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李如…
-
이제독이 군공에서 북군을 우선하여 남 ․ 북군 사이에 불화가 생기다.
처음 평양부와 개성부가 수복되고 나서 이제독(李提督)은 대대로 북쪽 지방에 살았으므로 군대를 쓰고 공을 논할 때에 모두 북군을 우선하고 남군을 뒤로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남군과 북군 사이에 불화가 생기니, 군중에 뜬소문이 퍼지기를 ‘제독이 평양성을 공격할 때…
-
사은사의 사행 때 송응창 등에게도 자문을 보내는 일에 대해 비변사에게 의논하도록 하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가는 사은사의 사행은 요동순안(遼東巡按) 주유한(周維翰)과 광녕순안(廣寧巡按) 한취선(韓取善)에게 다급함을 고하고 적정을 상세히 진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송응창(宋應昌)·이여송(李如松)이 다행히 영평(永…
-
사은사 김수등이 중국 상황을 보고하다.
사은사 김수(金睟)·최입(崔岦)이 치계하였다.
“중국 조정에 도착하여 듣고 본 것에 의하면, 중국 사신 사헌(司憲)이 조선 지방을 요해하였다고 어사 한취선(韓取善)이 상본하였고, 총병 유정(劉綎)과 유격 오유충(吳惟忠)은 진주(晋州)를 구하지 아니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