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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 허진이 왜와의 강화 교섭 등을 보고하다.
동지사 허진(許晉)이 아뢰기를,
“신이 가져간 정문 1건을 예부와 병부에 등서하여 바쳤는데 모든 적정에 관계되는 것을 이미 자세히 밝혔고, 신 등이 군자품을 무역하자고 요청하는 정문 중에도 역시 적의 형세를 진술하였습니다. 그런데 석상서(石尙書)가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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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식량과 군병을 지원받는 문제 ․ 흉년으로 백성이 식인하는 문제 등을 대신 등과 의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의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장도사(張都司)의【이름은 삼외(三畏)임】자문을 보니 산동의 양곡을 지급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무슨 뜻인가?”
하니,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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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별전에서 왜와의 강화 문제를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강하였다. 특진관 유영경(柳永慶)과 허진(許晉), 참찬관 오억령(吳億齡), 시독관 박홍로(朴弘老), 검토관 정경세(鄭經世) 등이 입시하여 ≪주역≫ 건괘를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상이 이르기를,
“모든 일은 인심이 안정된 연후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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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 정탁 등과 성영의 처벌 ․ 도원수의 체직 등의 일을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영사 정탁(鄭琢), 동지사 이항복(李恒福), 참찬관 김우옹(金宇顒), 특진관 유영경(柳永慶)·허진(許晉), 참찬관 정구(鄭逑), 시독관 박홍로(朴弘老), 지평 유희서(柳熙緖), 정언 이형욱(李馨郁), 기사관 신성기(辛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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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관찰사 홍이상이 중국사신에게 정문을 보내다.
경상좌도 관찰사 홍이상(洪履祥)이 치계하기를,
“중국 상사의 행차가 22일에 길을 떠나려 한다는 내용은 전에 이미 장계하였습니다. 21일에 사신이 일행의 여러 장관들과 미리 동지하절례(冬至賀節禮)를 거행하므로 신이 접반사 김수(金睟), 문위사 허진(許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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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유경이 보낸 자문에 대하여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헌의하게 하다.
심유격(沈遊擊)이 보내온 자문을 의논하여 조처할 일로 2품 이상에게 헌의하게 하니, 유성룡(柳成龍)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병중에 있어 정신이 혼미하고 생각이 착란하므로 군국의 중대사를 의논하지 못하겠고, 또 심무시(沈懋時)가 입국한 후에 무슨 말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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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노모를 만나고 돌아오자 영남의 정세를 묻고 여러 가지 정사를 논의하다.
…… 상이 이르기를,
“지나 온 일로의 방어 등의 일과 민간의 제반사는 보기에 어떠하던가?”
하니, 성룡(成龍)이 아뢰기를,
“신이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을 만나 보았습니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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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직무를 유기하고 도망간 관원들의 처벌, 가옥 훼철의 금지, 임실현감 경종지의 교체를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적보가 긴급해지자 조정의 모든 관료들은 국가의 위급함을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도망갈 계책만 꾸며가지고 잇따라 달아남으로 해서 모든 관사가 거의 비게 되었으니, 보고 듣는 이들이 모두 한심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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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 ․ 윤두수 ․ 정탁 ․ 정곤수가 중국군의 병력을 적당히 줄여 주둔하게끔 하도록 의논드리다.
이산해(李山海)·윤두수(尹斗寿)【당론(党論)에 치우쳐 몸가짐이 염직(廉直)하지 못하니 장차 어디에 쓸 것인가.】정탁(鄭琢)·정곤수(鄭崐寿)가 의논드리기를,
“적이 잠시 물러나기는 하였지만 앞으로 닥칠 근심이 적지 않으니, 선후책으로는 중국군을 많이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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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정유왜란 때 먼저 달아났던 벼슬아치의 이름을 올리다.
6695. 비변사에서 정유왜란 때 먼저 달아났던 벼슬아치의 이름을 올리다.
비변사에서 정유왜란 때 먼저 달아났던 방시한 조당(朝堂)의 인원을 서계하였는데,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민선(閔善)·유희규(柳希規)·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