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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신이 왜구를 막을 병선을 제조할 것을 상소하다.
병조 참의 박안신(朴安臣)이 상서하기를,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오직 마땅히 지난 일을 거울삼아 뒷일을 염려하여, 그 장구히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하기를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왜도(倭島)와 심히 가까와서, 예전 삼국시대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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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에서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성격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경연에 나아가서 강하다가 요의 임금인 분와사열(奔訛沙烈)의 대목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적(夷狄)은 마음이 본시 순후(純厚)하므로, 그들이 대우하는 것도 이렇게 후하다. 지금 왜인이 매우 강악하지만, 윗사람을 섬김에 있어서 절조를 위하여 죽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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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 ․ 도진무 ․ 김효성 ․ 경력 최치운 등이 사조하다.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도진무 김효성․경력 최치운 등이 사조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말하기를,
“오랑캐를 방어하는 방도가 예전에도 좋은 계책이 없었다. 삼대의 제왕들은 오면 어루만지고, 가면 쫓지 아니하여, 다만 횡포하지 못하도록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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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황제가 동맹가첩목아에게 내린 칙서에 관해 말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 임금이 또 말하기를,
“자제들을 보내어서 입학하는 일은 내가 매양 생각하니, 부모처자와 서로 이별하는 정은 진실로 참을 수 없는 일이나, 그러나 우리나라가 중국과 사귀는 데에 요긴한 것은 오로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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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성이 도망한 노비 전봉금중 등을 돌려보낼 것을 청했으나 허락지 않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정성(宗貞盛)의 글에 이르기를, ‘나의 노비 조선인 전봉금중(田奉金衆)과 그의 처 도미(都未)의 소생인 소남(小男)과 중국인 곤로(昆老) ․ 고보(古甫)와 왜인 이지가고(而知家古) 등이 7월 초4일에 도망하여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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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군 이관을 북경에 보내어 황후의 책봉을 하례하고 이상의 일을 아뢰다.
전의군(全義君) 이관(李梡)을 보내어 북경에 가서 황후의 책봉을 하례하고 겸하여 이상(李相)의 일에 관하여 아뢰었는데, 그 표문에 이르기를,
…… 그 주본에 이르기를,
“…… 신이 조사하여 알게 되었는데, 신이 무릇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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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에게 피로되었다 도망친 절강 사람 6명을 요동으로 압송하다.
당초에 절강(浙江) 창국현(昌國縣) 사람 위소기(衛小旗)․대불명(戴弗名) 등 6명이 왜인(倭人)에게 피로되었다가 이때에 도망쳐 왔으므로, 사역원판관(司譯院判官) 김정수(金精秀)를 보내 요동(遼東)으로 압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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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주문사 공조참판 정분을 보내어 왜구의 침략행위에 대해 알리다.
주문사(奏聞使) 공조참판 정분(鄭苯)을 보내어 북경에 갔다. 그 주본에 말하기를,
“공경히 배신 이주판관(義州判官) 홍유강(洪有江)이, 요동천호(遼東千戶) 혁연(赫連)이 받들고 온 칙유(勅諭)를 전해 받아 가지고 온 것을 받잡고, 신이 감격함을 이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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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를 따라 일본에서 온 중국인 서성을 돌려보낼 것인지를 의논하다.
임금이 글로 승정원(承政院)에 내어 보이기를,
“체찰사 이예(李藝)가 대마도(對馬島)에 도착하자, 중국인(中國人)인 서성(徐成)이란 자가 따라오기를 청하매, 예가 거절하기를, ‘도주(島主)의 말을 듣지 않고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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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사 신인손이 왜구를 압송하여 간 요동에서의 상황을 치계하다.
주문사(奏聞使) 신인손(辛引孫)이 치계하기를,
“신이 요동에 이르러 진무(鎭撫) 장영(張瑛)을 보고 적왜(賊倭)를 압령하여 온 까닭을 자세하게 말하였더니, 영이 말하기를, ‘예전에 없었던 드문 일이라.’ 하고, 관(館)에 도착한 이후로 구경하러 오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