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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포와 부산포 이외에 울산의 염포에서도 무역을 허가하기로 하다.
대마도의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삼미삼보라(三未三甫羅)를 보내어 내조하여 예조에 글월을 올리기를,
“우리 섬에는 토지가 없사오니 거제도(巨濟島)에 있는 농토 한 자리를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어서 생활을 유지하게 하여 주시고, 상선(商船)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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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포에 도만호를 설치하고 서생포의 병선 중 3척을 염포로 옮기게 하다.
병조에서 경상도좌도수군처치사의 공첩에 의거하여, 의정부와 육조와 함께 의논하여 계하기를,
“염포에 도만호를 설치하여, 서생포(西生浦)의 병선 10척 중에서 3척을 덜어내어 염포로 옮겨 정박하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할 것입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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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주 종정성이 어선의 나포를 항의하는 글을 올리니 그 사유를 답하다.
대마주 종정성(宗貞盛)이 사람을 시켜 글을 예조에 바치기를,
“본주 패화군(貝化軍)의 어선이 대국 남쪽 수이도(愁伊島) 병선에게 사로잡혔사옵니다. 본래 이 같은 어선을 임의대로 왕래시키려고 하여 오랫동안 교호의 예를 닦아왔던 터인데, 근래 2·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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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처치사가 왜구의 방비책을 건의하다.
경상좌도 처치사(處置使)가 아뢰기를,
“기해년에 동정(東征)한 뒤로부터 왜구들이 이미 천위(天威)에 굴복하여 감히 포학을 부리지 못하오나, 승냥이 같은 야심을 품고 잠시 붙어서 신하로 섬기다 잠시 동안에 배반하여 간사한 꾀를 헤아리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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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감사가 왜어 공부의 진흥책을 아뢰다.
경상도감사가 아뢰기를,
“이제 왜어(倭語) 공부를 시키는 문제로 김해(金海) ․ 양산(梁山) ․ 동래(東萊) 등 지방과 내이(乃而)·부산(富山) 등 포에 조사하여 본즉, 모두 이르기를 ‘만일 각기 제 고을에 모아서 가르친다면 여러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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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왜인에게 피로되었던 이라 등의 정착을 건의하다.
예조에서 경상도감사의 관문(關文)천암만학깊은 산속의 경치를 가리키는 말.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염포(鹽浦)에 나와 있는 왜인 이라(而羅) ․ 삼보라(三甫羅) 등은 본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과거에 왜에게 포로가 되었던 자인데, 지금 염포의 왜관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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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왜인 사신의 상경 경로를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일본국왕과 좌무위(左武衛) 대내전(大內殿)의 사인 이외에 제도의 객인들에게는, 차사원이 이미 일찍이 미두와 염장(鹽醬)과 주미(酒米)를 준비 저장하여서 어떤 때는 3일에 1번, 어떤 때는 5일에 1번씩 내어 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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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주태수 종정성이 가배량 ․ 구라량 등처에 내왕하면서 흥판하기를 청하다.
대마주태수 종정성(宗貞盛)이 사람을 보내어 가배량(加背梁)․구라량(仇羅梁)․두모포(豆毛浦) 등처에 내왕하면서 흥판(興販)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예조로 하여금 회답하기를,
“부산 ․ 내이포 ․ 염포 등 세 곳에 왕래하면서 넉넉히 장사하기를 허락하였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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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포에 상주하는 굶주리는 왜인에게는 환상양곡을 적당히 주도록 하다.
예조에서 경상도감사의 첩문(牒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염포(鹽浦)에 상주하는 굶주리는 왜인에게는 환상(還上)양곡을 적당히 주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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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에서 상업하는 왜인의 귀환조치에 대해 의정부와 의논하다.
이 앞서 경상도 감사가 아뢰기를,
“내이포(乃而浦)에 와서 사는 왜놈[倭奴]이 갔다가 왔다가 함이 일정치 아니하여 날마다 더 오고 달마다 더 와서 수년 동안에 거의 수백 호나 되었으니, 이것은 뱀을 방안에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