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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6년(1219) 기묘년
봄 정월
신사일. 조충(趙冲)․김취려(金就礪)가 카치운[哈眞]․완안자연(完顔子淵) 등이 거느린 군사와 합세해 강동성을 포위하니, 적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다.
경인일. 카치운이 포리대완(蒲里帒完) 포리대완 강동성 전투에 참전한 몽고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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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2년(1235) 을미년
22년 봄 정월
갑인일. 왕의 맏아들 왕전(王倎)의 관례(冠禮)를 거행하고 태자로 책봉했다.
2월
정축일. 연등회 참석차 왕이 봉은사에 갔다.
경진일. 내전에서 지풍도량(止風道場)을 열었다.
임오일. 태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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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6년(1239) 기해년
26년 여름 4월
○ 몽고에서 보가(甫可)와 아질(阿叱) 등 20명 편에 왕이 몽고에 직접 입조할 것을 요구하는 조서를 보내왔다. 왕이 제포관(梯浦館)에서 조서를 받았다.
○ 이 달에 몽고군이 철수했다. 철수했다 몽고군이 철수한 뒤, 고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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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7년(1240) 경자년
27년 봄 3월
○ 노연(盧演) 등이 두만(豆滿)․아질(阿叱) 등 몽고 사신 일곱 명과 함께 돌아 왔다.
여름 4월
○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조수(趙脩) 조수(?~?) 고종이 동궁에 있을 때부터 섬겼으며 우봉(牛峰)(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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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1년(1244) 갑진년
31년 봄 2월
계유일. 해당 관청에서, 전 제주부사(濟州副使) 노효정(盧孝貞)과 판관 이각(李珏)이 재임시 일본 상선이 태풍을 만나 관할 해역에서 파선하자 비단, 은, 진주 등의 값비싼 물품을 사취했다고 탄핵했다. 이에 노효정으로부터 은 28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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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2년(1245) 을사년
32년 봄 3월
갑자일. 왕이 건성사(乾聖寺) 건성사 강화경(江華京)(지금의 인천직할시 강화군)으로 천도한 이후 고종은 개경(開京)(지금의 개성직할시)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던 건성사를 모방해 강화도에서 같은 사찰을 창건했다. 개경의 건성사 경우는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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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6년(1249) 기유년
36년 봄 정월
무신일. 북계병마사가 급보를 올려 몽고 황제의 죽음을 알렸는데 이 사람이 정종(定宗) 정종(1205~1248) 우구데이칸[窩闊台汗]의 장자로 몽고 이름은 구육[貴由]이다. 어머니는 투리게네이다. 투리게네의 부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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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7년(1250) 경술년
봄 정월
계사일. 낭중(郞中) 최장저(崔章著)를 몽고에 보냈다.
○ 대장군 이세재(李世材)와 장군 신집평(愼執平) 신집평(?~1258) 본관은 거창이며 조부는 태자태보(太子太保) 신익(愼翼)이고 아버지는 신세공(愼世功)이다. 신세공의 처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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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9(1252) 임자년
39년 봄 정월
병오일. 추밀원부사 이현(李峴)과 시랑 이지위(李之葳)를 몽고에 보냈다.
2월
초하루 을묘일. 일식이 있었다.
정묘일. 연등회 참석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병자일. 최항(崔沆)이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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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43년(1256) 병진년
43년 봄 정월
초하루 계사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무술일. 왕이 친히 천병신중도량(天兵神衆道場)을 열었다.
임인일. 추밀원부사 최평(崔坪)이 죽었다.
병오일.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나 하늘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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