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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과 중국에 양식, 군사 원조를 요청하는 일을 의논하다.
상이 주청상사인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와 부사인 행상호군 최입(崔岦)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가서 주선을 잘하여 성사하고 돌아오라.”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최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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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김찬이 유총병과 함께 왜적에 대한 방비를 논의한 것을 아뢰다.
접반사 김찬(金瓚)이 아뢰기를,
“신이 총병을 보고 ‘손시랑(孫侍郞)이 어느 곳에 도착했는가?’ 하니, 답하기를 ‘아직 산해관(山海關)을 지나지 않았다. 서둘러 위급을 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에, 신이 ‘윤배신(尹陪臣)이 이 일로 오늘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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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당의 의논에 따라 경상 ․ 전라를 중심으로 왜적을 방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문을 보내다.
묘당의 의논을 따라 우리나라의 사정을 진달해서 채택에 대비하는 일로 주문을 보내었는데, 주문은 다음과 같다.
“만력(萬曆) 22년 7월 16일에, ‘동봉을 믿을 수 없으므로 공경히 방어할 의논을 진달해서 성명의 결단으로 치안을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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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군사 훈련 방안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황해의 전 병사 조인득(趙仁得)의 말을 들으니, 그가 본도에 있을 적에 정용한 병사를 선발하였는데 그 수가 4천 명이어서 급할 때에 충분히 사용할 만하며 그 중에는 재주를 완전히 익힌 포수도 수백 명이라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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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유격 진운홍과 봉공과 양곡에 관해 논의하다.
진시에 상이 남별궁에 있는 유격 진운홍(陳雲鴻)의 관사에 행행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송시랑(宋侍郞)과 이제독(李堤督)의 안부는 어떠하오이까? 우리나라의 군신은 두 대인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소이다.”
하니, 진유격이 답하기를,
“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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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시발이 서계로 진유격과 소서행장의 접촉에 대하여 아뢰다.
진유격(陳遊擊)의 접반사 이시발(李時發)이 서계하였다.
“정월 12일에 일찌감치 진유격을 따라 유천에서 출발하여 밀양(密陽)을 지나 김해(金海)에 정박하였는데, 죽도(竹島)의 진영에 있는 소장이 배 위에 와서 보고 식사를 청하여 그대로 그곳에서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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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시발이 일본의 풍토에 대하여 아뢰다.
“일본의 풍토가 절강에 비해 어떻던가?”
하고 물었더니
“절강에 비해 좋은 편이고 여염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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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시발이 홍통사와의 문답을 아뢰다.
이상은 홍통사(洪通事)와의 문답입니다.【홍통사는 절강(浙江) 사람으로서 만력(萬曆) 을해년에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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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제조와 독약을 화살에 바르는 방법을 중국인에게 배울 것을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진유격(陳遊擊)이 적어준 선후책은 중국의 기계·병선의 제도 및 조련법을 주청해서 전습하도록 권한 것이니, 우리나라를 위한 그의 염려가 매우 지극하다. 병기와 진법은 배울 만한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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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김수가 밀계하여 진유격과 논의한 일을 아뢰다.
호조판서 김수(金睟)가 비밀히 서계하기를,
“어제 저녁에 진유격(陳遊擊)이 신과 이증(李增)을 급히 부르기에 신들이 가 보았더니, 이시발(李時發)이 같이 있었습니다. 진유격이 신들에게 말하기를 ‘행장(行長)이 보낸 서신을 너희 부에서 받지 않는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