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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유생 박한흠 등이 금산에서 순절한 조헌 등을 문묘에 종향하도록 청하다.
팔도유생 박한흠(朴漢欽) 등이 상소하여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 문경공(文敬公) 김집(金集)을 문묘에 종향하도록 청하였다. 그 상소에 아뢰기를,
“…… 애당초 왜인의 사신이 와서 우리 사정을 염탐할 적에 격한 상소를 하여 참수를 청하여 하늘에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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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백성들 중 일부러 왜국에 표류하는 이들의 처벌에 대해 논하다.
경모궁으로 가서 희생과 제기를 살펴보고 나서 재계하며 밤을 지냈다.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이 아뢰기를,
“영남 바닷가의 간사한 백성들 중에는, 흉년을 만나면 처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해 놓고 패거리를 지어 일부러 왜국의 국경 안으로 표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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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가뭄 등이 잇달아 강호에서 신사를 영접하지 못하고 대마도로 바꿀 것을 청하다.
차대하였다. 우의정 김재찬(金載瓚)이 말하기를,
“왜국은 서계의 규례가 예조참의에게 보내는 것은 도주의 서계이고, 예조참판에게 보내는 것은 관백(關白)의 서계이므로, 이번에 차왜가 가지고 온 서계는 곧 예조참판에게 보낸 것이니, 관백에게서 나온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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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김로가 인삼과 북관의 동을 교환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차대하였다.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아뢰기를,
“경성(鏡城)의 고 지평 이재형(李載亨)은 진실로 호걸스러운 선비로서 세속에 따라 변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문간공 김창협(金昌協)이 평사로 있을 때에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배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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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국에서 동래부사 박제명이 왜국의 대선 1척이 조위사로 나왔다는 장계를 올리다.
비국에서 아뢰기를,
“동래부사 박제명(朴齊明)의 장계를 보니, 왜국의 대선 1척이 조위사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이미 조위하러 왔다 말하고, 또 이미 왜관에 도착하였으니, 전례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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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의 피살사건을 심핵하게 하고, 양식을 주는 것 등은 옛법을 따르게 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 종정국(宗貞國)이 보낸 중산화상(中山和尙)이 고하기를, ‘무릇 왜선이 포에 이르면 즉시 인구와 진상하는 물건을 헤아려 점검하여서 급히 포소로 올려 보내지 아니하고, 또 양식도 주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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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 사자를 잘못 관대한 동래 ․ 웅천 등의 고을을 안핵케 하다.
경상도 동래(東萊)와 웅천(熊川) 등의 고을에서 왜국의 사자를 관대하는 데 마땅함을 잃었으므로, 사섬부정(司贍副正) 이극기(李克基)를 삼포(三浦)에 보내어 안핵하게 하였다. 겸예조판서 고령군 신숙주와 상락군 김질·호조판서 노사신·참판 한치인·참의 권각·예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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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서 왜국에서 바치는 동철 ․ 소목 등을 운반하는 폐단에 대해 아뢰다.
호조에서 경상도관찰사의 계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왜국의 사신 일행이 바친 동철(銅鐵)·소목(蘇木)이 거의 3, 400짐에 이르니, 농삿달에 운반하는 폐단이 적지 아니합니다. 포소에서 백성으로 하여금 무역하게 하는 것이 편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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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은 경계가 왜국의 섬과 연하여 있으므로 수어를 견고하게 하도록 하다.
경연에 나아가서 강하기를 마치니 …… 조석문(曹錫文)은 아뢰기를,
“남방은 경계가 왜국의 섬과 연하여 있으므로 수어를 견고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승평한 날이 오래되어서 연변의 성보가 점점 허물어져 무너지기에 이르렀어도 수령이 게을러서 수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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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판서 양성지가 제주에 관해 논하다.
공조판서(工曹判書) 양성지(梁誠之)가 상서하였는데, 이르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제주(濟州)는 옛 탐라국(耽羅國)입니다. 지방이 100리 이며 바다 밖에 멀리 있는데, 신라(新羅) 때에 비로소 내조하였고, 고려(高麗)에 이르러서 나라를 없애고 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