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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중추원사 이예가 왜국 소이전에 신사 파견을 아뢰다.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이예(李藝)가 아뢰기를,
“이제 왜국(倭國)의 소식을 들었사온데, 특별히 신사(信使)를 소이전(小二殿)에게 보내어 치례(致禮)함이 옳겠습니다. 종정성(宗貞盛)에게도 마땅히 후한 예로써 대접할 것이오나, 연변의 주군(州郡)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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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과 김종서가 왜인과 같이 배를 타고 온 중국인을 상국으로 보내는 데 반대하다.
좌찬성 하연과 예조판서 김종서가 아뢰기를,
“지금 중국사람이 왜인과 더불어 배를 같이 타고 왔는데, 지금 만약 〈잡아서〉 상국(上國)에 보낸다면, 상국에서 반드시 왜국과 교통한 정상을 알게 될 것이니, 후환이 있지 않겠습니까. 또 이 중국사람이 중국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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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사가 북경에 가는데 조정에서 왜국과 통호하는 이유를 물으면 도적을 금하는 것으로 말할 것을 권제 등에게 이르다.
임금이 권제(權踶)․김청(金聽)․안지(安止) 등에게 이르기를,
“이제 주문사(奏聞使)가 북경에 가는데, 조정에서 만약 ‘너희 나라가 왜국(倭國)과 통호하느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내 생각에는 예전에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가 일본에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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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판서 안숭선이 왜에 대한 방비책을 상소했으나 윤허치 않다.
형조판서 안숭선(安崇善)이 상소하기를,
“신이 좁은 소견으로 삼가 한두 가지 조목을 들어서 천총(天聰)에 모독하오니 재량하여 선택하시기 복망하옵니다.
1. 태평할 때를 당하여서도 다시 위태함의 경계심이 없을 수 없사오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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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를 따라 일본에서 온 중국인 서성을 돌려보낼 것인지를 의논하다.
임금이 글로 승정원(承政院)에 내어 보이기를,
“체찰사 이예(李藝)가 대마도(對馬島)에 도착하자, 중국인(中國人)인 서성(徐成)이란 자가 따라오기를 청하매, 예가 거절하기를, ‘도주(島主)의 말을 듣지 않고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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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도사에 자문을 보내어 이예가 대마도에서 데리고 나온 절강사람 서성에 대해 말하다.
사역원주부(司譯院注簿) 김유례(金有禮)를 보내어 요동도사(遼東都司)에 이자하기를,
“의정부에서 장계하기를, ‘정통(正統) 8년 6월 초1일에, 본국의 제주(濟州) 관선(官船) 한 척이 서여서도(西餘鼠島)에 이르러 정박하고 있는 사이에, 홀연히 왜적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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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신진의 병마첨절제사로 현사를 겸임하게 하여 민폐를 없애게 하다.
이조에 전지하기를,
“웅신현(熊神縣) 내이포(乃而浦) 등처에 와서 정박(停泊)하고 있는 왜국의 객인(客人)들을 김해부(金海府)로 하여금 공궤하고, 그 부에서 지응하는 모든 사람과 수종인들의 먹는 것은 다 웅신현에서 제공하게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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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원사 이예의 졸기.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이예(李藝)가 졸하였다. 예는 울산군의 아전이었었는데, 홍무(洪武) 병자년 12월에 왜적 비구로고(非舊老古) 등이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복(降服)을 청하거늘, 경상도감사가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시켜서 관(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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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폐가 왜국으로 흘러 들어가므로 저화쓰기를 청하다.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이계전(李季甸)을 불러 전지하기를,
“호조(戶曹)에서 전폐(錢幣)가 계속하기 어렵다고 고쳐서 저화(楮貨)를 쓰기를 청하였으니, 예전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하니, 문 등이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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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중국인 관음보를 돌려 보내는 문제로 의논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금(宗金)이 데리고 온 중국인 관음보(觀音保)가 말하기를, ‘본디 금산위(金山衛)에 살았었는데 14세 때에 사로잡히어 화가도(花加島)에 이르러 머물러 있는 지가 30여 년이 되옵는데, 고향이 그리워서 종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