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 원년(946) 병오년
    원년 봄 정월 ○ 왕이 현릉(顯陵)(태조 왕건의 릉)을 참배하려고 재계하고 있던 날 저녁에 어전의 동쪽 산 소나무 사이에서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왕요(王堯)야! 불쌍한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구휼하는 것이 임금의 중요한 책무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
  • 이제현李齊腎의 논평
    이제현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정종은 임금의 존귀한 몸으로 10리나 떨어진 사원까지 걸어가서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했고 또 7만 석이나 되는 곡식을 승려들에게 하루에 나누어 주었다. 그러고도 한번 하늘의 견책을 받자 제 정신을 잃고 병들었으…
  • 정종 원년(946) 병오년
    元年 春正月 王將謁顯陵, 致齊之夕, 聞御殿東山松間, 有呼王名, 若曰 “爾堯, 存恤細民, 人君之要務.” 是歲, 天鼓鳴, 赦. 王備儀仗, 奉佛舍利, 步至十里所開國寺, 安之. 又以穀七萬石, 納諸大寺院, 各置佛名經寶, 及廣學寶, 以勸學法者.
  • 이제현李齊腎의 논평
    李齊賢贊曰, “定宗, 以人君之尊, 步至十里所浮屠之宮, 以藏設利, 又以七萬石穀, 一日而分賜諸僧. 一遭天譴, 喪心生疾, 所謂‘君子求福不回者’ 亦嘗聞其說耶? 疾旣大漸, 能以宗社, 付之親弟, 不使如王規者, 覬覦於其閒, 是可嘉也已.”