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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후4년(1335) 을해년
후4년 여름 4월
기사일. 왕이 해주(海州)(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사냥판을 벌였다.
정축일. 우문군(佑文君) 양장(梁將) 양장 후에 양재(梁載)로 개명하였다. 양재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124, 열전37, 폐행, 왕삼석 부 양재전(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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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사신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忠惠)의 4대는 부자지간에 서로 다투면서 심지어 원나라의 조정에 함께 송사까지 함으로써 천하 후세의 비웃음을 샀다. 아비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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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봄 정월
정해일. 왕이 총관(摠管) 이수산(李壽山)과 함께 청교역(靑郊驛)에서 말달리기 시합을 하고는 친히 말을 씻겨 주었다.
병신일. 왕이 도성 밖에서 사냥판을 벌이고 기해일에도 또 벌이는 등, 이후로부터 날마다 무절제하게 드나들며 사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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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후4년(1335) 을해년
後四年 夏四月 己巳 王獵于海州. 丁丑 命佑文君梁將, 前郞將曹莘卿, 掌銓注. 以姜融僉議左政丞判三司事, 蔡河中僉議贊成事, 崔老星爲懷義君, 曹莘卿爲左代言, 申時用爲大匡元尹, 尹賢爲持平. 自三月不雨, 至于是月.
五月 壬午朔 以旱, 徙市, 聚巫禱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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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史臣贊曰, “自烈宣肅惠世歷四代, 父子相夷, 至與之訟于天子之朝, 貽笑天下後世. 且父子天性之親, 孝爲百行之先, 而政事之本也. 本旣失焉, 其他無足觀者. 忠肅晩年, 遺棄國事, 出舍外郊, 信任朴靑等三竪, 威福下移. 若子若孫, 皆罹凶夭, 可勝嘆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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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後三年 春正月 丁亥 王與總管李壽山, 較馬步於靑郊驛, 王親洗馬. 丙申 王出畋, 己亥, 亦如之, 自是, 日以遊獵爲事, 出入無度.
二月 冊評理洪鐸之女, 爲和妃, 將納之, 林氏妬之, 乃封爲銀川翁主, 以慰其意. 丁未 王出畋, 仍宴于鄭天起第. 庚戌 遣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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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申靑
신청(申靑)은 일명 신송(申松)이라고도 하며, 다인현(多仁縣)(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리역(代理驛)(대리는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1~4리)의 역리(驛吏)였다. 일찍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심왕(瀋王) 왕호(王暠)의 종자(從者)가 되어 총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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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申靑 부 박청朴靑
박청(朴靑)은 일명 박송(朴松)이라고도 하며 본래 출신이 미천하였다. 사냥매를 잘 길렀으므로 충숙왕의 총애를 받아 거듭 승진해 상호군(上護軍)이 되었다. 어떤 죄로 사전(賜田)을 회수당하고 흥선궁(興善宮)에 소속되었다가 뒤에 밀직사사(密直司使)가 되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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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申靑
申靑, 一名松, 多仁縣伐里驛吏. 嘗入元, 爲瀋王暠從者, 得幸. 及忠肅如元, 館於瀋邸, 靑得見, 由前散員, 授護軍, 累遷上護軍. 及忠肅倦勤, 靑假威用事, 勢傾一國, 無忌憚. 與朴靑․李靑齊名, 時號三靑. 忠肅每言忠惠過失, 從臣曹益淸․尹桓, 謀去忠惠所狎惡少輩. 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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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申靑 부 박청朴靑
朴靑, 一名松, 素微賤. 以養鷹, 得幸忠肅, 累遷上護軍. 以罪, 收賜田, 屬興善宮, 後爲密直司使. 其妻嘗與族父李臣桂通, 靑刵兩人, 告監察司鞫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