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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관에 나가니 일본국왕의 사자 전밀 등 72인이 어가를 맞이하다.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니, 종친과 문무백관들이 어가를 따랐다. 일본국왕의 사자인 중 전밀(全密)·영숭(永嵩)과 대내전(大內殿)의 사자인 중 덕모(德模) 등 72인이 모화관 앞의 길 왼편에 차례대로 서서 어가를 맞이하였다. 임금이 장전에 나아가 연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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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야인과 왜인의 지대가 소홀한 수령의 파출을 청하니 따르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국가에서 왜인과 야인을 후하게 대우하여 회유하기를 곡진하게 하는데, 지나온 여러 고을의 수령들은 이류라고 생각하여 지대하는 여러 가지의 일에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으니, 매우 옳지 못한 일입니다. 또 일본국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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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에서 일본국 사신 전밀 등에게 잔치를 내려주다.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상참을 받았다. 내종친 영해군(寧海君) 이상과,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운성부원군 박종우(朴從愚)·영중추원사 윤사로(尹師路)·우찬성(右贊成) 신숙주(申叔舟)·판중추원사 이징석(李澄石)·판돈녕부사 송현수(宋玹壽)·병조판서 홍달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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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에게 일본국 사신이 단자를 선사하니 제용감의 마포로 보답하게 하다.
처음에 봉상시판사(奉常寺判事) 이예(李芮)가 일본국왕의 사자를 선위하는 일로 경상도에 갔다가 함께 왔는데, 이때에 이르러 사자가 이예(李芮)의 집에 가기를 청하고 인하여 이예에게 단자(段子) 1필을 선사하므로, 임금이 명하여 제용감(濟用監)의 10새[升] 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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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의 사자 전밀 등이 하직하니 서신을 만들어 답하다.
일본국왕의 사자 전밀(全密) 등이 하직하니, 서신을 만들어 답했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조선국왕은 일본국왕 전하에게 삼가 회답합니다. 바다 하늘이 아득히 멀어서 음신(音信)이 막혀서 통하지 못하였는데, 홀연히 사자가 와서 예의가 번갈아 이르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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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이 양국 상인간의 거래에 대해 시정과 감독을 청하는 글을 보내다.
일본국왕이 선주(船主) 도행(道幸)을 시켜 예조에 글을 보내기를,
“대개 듣건대, 교역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융통하는 방도이니, ≪주역(周易)≫의 서합괘(噬嗑卦)에서 취한 것이라 합니다. 주(周)나라에서 시역사(市易司)를 세워서 시장 정책을 균평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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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감에게 명하여 일본국왕사로 하여금 성지를 받들게 하다.
승정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동래현령(東萊縣令)에게 치서하기를,
“이달 3월 12일에 주문사(奏聞使) 김유례(金有禮)의 종사관이 와서 말하기를, 일본국 삼랑(三郞)의 조공하는 일을 김유례가 이미 〈중국에〉 주달하였으며, 황제의 칙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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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중추원사 송처검 등을 일본국의 통신사로 삼고 서계를 보내다.
첨지중추원사 송처검(宋處儉)을 일본국의 통신사로 삼고, 행호군 이종실(李從實)을 부사로 삼고, 종부시주부 이근(李覲)을 서장관으로 삼아 예물을 가지고 수미(秀彌)와 더불어 〈일본국에〉 함께 가도록 하였다. 또 명주 300필, 백금 500냥을 가지고 가서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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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통신사 송처검이 대마주태수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아뢰다.
왕세자가 장차 양전(兩殿)에게 잔치를 올리려 하여 잔치의 찬구가 이미 준비되었는데, 일본국 통신사 송처검(宋處儉)이 데리고 갔던 선군 한을(韓乙)이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 종성직(宗盛職)과 수호대관(守護代官) 종우마조성직(宗右馬助盛直)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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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관 이계손이 대마주에 가지고 갈 사목과 그 내용.
좌의정 신숙주(申叔舟)·이조판서 최항(崔恒)에게 명하여,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 종성직(宗成職)에게 내려 줄 교서를 초하여 아뢰게 하였다. 그 교서에 이르기를,
“경의 조부가 대대로 남쪽 변방을 지켜서 나라의 번병이 되었는데, 지금 경이 능히 선조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