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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 차관 황응양에게 일본의 침략이 정명가도에 있음을 설명하다.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이 유격(遊擊) 등 세 관원을 가서 만나보고 ‘오늘은 이미 저물었고 또 자문도 미처 정서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하께서 내일 서로 만났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당연히 내일 아침에 국왕을 뵙고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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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차관을 접견하기 전에 윤근수 등과 중국에 청병하는 일 등을 논의하다.
상이 하시(夏時)·황응양(黃應陽)·서일관(徐一貫) 등 세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용만관(龍灣館)에 나아갔다. 이에 앞서 윤근수와 도승지 박숭원(朴崇元), 봉교(奉敎) 기자헌(奇自獻)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사람들이 왜와 서로 안다 하니, 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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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사 이덕형이 돌아와 중국측의 반응과 요동으로 망명하는 일 등을 아뢰다.
청원사 대사헌 이덕형(李德馨)이 요동에서 돌아왔다. 상이 인견을 명하니, 덕형 및 승지 홍진(洪進), 겸춘추(兼春秋) 윤승훈(尹承勳), 봉교 기자헌(奇自獻)이 입시하였다. 덕형이 아뢰기를,
“소신이 요동에 들어갈 때 하루에 길을 배로 걸어 강을 건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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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도지휘사가 국왕을 배종할 군신의 숫자 등을 묻는 자문을 보내오다.
요동도지휘사가 본국에 자문을 보내 왔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국왕은 잠시 물러나 서쪽에 와 있으나 종묘사직을 계승하여 지키는 것을 중히 여겨야 한다. 더구나 해국의 사민들은 임금을 그리는 마음이 없지 않아서, 이광(李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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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중국 군사에게 지급할 군량의 조달 방법을 아뢰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연도 각 고을에 저장된 현재의 군량은, 의주가 가장 넉넉하고 정주는 이름은 큰 고을이나 현재 200여 석이 있을 뿐입니다. 구성의 곡식을 날짜에 맞춰 실어온다면 군량을 댈 수 있을 듯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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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문원이 업무을 감당하지 못하자 청평군 한응인 등을 임명할 것을 청하다.
이때에 요동의 공문서가 잇달았으나 승문제조가 많이 비었고 관원도 부족하여 꼴이 말이 아니었다. 승문원이 청평군 한응인(韓應寅),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예조참판 이충원(李忠元)을 승문원제조에, 병조참지 심희수(沈喜壽)를 부제조에 임명하고, 전 군수 이영(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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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등을 인견하고 평양성의 왜적, 요동 망명 등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와 삼도도체찰사 정철(鄭澈)을 인견하였다.【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승지 민준(閔濬), 주서(注書) 강욱(康昱).】상이 이르기를,
“경은 잘 가라. 성공하면 국가의 다행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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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당상을 인견하고 양총병 등 중국군의 형편, 요동 파천 등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와 비변사 당상을【윤두수(尹斗壽)·한응인(韓應寅)·이항복(李恒福)·이성중(李誠中)·이덕형(李德馨)과 승지 유근(柳根), 주서(注書) 강욱(康昱)·구사맹(具思孟)·신잡(申磼)이 함께 입시하였다.】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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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에 병마를 청할 일에 대하여 예유격을 만나고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이 동참장(佟參將)이 주둔한 곳으로 향할 때 길에서 예유격(倪遊擊)을 만났습니다. 신에게 ‘어디를 가는가?’ 하고 묻기에, 신이 ‘병마를 요청하러 가는 길이다.’ 라고 하였더니, 유격이 ‘장관에게 군사를 요청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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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의 처소에서 온 이상의가 동궁의 형편, 각도의 인심 등을 아뢰다.
교리 이상의(李尙毅)가 이천(伊川)의 동궁 처소로부터 왔다. 이상의에게 전교하기를,
“세자는 어떻게 영변(寧邊)으로 올 것인가?”
하니, 상의가 아뢰기를,
“전진하려 하나 적세가 한창 성합니다. 오래 머물 계획은 없으나 언제 올지는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