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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陵
능을 참배하는 의례[拜陵儀]
국왕이 능을 참배하려 할 때는 해당 관청에서 지시를 받들어 내외에 임시로 알려서 직분에 따라 준비한다. 국왕은 별전(別殿)에 거둥하여 이틀 동안 마음을 맑힌다[齋心]. 무릇 행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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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理
목종 때에 참지정사(叅知政事)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백관지에는 참지정사가 목종 때 비로소 설치된 듯 기술하고 있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성종조에 그에 임명된 사례가 찾아지는 것이다. 참지정사에 취임한 최초의 인물은 성종 즉위 초에 최량(崔亮)이 나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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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侍
목종 때 좌․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목종 때 문하성에 좌산기상시, 내사성에 우산기상시가 있었다는 것인데, 목종 때라는 그 시기에 대해서는 찬자의 오류로, 성종 원년(982)으로 보아야할 것 같다(①). 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제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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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議大夫
목종 때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성종 원년(982)에 낭사가 설치된 이후 곧이어 간의대부는 임명되기 시작하였다. 간의대부에 최초로 임명된 사례는 성종 2년에 이지백이다(『고려사』 권3, 세가, 성종 2년 9월 무오). 이지백이 좌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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獻納
목종 때에 좌․우보궐(左右補闕)을 두었는데, 두었는데 목종 때 좌․우보궐이 있었다는 이 기록은 잘못된 기술이다. 성종 때 김심언의 관직이 우보궐겸기거주였고, 또 이양도 좌보궐겸지기거주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미 직제가 마련되었다. 당시의 좌보궐은 문하성,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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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言
목종 때에 좌․우습유(左右拾遺)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습유에 임명된 사례가 성종 때부터 나타나고 있어 목종 때 좌․우습유가 있었다는 이 기록은 잘못이다. 이 직제가 마련된 것은 성종 원년(982)이었다고 여겨진다. 예종 11년에 좌․우정언(左右正言)으로 고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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錄事
목종 때 문하녹사(門下錄事)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문하녹사는 내사문하성의 녹사가 아니라 문하성의 녹사이다. 문하녹사에 임명된 사례는 잘 찾아지지 않으나 문하녹사(종7품)는 목종 원년(998)의 개정전시과에 내사성의 주서(종7품)와 나란히 제13과(전 40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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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書
목종 때 내사주서(內史主書)를 두었는데, 두었는데 내사주서는 내사문하성의 주서가 아니라 내사성의 주서이다. 내사주서에 임명된 사례는 잘 찾아지지 않으나 내사주서(종7품)는 목종 원년(998)의 개정전시과에 문하성의 문하녹사(종7품)와 나란히 제13과(전 40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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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禮門
조회(朝會)와 의례(儀禮)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목종 때 합문사(閤門使)․부사(副使)․지후(祗候)를 두었다. 문종 때 관제를 정하여, 판사(判事)는 정3품으로, 지사(知事)는 겸관으로, 사(使)는 정5품으로, 인진사(引進使)는 2명에 정5품, 인진부사(引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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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儀寺
제사와 시호(贈諡)를 내리는 일을 맡았다. 목종 때에 태상경․소경․박사․사의(司儀)․재랑(齋郞)을 두었다. 문종 때 태상부(太常府)를 병과(丙科) 권무관(權務官)으로 보임했는데 사(使) 1명은 3품이 겸하고 부사 1명은 5품이 겸했으며 녹사는 4명도 역시 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