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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 차관 황응양에게 일본의 침략이 정명가도에 있음을 설명하다.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이 유격(遊擊) 등 세 관원을 가서 만나보고 ‘오늘은 이미 저물었고 또 자문도 미처 정서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하께서 내일 서로 만났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당연히 내일 아침에 국왕을 뵙고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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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낙참장이 중국군의 진격 상황을 말하고 군량 비축을 당부했다고 보고하다.
지평 구성(具宬)이 아뢰었다.
“소신이 어제 낙참장(駱參將)을 문안하기 위하여 협강(夾江)에 나아가 고하기를 ‘평양의 왜적은 이달 8~9일 이후부터 서쪽으로 향하려는 계책을 펴면서 본국의 병마를 계속 마구 시살하고 있다. 함경 · 황해 두 도에 있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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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원이 각도의 보고를 지체하는 비변사 색낭청을 추고하라고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각도에서 계본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공사로 회답해 줄 때와 상을 주려고 첩지를 내어줄 때에 해관이 직접 집행하지 않아 하리들이 행패를 부리며 뇌물을 받고 있습니다. 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이 때문에 지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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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송시랑과 이제독에 대해 묻고 군량 조달을 의논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우찬성 최황(崔滉),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崐壽), 판윤 이덕형(李德馨), 행 이조참판 구사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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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李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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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도지휘사사가 왜장의 목에 현상을 거는 내용 등을 담은 자문을 보내오다.
요동도지휘사사(都指揮司使)가 이자하였다.
“흠차경략계요보정등처방해어왜군무병부우시랑송(欽差經略薊遼保定等處防海禦倭軍務兵部右侍郞宋)의 자문내용을 먼저 해당 본부가 제봉한 데 조회하여 황명대로 관백(關白) 평수길(平秀吉)과 요승(妖僧)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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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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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등을 인견하고 이제독이 탄핵을 받은 일, 중국 남 ․ 북군의 갈등을 논의하다.
접반사 지중추부사 이덕형(李德馨), 평안도감사 이원익(李元翼), 좌승지 홍진(洪進)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뜻밖에 제독이 탄핵을 받아 우리나라가 불행하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니,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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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을 이간시킬 첩문을 만들어 성안에 떨어뜨리라는 일을 논의하다.
상이 첩문 한 통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명조의 대장군 이제독(李提督)이 벌써 계양(薊陽) · 요동(遼東)의 군병 7만, 선부(宣府)의 군병 3만, 대동(大同)의 군병 3만, 묘만(苗蠻)의 군병 8만, 천진(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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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상과 원황이 중국군의 상황과 진군에 대해 이자하다.
경략찬획계요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사무(經略贊畫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事務)에 흠차된 4품관 병부무고청리사원외랑(兵部武庫淸吏司員外郞) 유황상(劉黃裳)과 직방청리사주사(職方淸吏司主事) 원황(袁黃)이 이자하였다.
“대개 급히 진병하여 왜적을 섬멸하고 곧바로 왕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