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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은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문제를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동낭중(董郞中)이 분부한, 은자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는 5만여 필에 이를 것이니 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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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가 적에 패하여 전사하다.
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柳宗介)가 적을 만나 패하여 전사하였다.
이에 앞서 경상좌도의 산협(山峽)과 해빈의 10여 고을은 적로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서 사족(士族)들은 험한 지역을 의지하여 병란을 피하고 여리에서는 의구하여 모두 ‘만약 군사를 모으면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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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길주의 적이 성을 비워놓고 도망하였고 정문부가 관북을 평정하다.
함경도 길주(吉州)에 주둔했던 적이 성을 비워놓고 도망하였다. 정문부(鄭文孚)가 관북을 평정하였다.
정문부가 1년이 넘도록 길주를 포위하였는데 비록 탄환이 무서워서 성을 공격할 수는 없었지만, 적의 땔나무와 마초가 조달되는 길을 차단하였으므로 적은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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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의 관령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은 정희현을 삭직하고 결장하다.
별장 정희현(鄭希玄)과 박명현(朴名賢) 등을 보내 북로의 관령을 방비하게 하였는데, 이는 청정(淸正)이 아직도 안변에 주둔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희현이 군량이 떨어졌다고 핑계하며 군사를 해산시키고 물러왔기 때문에 삭직하고 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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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이여송이 도로 평양에 머물다.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도로 평양에 머물렀다.
제독이 오래도록 개성에 머물면서 군량이 떨어져 가는데도 전진할 생각은 없이 자주 사람을 경략에게 보냈는데, 이는 대개 전일의 화의를 계속해 보려는 것이었다. 때마침 와언이 있어 ‘적장 청정(淸正)이 장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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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 청정이 안변에서 철군하여 경성에 돌아오다.
적장 청정(淸正)이 안변에서 철군하여 경성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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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국청에서 고언백과 박명현 등이 임진왜란 때 평양 등지에서 왜적과 싸웠다고 공초하다.
추국청에서 상인 고언백(高彦伯)과 연창군(延昌君) 박명현(朴名賢) 등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임해의 집을 출입하면서 교결하여 심복이 되어 가장 친밀하게 지냈고 은밀히 이심을 품고 있었으니, 종적이 의심스럽다. 사실대로 직초하라.”
하니, 고언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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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의 졸기에 임진왜란 때 왕자룰 호위하다가 적군에게 잡혀 안변에 갇혀 있었다고 적다.
〈고 부원군 황정욱(黃廷彧)이 죽었다. 황정욱은 문장이 고상하고 묘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뽐내거나 자랑하지 아니하여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 노수신(盧守愼)이 우연히 그의 시를 보고서 맞이해다가 칭찬을 하고 발탁하여 천거해서 마침내 대제학이 되었고, 변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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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을 추국하여 적진에서 있었던 일을 공초받다.
삼성이 모여 황정욱(黃廷彧)을 추국하였다. 위관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급제 황정욱이 공초【*】하였습니다. 그가 승복을 하지 않으니 형추하여 진실을 캐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형추해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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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즉위후에 야인들의 귀화와 도왜의 래조를 적다.
오랑합(吾郞哈) 수오(水吾)와 적개(狄介) 등 4인이 왔다.
삼국 말기에 평양 이북은 모두 야인들의 사냥하는 곳이 되었었는데, 고려 때에 남방 백성들을 옮겨서 채우고 의주(義州)에서 양덕(陽德)에 이르기까지 장성(長城)을 쌓아 국경을 굳게 했으나,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