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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포와 부산포 이외에 울산의 염포에서도 무역을 허가하기로 하다.
대마도의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삼미삼보라(三未三甫羅)를 보내어 내조하여 예조에 글월을 올리기를,
“우리 섬에는 토지가 없사오니 거제도(巨濟島)에 있는 농토 한 자리를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어서 생활을 유지하게 하여 주시고, 상선(商船)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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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산군사 이우가 사조하다.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우(李友)가 사조하니, 임금이 불러 보고 이르기를,
“군사 일이 가장 긴요하기는 하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중하다.”
하니, 우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신은 진정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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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왜인 사신의 상경 경로를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일본국왕과 좌무위(左武衛) 대내전(大內殿)의 사인 이외에 제도의 객인들에게는, 차사원이 이미 일찍이 미두와 염장(鹽醬)과 주미(酒米)를 준비 저장하여서 어떤 때는 3일에 1번, 어떤 때는 5일에 1번씩 내어 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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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 태랑좌위문 등 15인이 염포군관에게 잡혔으나 돌려보내다.
경상감사가 치보하기를,
“왜인 태랑좌위문(太郞左衛門) 등 15인이 함께 한 배를 타고 울산 파연암(波連巖) 등처에 이르러 해안에 의지하고 있다가 염포군관(鹽浦軍官)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석견주(石見州)에 가서 장사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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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를 경상좌도 절제사로, 하경복을 경상우도 절제사로 임명하다.
박종우(朴從愚)를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로 삼고, 하경복(河敬復)을 경상우도 병마도절제사로 삼고, 또 무사를 뽑아 연해 지방의 수령으로 삼았다. 이 때 경상좌우도에 각기 도절제사를 설치해야 된다는 의논이 있어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어떤 사람은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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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 김문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종우(朴從愚)로 운성군(雲城君)을, 김문기(金文起)로 사간원 좌헌납을, 이사검(李思儉)으로 경상좌도도절제사 겸 판울산부사(判蔚山府事)를 삼았다. 종우가 부모가 늙고 또 무사를 익히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사면하였기 때문에 사검으로 대신한 것이다. 울산은 예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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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 ․ 오명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심(李審)으로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삼고, 오명의(吳明義)로 지갑산군사(知甲山郡事)를 삼았다. 이보다 먼저 황보인의 왜를 방비할 계책에 따라, 무략이 있는 사람을 뽑아 변방 고을을 나누어 맡기었는데, 사복소윤(司僕少尹) 이산두(李山斗)도 역시 선발되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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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군으로 복구시키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경상도좌도절제사가 울산부사(蔚山府使)를 겸하게 하지 마시고, 울산을 군으로 복구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절제사 이사검(李思儉)이 폐단을 말하여 겸임을 없앨 것을 청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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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충추원사 이사검이 비변책을 올리다.
동지중추원사 이사검(李思儉)이 비변책을 올리기를,
“1. 왜인들은 잠깐 신복(臣服)하다가 바로 배반한다 하는데, 우리의 해변에 섞여 살면서 우리의 허실을 엿보니 진실로 염려됩니다. 이제부터는 밀양(密陽) ․ 영산(靈山) 두 고을 중에서 마땅한 곳을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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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원사 이예의 졸기.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이예(李藝)가 졸하였다. 예는 울산군의 아전이었었는데, 홍무(洪武) 병자년 12월에 왜적 비구로고(非舊老古) 등이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복(降服)을 청하거늘, 경상도감사가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시켜서 관(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