수(鄭崑壽), 헌납 심우승(沈友勝)이 진주사로 북경에 가게 되었는데 그 직을 사면하여 체직하였다.【곤수는 평양에 있을 때에 대사간이 되었다.】
【사신은 논한다. 제진이 연달아 함락되고 양경(兩京)이 함몰되었으니, 사경(四境)을 둘러보아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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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출병, 각도의 전투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아가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진주사 정곤수(鄭崑壽), 서장관 심우승(沈友勝)을 인견하였다.【승지 오억령(吳億齡), 주서 강욱(康昱)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문에 대한 조사는 대신이 이미 지시해 주었으나, 나의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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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낙참장을 만난 뒤 중국의 각 군대가 출정하는 일정을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와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신 근수가 낙참장(駱參將)을 만나기 위해 강가에 갔다가 낙과 동총병(佟摠兵)이 강을 건너 사(査) ․ 갈(葛) 두 참장을 보러 온다는 말을 듣고서 그대로 강가에 머물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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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 정곤수 등이 북경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중국 조정의 상황 인식을 논의하다.
진주사 지중추부사 정곤수(鄭崐壽), 서장관 직강(直講) 심우승(沈友勝)이 북경에서 돌아오니, 상이 편전에서 인견하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주한 일은 소원대로 되었는가?”
하니, 정곤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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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작상의 외람됨과 병사 이옥의 삭탈관작 등을 아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변란이 생긴 뒤에 작상을 노고를 갚는 도구로 삼아, 심지어 어가를 호종한 여러 신하들에게 으레 한 자급을 더하도록 하기까지 한 것은 외람됨이 심합니다. 이번에 정곤수(鄭崑壽) ․ 심우승(沈友勝) 등이 진주(陳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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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윤두수가 이제독에게 가려하자 인견하여 위로하고 경성수호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제독의 군전(軍前)에 나아가려고 하면서 아뢰기를,
“신이 지금 직사를 형편없이 처리했다는 것으로 군전에 나아가게 되었으니 한번 죽는 것밖에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선위하시겠다는 전교를 받고부터는 온편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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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서가 조선에 사은사를 재촉했다.
이제독(李提督)의 차비통사(差備通事) 김길손(金吉孫)이 서계하였다.
“석상서(石尙書)가 제독에게 보낸 글에 ‘조선국왕은 어찌하여 지금까지 사은하지 않는가. 태만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신을 보내면서 ‘사은사(謝恩使)를 두 차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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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청병하는 일을 주청하자 비변사와 상의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병을 보내줄 것과 군대를 남겨둘 것을 주청함에 대하여 경략이 말하기를 ‘매우 긴급하니 즉시 사신을 차출하여 밤낮으로 달려 북경에 보내야 한다. 만일 주본을 올리지 않으면 내가 독단으로 할 수는 없다.’ 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