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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회례사 박안신과 이예를 내전에 불러 접견하다.
일본국 회례사 상호군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였는데, 임금이 내전에 불러 들여 접견하였다. 안신이 계하기를,
“신 등이 처음에 적간관(赤間關)에 이르자 규주(圭籌)가 국서를 등사하여 급히 어소(御所)에 보고하였는데, 55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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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에 나아가 회시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 등에게 책문하다.
근정전에 나아가서 회시(會試)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南秀文) 등에게 책문(策問)하였다. 그 책문에,
“왕은 말하노라. 대개 듣건대 요순의 지혜로서도 반드시 급무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맹자의 격언이니, 정치를 말하면서 급무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모두 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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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도안무사 신유정의 졸기.
전 도안무사 신유정(辛有定)이 졸하였다. 유정은 경상도 영산현(靈山縣) 사람인데,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이었다. 음직으로 산원에 보직되었다가 여러 번 옮겨 정용호군에 이르렀다. 병인년에 족형 충청도도원수 이승원(李承源)을 따라 왜구를 쳤는데, 승원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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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의 졸기.
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李枝)가 졸하였는데, 이지는 우리 태조의 종제이다. 이지는 나이 8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부인 익양군(益陽君) 왕기(王琦)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태조께서 잠저로 불러와서 두고 무양하기를 심히 두터이 하여 상시 휘하에 있게 하였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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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흥천사의 수리를 권면하도록 건의하다.
예조에서 선종(禪宗)의 정문에 의거하여 계하기를,
“흥천사(興天寺)는 본래 태조(太祖)께서 창건하신 원찰이요, 명나라와 이웃나라의 사객(使客)들도 또한 모두 유람하는 것이 온데, 이제 그 사리탑전(舍利塔殿)의 바깥 절이 기울어져 위태 하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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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의 사리전 수리를 위한 세부사항을 명하다.
임금이 대언 등에게 이르기를,
“흥천사(興天寺)의 사리전(舍利殿)은 태조께서 청건하신 것이다. 이제 들으니 기울어져 위태하므로 중들을 모집하여 수리하려 한다 하니, 도첩을 주어 수리하게 하고, 석수와 목공은 선공감에서 주장하고, 감역관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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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신이 왜구를 막을 병선을 제조할 것을 상소하다.
병조 참의 박안신(朴安臣)이 상서하기를,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오직 마땅히 지난 일을 거울삼아 뒷일을 염려하여, 그 장구히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하기를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왜도(倭島)와 심히 가까와서, 예전 삼국시대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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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부원군 이직의 졸기.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직(李稷)이 졸하였다. 이직의 자는 우정(虞庭)이요, 본은 성주니 이인민(李仁敏)의 아들이었다. 나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순부 주부가 되고, 여러 차례 사헌지평․성균 사예․전교 부령 등을 지내고 왕부 지인상서에 보직되었다가 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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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곤이 매년 한 도에 한 성만을 쌓아도록 상소하다.
정사를 보았다. 좌사간 김중곤 등이 상소하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낭(郞)에 성을 쌓고 미(湄)에 성을 쌓는 것을 ≪춘추≫에 반드시 썼으니, 백성의 힘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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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황제가 동맹가첩목아에게 내린 칙서에 관해 말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 임금이 또 말하기를,
“자제들을 보내어서 입학하는 일은 내가 매양 생각하니, 부모처자와 서로 이별하는 정은 진실로 참을 수 없는 일이나, 그러나 우리나라가 중국과 사귀는 데에 요긴한 것은 오로지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