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원사 이덕형이 돌아와 중국측의 반응과 요동으로 망명하는 일 등을 아뢰다.
청원사 대사헌 이덕형(李德馨)이 요동에서 돌아왔다. 상이 인견을 명하니, 덕형 및 승지 홍진(洪進), 겸춘추(兼春秋) 윤승훈(尹承勳), 봉교 기자헌(奇自獻)이 입시하였다. 덕형이 아뢰기를,
“소신이 요동에 들어갈 때 하루에 길을 배로 걸어 강을 건넌지 …
-
칙사가 전한 황제의 칙서.
칙사인 행인사행인(行人司行人) 설번(薛藩)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상이 백관을 거느리고 칙사를 영접하여 사배례를 행하였다. 예를 끝내고 뜰안의 작은 막사로 들어갔다. 칙서가 관문에 이르자 상이 막사에서 나와 지영(祗迎)하고 사배례를 끝낸 다음 전상으로 올라가 칙…
-
중국군의 동향과 출병 시기 등에 대해 이산보가 올린 보고문.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가 치계하였다.
“신이 8일 배사한 후에 중강(中江)을 건넜는데 중국 군졸이 관문을 닫고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마음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이는 바로 금약이다. 동참장(佟參將)이 송시랑(宋侍郞)을 영접하는 일로 떠…
-
요동 도지휘사사가 왜장의 목에 현상을 거는 내용 등을 담은 자문을 보내오다.
요동도지휘사사(都指揮司使)가 이자하였다.
“흠차경략계요보정등처방해어왜군무병부우시랑송(欽差經略薊遼保定等處防海禦倭軍務兵部右侍郞宋)의 자문내용을 먼저 해당 본부가 제봉한 데 조회하여 황명대로 관백(關白) 평수길(平秀吉)과 요승(妖僧) 현…
-
병조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포시에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니 우부승지 심우승(沈友勝)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독이 평양으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근래 말먹이 콩은 이미…
-
이제독이 평양싸움에서 조선사람을 베어 수급을 바쳤다는 일을 해명하다.
중국의 이과급사(吏科給事) 양정란(楊廷蘭)이 상소하여 이제독(李提督)이 평양의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잡아다 베어 수급을 바친 일을 논하자, 이제독이 글을 올려 스스로 해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조선에 주둔하며 군사와 말을 휴양하여 기…
-
고양겸이 왜의 항복과 중국군의 조선 지원에 대한 내용의 패문을 보내다.
흠차방해어왜병부좌시랑도어사(欽差防海禦倭兵部左侍郞都御史) 고양겸(顧養謙)의 패문에,
“일본추수 관백(關白)이 왜장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나와서 항복하기를 애걸하였는데, 본부원에서 그 정형을 살펴보니 진실이었고 거짓이 없었다. 다만 부산 일대는 왜노가 아…
-
유격 주홍모를 접견하고 ≪여지승람≫을 보이면서 부산에 항상 왜호가 있었다는 설을 해명하다.
상이 남별궁으로 행행하여 유격 주홍모(周弘謀)를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송대인(宋大人)은【즉 경략 응창(應昌)이다.】지금 어디에 있소? 우리나라의 군민이 송대인의 은덕을 잊지 못하고 있소이다.”
하니, 주유격이 말하기를,
“내가 올…
-
비변사가 적세를 두루 설명한 것에 불만을 품은 고시랑의 태도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이정형(李廷馨)의 서장을 보건대, 고시랑(顧侍郞)의 말과 태도에 성난 기색이 대단하다 하니 매우 미안합니다. 다만 성이 난 이유는 꼭 문안을 자주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세를 과장 설명하고 있…
-
영의정 유성룡이 상주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신은 병중이라 정신이 혼매하니 모든 일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호참장(胡參將)의 이번 걸음은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하여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는데, 신이 대신으로 있으면서 마침 큰병을 얻었기 때문에 말의도 아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