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신 범령을 보내는 시권서와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내용.
일본국 범령을 보내는 시권서에,
“일본은 부상(扶桑)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정치는 간단하고 백성은 순백한지라, 그 풍속이 오로지 불교를 숭상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매양 사명을 받들고, 인하여 열국을 유람하는 자가 앞뒤를 이어 끊어지지 아니하였으니…
-
이직 ․ 황희 ․ 유정현 ․ 이맹균 ․ 김익정 ․ 권도 ․ 이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직(李稷)을 좌의정으로, 황희(黃喜)를 우의정으로 삼고, 유정현(柳廷顯)은 좌의정으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고, 이맹균(李孟畇)을 이조판서로, 김익정(金益精)을 예조참판으로, 권도(權蹈)를 대사헌으로, 이점(李漸)을 부유후(副留候)로 삼고, 이광경(李光敬…
-
좌도수참전운판관 안상진이 올린 수참의 폐단을 없애는 조건.
좌도수참전운판관(左道水站轉運判官) 안상진(安尙縝)이 수참의 폐단을 없애는 조건을 계하기를,
“1. 처음 참선(站船)을 설치할 때에 작은 배들도 병용하여 배마다 사공 1명과 격인 2명을 정하고, 매 1참마다 수부와 전운노자(轉運奴子)를 모두 30호로 정했…
-
충주 땅으로 넘어 들어간 음죽현에 속한 무극역을 원래대로 하게 하다.
경기감사가 음죽현감(陰竹縣監) 임목(林穆)의 정문에 의거하여 계하기를,
“현에 속한 무극역(無極驛)이 충주 땅으로 넘어 들어가서, 현과 일식(一息)의 거리에 떨어져 있고, 또한 큰 내가 막혀 있으므로 여름철에 빗물이 넘쳐흐르면 건너기가 어렵게 되어, 모…
-
성산부원군 이직의 졸기.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직(李稷)이 졸하였다. 이직의 자는 우정(虞庭)이요, 본은 성주니 이인민(李仁敏)의 아들이었다. 나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순부 주부가 되고, 여러 차례 사헌지평․성균 사예․전교 부령 등을 지내고 왕부 지인상서에 보직되었다가 종부…
-
좌승지 정이한이 우리나라는 삼면이 해변이라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보를 수축할 것을 청하다.
우찬성(右贊成) 정분(鄭苯)을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도체찰사로 삼고, 성균관 사예 김순(金淳)과 이조정랑 신영손(辛永孫)을 종사관으로 삼아 연변 주현의 성터를 살펴서 정하게 하였다. 처음에 좌승지 정이한(鄭而漢)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야인…
-
헌부에서 부산첨사 이지의 부임을 재촉하다.
헌부가 권소(權劭)와 이제남(李弟男)의 일을 아뢰었다. 또 아뢰기를,
“요즈음에 제포의 왜노들이 성을 넘어가 살인하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변방의 흔단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장이 된 자는 더욱 경계를 하고 단속해야 하는데도 변이 생긴 지 얼마 …
-
최무선의 아들 해산에게 벼슬을 내리다.
이거이(李居易)를 파면하여 서원 부원군(西原府院君)을 삼고, 하륜(河崙)으로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을, 김사형(金士衡)으로 좌정승(左政丞)을, 이서(李舒)로 우정승(右政丞)을, 조영무(趙英茂)·곽추(郭樞)로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이직(李稷)으로 참…
-
왜인들이 범종을 늦게 구해 주었다고 울산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
왜인 지온(池溫)을 보내어, 가서 종정무(宗貞茂)에게 유시하였다. 대마도 종정무의 사인(使人) 34명과, 소이전(小二殿)의 사인 31명과, 일기주(一岐州)의 사인 20명과, 일향주(日向州)의 사인 20명 아울러 105명이 함께 울산(蔚山)에 있었는데, 청한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