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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8년(925) 을유년
8년 봄 3월
○ 왕이 서경(西京)으로 행차했다.
가을 9월
병신일. 발해(渤海)의 장군인 신덕(申德) 등 5백 명이 투항해왔다.
경자일. 발해의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과 대균로(大均老), 사정(司政) 대원균(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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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9년(926) 병술년
9년 여름 4월
경진일. 견훤이 보냈던 인질 진호(眞虎)가 병으로 죽었으므로 시랑(侍郞) 익훤(弋萱)을 시켜 시신을 담은 관을 보내 주었다. 견훤은 우리가 진호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신(王信)을 죽이고 웅진(熊津)(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진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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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13년(930) 경인년
13년 봄 정월
정묘일. 재암성 재암성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眞寶面) 일대로, 고려 초에 진안현(眞安縣)과 진보현(眞寶縣)을 합하여 설치한 보성부(甫城府)의 별칭이다. 보성부는 고려시대 예주(禮州)의 속읍이었다. 장군(載巖城將軍) 선필(善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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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18년(935) 을미년
18년 봄 3월
○ 견훤의 아들인 신검(神劒) 신검(?~?) 견성(萱城)․수미강[須彌康․須彌强]이라고도 하며, 견훤의 맏아들이다. 그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92, 열전5, 유금필전(庾黔弼傳) 참조.이 그 아비를 금산사(金山寺) 금산사 백제 무왕 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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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원년(982) 임오년
원년 봄 3월
경술일. 백관의 칭호를 고쳤다.
여름 6월
갑신일. 왕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임금의 덕이 오직 신하의 보필에 달렸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이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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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3년(984) 갑신년
봄 3월
경신일. 처음으로 기우제를 지냈다.
○ 이 달에 이종(李琮) 등을 급제시켰다.
여름 5월
초하루 경술일. 형관(刑官)의 문기둥에 벼락이 떨어졌으므로 어사(御事)․시랑(侍郞)․낭중(郞中)․원외랑(員外郞)을 문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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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8년(989) 기축년
8년 봄 2월
경진일.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조정의 관리나 민간의 백성들로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의원으로부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약품도 구하지 못해 치료를 제대로 못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짐이 이들 모두에게 의원과 약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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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2년(1011) 신해년
2년 봄 정월
초하루 을해일. 거란 임금이 이끄는 군대가 개경으로 진입해 태묘(太廟)와 궁궐 및 민가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 날 왕은 광주(廣州)(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 머물고 있었다.
정축일. 호종했던 신하들이 하공진(河拱辰) 등이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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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32년(1078) 무오년
32년 봄 2월
병진일. 이 달 보름이 한식(寒食)이기 때문에 사흘 앞당겨 연등회를 열었다.
여름 4월
을사일. 우원령(禹元齡) 우원령(?~?) 숙종 때 사은사(謝恩使) 겸 고주사(告奏使)․중사인(中舍人) 등을 역임한 문신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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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5년(1100) 경진년
5년 봄 정월
경진일. 요나라의 사신 소랑(蕭郞)이 귀국하는 편에 왕이 표문을 보내 사례하였다.
갑신일. 동여진(東女眞)의 장군(將軍) 표어내(表於乃) 등 60명이 입조해 왔다.
계사일. 왕이 친히 구정(毬庭)에서 초제(醮祭)를 지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