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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국국 사신이 절하고 국왕의 글과 예물을 올리다.
유구국 사신이 숙배하였는데, 그 국왕의 글에 이르기를,
“유구국 중산왕 상진(尙眞)은 삼가 조선국왕 전하께 아룁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의를 다하여 신의를 맺는 것은 천리로 된 동일한 길이요, 피를 먹음으며 맹서를 강요하는 것은 인심의 독자적인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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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응창이 상이 평양에 머물면서 왕성의 수복을 도모하라고 자문을 보내오다.
시랑(侍郞) 송응창(宋應昌)이 우리나라에 이자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병부의 주청을 보건대 ‘왜노가 조선을 점거하고 몰래 내지를 범하려고 꾀하여 조선의 군신이 종묘사직을 잃고 강변에 파천하였는데 우리 황상께서 공순한 속방을 불쌍히 여기어 개연히 장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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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의주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송경략의 인품, 문답 내용 등을 듣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의주에서 돌아왔는데 상이 인견하고서 송경략(宋經略)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으니, 아뢰기를,
“그의 형모를 보니 그다지 장대하지는 않으나 다분히 영기는 있었습니다.”
하였다. 이어 계사를 써 올리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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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의주에서 오자 중국의 강화와 송경략의 학문에 대해 논의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의주에서 왔다. 상이 인견하고 이르기를,
“저들이 강화하려 하니 내 마음이 매우 안타깝다. 직접 가서 하소연하려고 하였으나 지금 서장을 보니 냉랭하게 대할 것 같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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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송경략이 내구마를 청했다고 아뢰자 다른 말을 주라고 하다.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전일 송경략(宋經略)이 강을 건너왔을 처음에 장 기고가 ‘내 일찍이 조선국왕에게는 하루에 3백 리나 달리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하였으니, 내구마를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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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장기고가 왜적과의 싸움을 그치라고 했다고 아뢰다.
동부승지(同副承旨) 구성(具宬)이 의주(義州)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의주에 도착하니 장기고(張旗鼓)가 역관 홍수언(洪秀彦) 등을 시켜 송시랑(宋侍郞)의 말을 전하기를 ‘국왕은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하고, 또 ‘당신네 나라의 자문 중에 「장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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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서가 조선에 사은사를 재촉했다.
이제독(李提督)의 차비통사(差備通事) 김길손(金吉孫)이 서계하였다.
“석상서(石尙書)가 제독에게 보낸 글에 ‘조선국왕은 어찌하여 지금까지 사은하지 않는가. 태만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신을 보내면서 ‘사은사(謝恩使)를 두 차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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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등이 경략의 패문과 왜적을 치자고 쟁변한 내용을 아뢰다.
도체찰사인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과 도원수인 좌참찬 김명원(金命元)이 치계 하였다.
“금일 총병 이녕(李寧)과 유격장 척금(戚金) · 전세정(錢世禎)이 동파(東坡)에 와서 총병 사대수(査大受)와 한곳에 있으면서 신들과 순찰사 이정형(李廷馨)을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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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략이 왜적을 초토하자는 자문을 보내오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일이 발생하면 사당에 고유하는 것은 예입니다. 예로부터 능침에 변고가 있으면 비록 대단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즉시 선조에게 고유하는 예를 거행하였습니다. 이번 두 능의 변고는 실로 전고에 없었던 일인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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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특진관 정곤수 등과 왜에 대한 정탐과 통호에 대해 논의하다.
오정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특진관 행판돈녕부사 정곤수(鄭崑壽)【위인이 온아하고 인자하여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간에 오직 구제해 주는 데에 마음을 썼다. 또 서적을 몹시 좋아하고 전고에 밝았으며 고금 세가의 족계에 대해서도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