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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에서 총관 찰홀을 파견하여 병선 3백척을 건조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다.
원나라에서 총관(總管) 찰홀(察忽)을 파견하여 병선 300척을 건조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다. 병선 건조에 필요한 장인들과 역군 및 일체 자재들은 전부 우리나라의 부담으로 맡겼다. 그래서 이에 문하시중 김방경(金方慶)을 동남도(東南道) 도독사(都督使)로 임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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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대부 곽여필을 원나라에 파견하여 동정군으로 보충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표문을 보내다.
간의대부(諫議大夫)간의대부(諫議大夫)고려시대 문하부(門下府)의 관직이다. 사의대부(司議大夫)라고도 한다. 직능은 보궐(補闕)·습유(拾遺) 등과 함께 낭사(郎舍)로서 봉박(封駁)과 간쟁(諫爭)을 담당하였다. 곽여필(郭汝弼)을 원나라에 파견하여 표문을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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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경상도 등에 도지휘사로 임명하여 전함을 수리 건조케 하다.
허공(許珙)을 경상도에, 홍자번(洪子藩)을 전라도에 보내 각각 도지휘사로 임명하여 전함을 수리 건조케 하였다. 또 권단(權㫜)을 충청도에 보내 도지휘사로 임명하고 주열(朱悅)을 경상도에, 곽여필(郭汝弼)을 전라도에, 우준충(禹濬沖)을 서해도에, 최유후(崔有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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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인후를 원나라에 파견하여 병선 건조 등 일본정벌 준비를 하였다고 아뢰다.
우승지 조인규(趙仁規), 대장군 인후(印侯)를 원나라에 파견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중서성에 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병선 9백척과 초공. 수수 만 5천명, 정군(正軍) 만명을 준비하였으며 군량은 중국의 석(石)으로 계산하여 11만석을 준비했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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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서해도의 전함을 수리, 건조하게 하다.
지밀직사사 송분(宋玢)을 경상도에, 동지밀직사사 김백균(金伯均)을 전라도에, 밀직부사 우준충(禹濬沖)을 충청도에, 판사재(判司宰) 김지경(金之卿)을 서해도에 각각 파견하여 전함을 수리, 건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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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도 만호 허자린을 왜적을 방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곤장으로 치게 하였다.
서해도(西海道) 만호 허자린(許子麟)이 왜적을 방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삼사좌사(三司左使) 정단봉(鄭丹鳳)을 체복사로 파견하여 그를 곤장으로 치게 하였더니 정단봉이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그를 교살하였다. 허자린의 아우가 그 억울함을 송사하였으므로 정단봉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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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직 이두란과 장사길을 파견하여 서해도에서 왜적을 치게 하다.
밀직 이두란(李豆蘭)과 장사길(張思吉)을 파견하여 서해도에서 왜적을 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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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도감을 두고 각 도의 군대를 징발하여 왜적을 방비케 하다.
처음으로 화통도감(火桶都監)을 두었다. 각 도의 군대를 징발하여 왜적을 방비케 하되 기병수(騎兵數)는 경상도에 6백명, 강릉도, 평양도에 각각 3백명, 삭방도, 서해도에 각각 2백명, 교주도에 기병 5백명으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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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 최영(崔瑩)은 풍채가 헌걸차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 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 있으면서 누차 왜적을 사로잡아 용맹을 떨쳤으므로 달적(達赤)으로 채용되었다. …… 공민왕 6년에 외직으로 나가서 서해(西海), 평양(平壤), 이성(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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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원수 나세, 심덕부, 최무선을 보내 전함 백 척을 인솔하고 왜를 추격하여 잡다.
해도원수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 최무선(崔茂萱)을 보내 전함 백 척을 인솔하고 왜적을 추격하여 잡았다. …… 왜적이 공주에 침입하였으므로 김사혁(金斯革)이 쳐서 적 4명의 머리를 베었다. 나세·심덕부·최무선 등은 진포에서 왜적과 싸워서 승리하고 포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