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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을 찬수하는데 최윤덕이 왜를 공격한 공로를 왜곡시키다.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가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찬수하는데 정렬공(貞烈公) 최윤덕(崔閏德)의 졸한 것을 사신이 쓰기를,
“아비 최운해(崔雲海)가 경상도절제사가 되어 왜적과 영해(寧海) · 반포(磻浦)에서 싸웠는데 이때 최윤덕이 따라갔었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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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이 붕중을 시켜 화친을 청하게 하다.
일본국왕이 대마도주에게 신칙하여 경오년 반란 때의 왜적(倭賊)을 베어, 붕중(弸中)을 시켜 머리를 함에 담아 와서 바치고 화친을 청하게 하였다. 처음에 홍문관(弘文館)이 상소하기를,
“웅천(熊川) 제포(薺浦)의 치욕을 아직 통쾌하게 씻지 못하였는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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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왜적의 침입에 용병을 갖추도록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번에 적들이 밤에 도망간 것은 오로지 황제의 위력에 의한 것이지만 한명의 적추의 머리도 베지 못했으니 10년 동안 무사할 것을 기필할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새로 도착한 중국 수병과 합세하여 곧바로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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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창궐하자 박자안 등을 지휘관으로 삼아 출병시키다.
이지(李枝)로 순녕군(順寧君)을 삼고,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박자안(朴子安)으로 경기·충청·전라도 수군도체찰사(水軍都體察使)를 삼고, 풍천군(豊川君) 심귀령(沈龜齡)·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유습(柳濕)·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김만수(金萬壽)로 삼도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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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를 삼도체복사로 삼아 왜에게 패한 까닭을 조사하게 하다.
판내섬시사(判內贍寺事) 허조(許稠)를 삼도체복사(三道體覆使)로 삼아, 박자안(朴子安)·심귀령(沈龜齡)과 충청도도절제사(忠淸道都節制使) 이도분(李都芬)·감전경차관(監戰敬差官) 한옹(韓雍)·도관찰사(都觀察使) 유정현(柳廷顯) 및 각포의 만호가 왜적을 잡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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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도관찰사가 왜적을 생포하여 바치다.
충청도 도관찰사(都觀察使) 유정현(柳廷顯)이 왜적의 포로 1명을 바쳤다. 왜적이 창포(倉浦)에 입구했을 때 우리 군사가 추격하니, 1명의 왜적이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하고 순성진(蓴城鎭) 병마사에게 사로잡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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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잡다가 표류해 온 중국배를 후하게 위로하고 돌려보내다.
중국 배[唐船] 4척이 표류하여 연변 고을에 이르렀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위로해 보냈다. 명나라 진남위후소(鎭南衛後所) 백호(百戶) 유귀(柳貴) 등 3인과 기군(旗軍) 117명이 바람에 표류하여 전라도 옥구(沃溝)에 이르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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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전라도 해도에 두도록 명하다.
코끼리를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도록 명하였다. 병조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하였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2명을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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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전을 꼬인 죄로 한상덕 ․ 황자후 ․ 이양수를 의금부에 가두다.
우대언(右代言) 한상덕(韓尙德)·공안부윤(恭安府尹) 황자후(黃子厚)·전 지고성군사(知高城郡事) 이양수(李養修)를 의금부에 내렸다. 전 판원주목사(判原州牧事) 권완(權緩)이 지신사(知申事) 유사눌(柳思訥)과 동네가 같아서 그 교분이 매우 친밀하였다. 권완의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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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에게 재목을 주는 문제에 대한 논의하다.
의정부·육조(六曹)·공신(功臣)·총제(摠制)·대간(臺諫)에 명하여, 왜인에게 재목 주는 것에 대한 가부를 회의하게 했다. 이 앞서 본국에서 왜선장(倭船匠) 등차랑(藤次郞)을 청하여 남해도(南海島)에서 배를 만들어 왔는데, 등차랑이 배 1척을 만들어 본도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